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디모데전서 3:1-7 감독의 직분 -매일성경, 큐티 / 목사, 장로, 교회 직분

사랑합니다예수님 2024. 11. 5. 07:42

딤전 3:1-7

감독의 직분

 

교회 지도자의 역할과 그 중요성

교회 지도자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감독’은 목사와 장로와 같은 교회 지도자들을 뜻합니다.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 영적인 모든 것이 이 지도자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를 세우는 일은 그만큼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교회 감독의 자격에 대해 언급된 구절은 단 일곱 구절에 불과합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적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일곱 구절은 단순히 형식적으로 만든 기준이 아닙니다. 이 구절들은 우리에게 교회 지도자가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보게 하는 기준이 됩니다.

 

부르심

사도 바울은 교회 지도자의 직분, 특히 감독직을 사모하는 마음을 "미쁜 일"이라 표현했습니다.

 

딤전 2:1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여기서 "미쁘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쓰지 않고, 신실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강조할 때 사용됩니다. 바울이 감독직을 향한 사모함을 "미쁘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마음이 단순한 인간적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갈망으로, 성도를 섬기고자 하는 귀한 사명감이 담긴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해 감독직이 단순한 직무 이상의 것이며, 하나님이 부르신 고귀한 자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목사로의 부르심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명확한 말씀으로 부르실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 부르심은 제 안에서 서서히 자라나는 갈망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목사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소망을 주셨고, 이는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총신대학교 신학과 후배들 중에는 신학 과정을 마친 후 목회가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신학을 공부했으니 목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권해보기도 했지만, 그 후배는 마음이 없는데 목회자의 길을 걸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결국, 감독직에 대한 사모함은 단지 사람의 권유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적 갈망(부르심)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이 감독을 감독자로 삼으셨다는 말의 의미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성령이 감독자로 세우셨다는 것은, 감독직이 단지 개인의 열망이나 노력으로만 되는 자리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직접 세우시는 일이며, 이 과정에는 교회의 성도들의 인정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드러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성도들의 모임이며, 성도들은 모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교회의 감독을 인정하는 것은 단순한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에 따른 것입니다. 즉, 감독의 직분을 감당할 사람을 성도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바로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감독자를 세우시는 일에 교회가 함께 반응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감독직은 결코 사람의 의지나 인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도들이 그 사람을 지도자로 신뢰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가 감독으로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감독직을 사모하는 자가 교회 공동체에서 오랜 시간 동안 섬김과 인격적인 신뢰를 쌓고, 교회가 성령의 감동으로 그를 지도자로 인정할 때에야 감독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감독의 직분은 오직 성령의 역사와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인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고귀한 자리입니다.

 

감독직의 절대 권위주의와 평등주의

하지만, 이 감독직을 두고 잘못된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감독직을 절대적 권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감독을 교회 내에서 무조건적 권위를 지닌 자로 여겨 모든 결정과 지위를 좌우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감독직을 아예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니 굳이 직분의 차이를 둘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극단적인 두 입장은 모두 올바르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의 권위가 베드로에게 부여된 권위에서 출발한다고 믿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8-19절의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가톨릭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자 초대 교황으로서의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해석합니다. 이 권위는 이후 모든 교황에게 계승되었고, 교황을 통해 교회에 대한 보호와 교리 수호의 역할이 지속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교황은 가톨릭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이자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회를 대표하고 이끄는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를 통해 교회가 통일성을 유지하고 신앙의 중심에서 교리와 윤리를 수호하는 것이 가톨릭의 중요한 전통입니다.

 

반면, 종교개혁자 칼빈은 교황의 절대적 권위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베드로에게 주어진 권위가 교황직으로 계승된다는 가톨릭의 해석을 성경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칼빈은 원래 감독의 역할이 성도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자리여야 한다고 보았으나, 교황제도가 세월이 지나면서 본래의 순수한 역할에서 벗어나 정치적 권력과 세속적 야망의 중심으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의 본질이 손상되고 부패가 초래되었다고 보았습니다.

