누가복음

누가복음 3:15-38 예수 알기를 힘쓰십시오. - 매일성경, 큐티 / 자기 부인, 십자가의 삶

사랑합니다예수님 2025. 2. 17. 07:28

눅 3:15-38

예수 알기를 힘쓰십시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를 따르라

어떤 일을 하게 되는 데는 우연이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과 배움이 쌓인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옥상에서 고장난 문을 새로 달고 있는 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분들은 문을 달 수 있는 기술을 익히고 경험을 쌓았기에 그 일을 합니다. 저 역시 부모님의 사역을 보며 자연스럽게 섬김의 마음을 품었고, 신학을 공부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결과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삶의 과정 속에서 보고 배우며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은 동일한 인생의 목적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닮아가며, 그분의 사명을 따라가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심지어 언어가 다르고 나이가 다르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참된 예수의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알고 경험해 왔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생각, 본성으로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계획과 뜻은 우리의 지식과 판단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자기 경험과 판단과 생각을 믿음으로 넘어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무서운 착각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서 예수를 따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를 알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헛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신학 공부를 많이 했다고 예수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부인을 통해서 예수를 알아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예수 아는 것을 이미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표 때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바울은 자신의 신앙을 완성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하나님이 부르신 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신앙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고 달려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중 누구도 예수님을 다 안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을 통하여 예수 알기를 힘쓰고 끝까지 그분을 따르며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충분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착각하고, 변화할 필요가 없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신앙의 성장은 멈춰설 수 없습니다. 신앙의 성장은 계단을 오르는 변화가 아닙니다. 물 위에 뜨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멈춘다면 점점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옛날 모습 잠깐 생각해 봅시다. 청소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청소년 때에 즐거워 하던 것이 어른이 되고 신앙이 성숙해지며 변화되었던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즐거워하라"고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즐거움이란 부모님 몰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또래 친구들에게 멋있어 보이려는 어른 흉내내는 일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이전에 즐거워했던 것들이 의미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신앙이 성장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예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직분을 받고도 여전히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청소년 시절 어른 흉내 내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상을 흉내내는 것 아닌가요? 이 땅에서의 욕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교회만 다니는 종교인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이 악한 세상에서 담대히 영적으로 싸우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서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메시아를 아는 요한

세례 요한은 당시 메시아가 누구신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고, 메시아가 오시면 심판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빈들에서 세례를 베풀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눅 3:16-17).

 

요한은 예수께서 자신에게 오기 까지는 메시아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촌인 예수가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을 때에 그가 메시아임을 확신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듣게 되면 그가 메시아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요한은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요한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요한은 헤롯을 비판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요한의 마음속에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감옥에 갇힌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메시아라고 확신했던 예수님께서 아무런 심판도 행하지 않으시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요한은 메시아가 오시면 불로 심판하시고, 악한 자들을 벌하실 것이라 믿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인기 몰이나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감옥에 갇혀 시간이 흘러도 기대했던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요한은 점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내가 정말 맞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 예수가 정말 메시아가 맞을까?"

요한은 결국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이렇게 묻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눅 7:19)

 

요한은 메시아에 대해서 당시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기대와 달리 일이 전개되자 오히려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아무리 거룩과 참됨으로 살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의 순교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요한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심지어 순교를 당했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야고보가 죽임을 당하고, 많은 성도들이 핍박을 받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온전히 예수를 아는 제자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제자들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십자가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입니다. 요한은 십자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를 보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란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대신 지신 고난의 자리요, 저주의 자리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나의 죄를 짊어지신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하고 유일한 증거는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든 일을 당해도, 심지어 암에 걸린다 할지라도, 십자가가 믿어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아는 길

십자가를 아는 길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곧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거룩을 향하여 한없이 달려가야지만 십자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하고,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찾으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의 연약함과 죄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내가 정말 원수를 사랑하고, 시기와 질투 없이 살고 싶은데… 이게 되지가 않습니다. 내 본성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죄와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

 

바울조차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한 거룩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없이는 나는 도무지 살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아는 길은 자신의 연약함을 깊이 깨닫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이 나를 살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십자가를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말 십자가를 아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진짜로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삶이 달라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예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삶에 예수가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때로는 고난과 핍박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감옥에 갇히고, 핍박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킨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안다면,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곧 내 삶이 예수님의 삶과 닮아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야 합니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 머물지 말고, 주님을 아는 삶을 살기 위해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예수님은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본성적인 욕구나 삶의 경험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2. 당신은 예수님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삶으로 따르고 있습니까?


15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또 그 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21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3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24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25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아모스요 그 위는 나훔이요 그 위는 에슬리요 그 위는 낙개요

26그 위는 마앗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서머인이요 그 위는 요섹이요 그 위는 요다요

27그 위는 요아난이요 그 위는 레사요 그 위는 스룹바벨이요 그 위는 스알디엘이요 그 위는 네리요

28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앗디요 그 위는 고삼이요 그 위는 엘마담이요 그 위는 에르요

29그 위는 예수요 그 위는 엘리에서요 그 위는 요림이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30그 위는 시므온이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요남이요 그 위는 엘리아김이요

31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32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33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

34그 위는 야곱이요 그 위는 이삭이요 그 위는 아브라함이요 그 위는 데라요 그 위는 나홀이요

35그 위는 스룩이요 그 위는 르우요 그 위는 벨렉이요 그 위는 헤버요 그 위는 살라요

36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37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38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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