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41-52
질풍노도 시기의 예수님
돌 예배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구절
돌감사 예배를 드릴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가 누가복음 2장 52절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이 구절에는 아이를 향한 세 가지 중요한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지혜가 자라는 축복, 키가 자라는(신체의 정상적 성장) 축복,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받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돌잔치를 맞이한 아이에게 예수님이 누리신 이 축복을 빌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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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첫째 아들 돌 감사 예배 때 목사이신 고모부께서 설교하셨는데, 이 말씀으로 축복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모든 부모의 바람은 아이들이 예수님처럼 성장하는 것이겠죠.
청소년 시기의 예수
예수님께서도 유아기를 지나 청소년으로 성장하셨습니다. 유아기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메시아라도 뇌와 근육 발달이 미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청소년기가 되면서 예수님의 육체적 성장이 정상적으로 잘 이뤄집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성장도 잘 이뤄졌는데 메시아로의 자아 정체성을 가졌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12살의 메시아로써 몸도 어느 정도 성장하고 정신적으로도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고 행동함으로 인해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큰 어려움을 주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청소년기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아이들은 몸이 성숙해지고 정서도 발달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릅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표현이지요. 이 시기의 청소년의 특징은 아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어른도 아닌 상태라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어른처럼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끼인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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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써 사춘기 아이들을 보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 하니?"라고 어른들은 답답해하지만, 사실 아이들 입장에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혼란과 갈등입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청소년기의 한가운데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의 운명으로 이땅에 오셨지만 역시 부모의 돌봄 속에 있어야 하는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청소년기의 문제는 여느 아이들처럼 잘못된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청소년의 성장기에 메시아로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나이는 12살이라 하였으니 유대인으로는 13살에 성인식을 하기 때문에 이제 거의 성인의 위치에 이르른 나이입니다. 그러나 12살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부모님을 따라다녀야 하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요셉이 유월절을 지키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예수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하룻길입니다(44절). 집에 돌아와 다른 가족이나 집에 있나 찾아본 것이 또 하루.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를 성전에서 랍비들과 대화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까지 또 하루 총 사흘 동안 마리아와 요셉은 속이 터졌었습니다(4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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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
이 말에서 마리아의 애타는 마음이 묻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에 대해 놀라운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눅 2:49).
12살의 예수께서는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계셨습니다. 단순히 부모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집에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부터 스스로 "나는 메시아야"라고 인식하고 계셨던 것은 아닙니다. 아기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이 자라나셨습니다. 예수님도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12살 때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그분이 여느 아이들 처럼 두뇌와 정신의 성장을 위한 성경, 부모의 말들, 성령의 가르침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계셨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12살의 예수님은 여전히 요셉과 마리아 밑에서 자라셔야 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해 주는 밥을 먹어야 하고, 가족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삶을 그대로 사셨습니다.
청소년기를 잘 보내신 예수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알고 계셨지만, 동시에 땅에서 요셉의 아들로 살아가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면서도, 인간으로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청소년 시기에 방황하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끼어 있는" 삶을 사셨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늘의 아들이면서도 땅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을 보여 주는 말씀이 누가복음 2장 50~51절입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12살의 예수는 부모님께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끼어 있었지만, 부모님을 공경하며 그 가정 안에서 자라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속한 분으로서 부모님께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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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 구절은 예수님이 단순히 신적인 존재로서 계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잘 성장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나는 메시아야"라고 외치며 특별한 길을 걸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똑같이 교육을 받고, 똑같이 성장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지혜가 자랐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배움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셨음을 의미합니다. 키가 자랐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아이들처럼 앞으로 성인에 이르기까지 밥도 잘 먹고 동네 아이들과도 씩씩하게 잘 뛰어 놀았다는 말입니다. 다만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순종의 삶을 통해 사람들 속에서도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본으로써 성인으로의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우리도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서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학교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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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하나님께 속해 있으면서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존경받고 칭찬받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의 삶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어떻게 세워져 가야 할까요?
사도 바울도 이 땅에 사는 것이 큰 소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빌 1:23).
바울의 마음은 온전히 하늘에 향해 있었고, 바울의 정체성은 하늘에 속한 것이었습니다(빌 3:20).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목적을 분명히 붙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빌 1:24).
1.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
바울은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태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친구 중에 술취한 사람과도 잘 지내고, 직장 동료중에 교회를 욕하는 사람과도 화목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믿음이 깊어질수록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이 생기곤 합니다.
"나는 집사야, 나는 믿음이 좋아"
“저 인간은 왜 저러고 사냐? 다시는 만나지 말자.”
사람들을 정죄하고 괴롭히는 것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태도는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관계 속에서도 잘 살아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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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특히 가정 안에서 믿지 않는 가족과 함께 살아갈 때, 또는 믿음의 차이로 갈등을 겪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사회 생활 속에서 만난 사람과 달리 가족은 어떻게든 구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행실로 보여주는 믿음
베드로전서 3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아내에게만 국한시키지 말고 모든 가족 구성원 속의 위치 속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믿지 않는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교회 가자”, “예수님 믿어라”라고 말한다고 해서 쉽게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히려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의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가정 사역하시는 이희범 목사님이 하신 예화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예전에 어떤 권사님이 믿지 않는 남편과 늘 부딪혔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사탄아 나가라!"라고 외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남편이 변하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화를 내고 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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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권사님이 가정 상담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렇게 믿지 않는 남편에게 소리 지르는 권사님에게 목사님이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마다 손가락질하며 비난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보세요."
그 조언을 듣고 권사님이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을 변화시켜 주세요. 남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그날 밤, 남편이 또 술을 마시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동안 짜증이 났던 남편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였고, 마음 깊이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랍니다.
그때 남편이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왜 울어?"
그러자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나님께서 내게 그 마음을 느끼게 해주셨어."
그러자 남편도 말했습니다.
"나도 고마워. 이제 술 좀 줄여볼게."
저는 이 지혜가 우리처럼 모든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끼인 사람들이 알아야할 예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될 때 오히려 상대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 안에서,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켜야 하지만, 그 방식이 정죄는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랑을 통해, 인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줄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3. 하나님께 속한 정체성을 붙잡되, 세상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라
우리의 정체성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청소년으로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의 자신과 세상의 아들로의 자신 사이에서 어떻게 하셨는지가 좋은 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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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메시아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계셨지만, 부모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가 시작되는 30살이 되기까지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만하셨다면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사랑 받는 자가 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정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섬기셨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덕스러움을 나타내야 합니다.
4.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라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핫비시오.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내가 하늘에 속한 자로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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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세상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결론: 끼어 있는 자리에서 사랑으로 살아가라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입니다. 변하지 않는 가족들 때문에 때로는 힘들고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되, 세상 속에서 사랑과 섬김으로 나아갑시다. 오직 하나님의 때를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지혜롭게 성장하고 있습니까? 또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사랑스러운 존재로 변화하고 있습니까?
2.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살지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골 3:2). 당신은 지금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살아가려면 무엇을 더 실천해야 할까요?
눅 2:41-52
41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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