 

교황 무오성 교리는 교황이 말하거나 선언한 내용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며, 이는 베드로조차 인간적인 연약함 속에서 실수를 했던 성경적 사실을 간과한 위험한 교리입니다. 교황직이 베드로에게 주어진 구원의 열쇠를 계승한다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성경을 통해 보면 베드로 자신도 실수를 반복한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열정과 헌신이 남다른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끝까지 예수님께 충성을 다짐했지만,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실패했던 사건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3-35절에서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며 자신있게 선언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연약함을 미리 아시고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체포되던 날 베드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이는 베드로조차도 인간적인 약점으로 인해 흔들릴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에서는 바울이 베드로의 실수를 지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방인들과 어울리던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다가오자 그들과 거리를 두며 이방인들과 함께하기를 꺼려했는데, 이 행동은 복음의 진리에 어긋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꾸짖으며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따를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는 베드로조차도 복음을 따르는 과정에서 부족함을 드러내며 회개와 자각이 필요한 인간이었음을 나타냅니다.

교황 무오성 교리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망각한 채 교황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높이며, 그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적으로 무오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방교회

절대 권위와는 반대되는 극단적인 견해로, 교회의 직분을 없애고 평신도가 모두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방교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워치만 니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교회 안에 목사나 감독을 세우지 않고, 모든 성도가 수평적 관계에서 돌아가며 섬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말씀,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모든 성도가 제사장 직분을 맡는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교회의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감독직과 장로직을 명확히 세우고, 그 직분을 통해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감독직을 사모하는 마음을 “미쁜 일”이라 칭하며, 감독직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귀한 부르심임을 강조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사람이 임의로 만들어낸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입니다. 이러한 질서를 통해 성도들이 서로를 섬기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도록 한 것입니다.

칼빈 또한 이 감독직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원칙을 무시하는 행위라 지적했습니다. 지방교회와 같이 감독직을 거부하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질서와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순결함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감독직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그 부르심에 따라 교회가 올바르게 세워져야 합니다.

감독의 결혼

디모데전서 3장 2절부터 5절에서는 바울이 감독의 자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감독이 결혼한 사람일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라는 조건을 포함하여, 감독이 가정을 잘 다스리고 자녀들을 공손하게 양육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라는 말씀으로, 가정에서 책임을 다할 수 있을 때 교회에서도 올바른 지도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이 감독의 기준으로 결혼한 상태에서 가정을 잘 관리하는 사람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여 성직자들에게 독신 서원을 요구하는 규율을 세웠습니다. 이는 가톨릭 교리와 교회법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확립된 전통이기도 합니다. 라틴, 서방 교회는 성직자의 독신이 주님께 더욱 헌신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분산되지 않는 봉사의 길이라 여기며 이 제도를 지켜왔습니다. 이 전통은 특히 11세기부터 가톨릭 성직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요구되었으며, 이로 인해 성직자의 독신은 가톨릭 신학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종신 서원에는 독신 서원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설명한 감독의 자격 조건은 결혼과 가정 관리가 포함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에서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독신을 권하였지만, 이는 모든 성직자가 반드시 독신이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9절에서 바울은 "정욕을 이기지 못하는 자들은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하며, 독신의 은사를 받지 못한 자들에게 결혼을 통해 정결한 삶을 살 것을 권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성직자가 가정을 통해 책임감을 배우고 성숙한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감독의 직분을 맡는 이들이 가정을 다스리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칼빈은 디모데전서 4장 1-3절을 인용하여, “혼인을 금하는 것은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성직자에게 결혼을 금지하는 규율이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13장 4절에는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5절에서도 사도들이 아내를 두었다고 명시하며, 결혼은 사도들도 하였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독신 서약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거짓 포장을 하려고만 한다면 사도들조차 부정한 자들로 여기는 것입니다.

고대 교부 크리소스톰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일급의 순결은 순전한 처녀성이요, 이급의 순결은 충실한 결혼생활이다. 그러므로 순결한 결혼의 사랑이야말로 제2의 처녀성이다.”

크리소스톰

결국, 성직자의 독신을 순결의 최상으로 여기는 태도는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멉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성경이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충실한 가정을 이루고, 그 모범을 통해 교회를 이끌어야 합니다.

 

감독의 순결

바울은 디모데전서 3장 6-7절에서 감독이 교회 안팎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어야 함을 강조하며,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고 말합니다. 감독은 신실한 인격으로 신뢰를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이는 교회 내외적으로 선한 증거를 갖춘 자라는 의미입니다.

고대 교회는 이러한 감독의 자격을 지키기 위해 성직자들이 세속적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했습니다. 성직자들이 본분을 다하고 성도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사냥, 도박, 과도한 음주, 상업 활동 등을 금지하고, 음란한 무도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규율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규율들은 성직자가 교회와 성도들 앞에서 순결을 지키며 신앙의 모범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규율들이 성직자들에게 느슨하게 적용되고 성도들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면서 불균형이 생겼습니다.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는 특히 성직자들, 특히 감독들이 성도들의 신뢰나 신앙적 평가를 바탕으로 세워지기보다는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임명되는 일이 흔했습니다. 당시 감독직은 신앙적 자격보다는 권력의 자리로 여겨졌고, 왕이나 귀족들의 정치적 이익에 의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교회법과 정치법에 따라, 주교와 고위 성직자의 임명에 있어 세속 권력과 교황청 간의 정치적 거래와 협상이 성행했고, 이는 종종 신앙보다는 권력 관계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이처럼 감독이 교회의 영적 지도자이기보다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면서, 그 권위는 성도들의 존경이나 신뢰에 기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감독들은 성도들보다는 정치적 후원자들에게 충성하게 되었고, 권징 또한 불공정하게 집행되거나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임명은 결국 교회 안에 부패를 심화시켰고, 감독직의 신뢰를 크게 훼손하여 중세 가톨릭 교회의 타락을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감독직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소명의 자리이지만, 그 자리는 또한 교회로부터의 신뢰와 존경에 기반해야 합니다. 성경은 감독이 교회와 세상 속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교회의 지도자는 성도들의 신뢰와 지지 위에 세워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정치적 세력에 의해 세워지고 그들의 영향력에 종속되었을 때, 교회는 부패의 길로 치달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는 신앙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이어야 하며, 하나님과 성도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위치에 서야 합니다. 성도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지도자만이 교회와 세상 앞에서 선한 증거가 되며, 온전한 신앙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감독과 성도

감독직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특별히 세우신 귀한 직분으로, 단순한 직무 이상의 거룩한 사명입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과 성령의 감동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리로, 주변의 권유나 개인적 욕망으로 이룰 수 없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돌보도록 특별히 택하신 자리임을 깨닫게 될 때, 감독직을 맡은 자들은 그 무게와 책임을 깊이 인식하며 섬기게 됩니다.

저 역시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기며, 이 사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4장 2절에서 말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는 말씀처럼, 감독직은 충성과 헌신으로 감당해야 할 자리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목숨을 다해 교회를 섬기고 돌보아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한편, 성도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을 존경하며 그들의 사역을 함께 세워나가는 책임이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자를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고, 서로 좋은 것들을 나누라 권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지도자와 성도들이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하나님의 공동체로 세워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존중하고, 서로 충성되이 협력할 때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거룩한 사명과 공동체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협력하며 주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가기를 소망합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교회 지도자들을 존경하고, 그들이 감당하는 사역을 위해 어떤 기도로 돕고 있습니까?

 

2. 당신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을 받아 공동체 안에서 충성스럽게 섬기고 있습니까?


딤전 3:1-7

1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4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5(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6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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