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전 3:8-16
집사직분
집사 직분의 의미와 자격
집사는 교회 내에서 실질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중요한 직분으로, 교회가 맡긴 일을 충성되게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직분은 주로 교회의 봉사, 구제, 교육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드러납니다. 여기서 실질적이라는 말은 교회에서 헌금을 통해 이루어지는 다양한 사역들을 수행한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집사의 제도가 처음 언급될 때, 사도들은 말씀 전파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구제와 같은 실질적 사역을 감당할 사람들을 찾기로 결정합니다. 그 결과 일곱 명의 집사가 세워지는데, 이들 가운데 빌립과 스데반과 같은 인물들은 단순히 구제에 머물지 않고, 복음 전파와 병든 자를 고치는 일에까지 헌신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들 안에서 강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
집사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행정적인 일을 잘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함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반드시 기적을 일으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에 충만한 사람, 그 말씀을 충성되이 따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말씀에 따르면 집사의 자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일을 탐하지 아니하며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딤전 3:8-11)
이와 같은 자격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나열한 자격들을 보면, 결국 집사의 모습은 성령 충만함을 받고 말씀을 따라 힘 있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믿음과 선한 양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즉 겸손하고 충성된 태도, 거짓이 없고 검소한 삶이 바로 성령 안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입니다.
성령 충만과 집사의 임명
우리나라 몇 교회들 중에는 집사직을 주지 않는 교회들이 종종 있습니다. 감독직분에서 말씀드렸듯이 감독직을 주지 않던 지방교회와 같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떤 교회는 집사의 직위에 대한 요구 수준이 높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성령 충만함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완벽한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벽을 요구하는 대신, 집사의 직분을 맡아 봉사의 자리에 설 때 그 사람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더욱 깊어지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딤전 3: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집사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큰 믿음과 담대함을 더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일정한 영적 성숙과 성령 충만함을 갈망하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는 모습이 보이면 그를 집사로 세워야 합니다. 집사직은 초대교회때부터 사도의 사명을 나눈 명예로운 자리로, 성도들이 집사직을 통해 교회를 섬기며 신앙이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단지 2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집사를 임명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책임지는 목사와 장로는 집사를 세우는 데에 있어서 분명한 방향을 가져야 합니다. 집사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말씀과 기도 안에서 양육하고, 교회를 섬길 마음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 말씀에 의하면, 목사의 역할은 성도가 봉사의 일을 하도록 세우는 데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실질적인 봉사를 하며 섬김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양육하는 것이 목사의 역할인 것입니다.
집사의 실제적인 역할
그러면 집사는 실제적으로 어떤 일을 합니까?
교회에서 재정을 지원 받아 선교, 구제, 예배, 교제, 양육등을 하게 됩니다. 이 다섯가지는 교회의 주요 일들입니다.
1. 선교: 예수님의 지상 명령(마태복음 28:19-20)을 따르는 사역으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 중 하나입니다. 선교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따르는 것이며, 이 명령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행해야 할 우선적 임무로 여겨집니다.
2. 구제: 교회는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돕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도행전 4:32-35에서 초기 교회가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가난한 자들을 돕는 모습을 보이며, 이는 교회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나눔을 실천하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제 활동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세상에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3. 예배: 예배는 교회의 중심적인 사역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화시키고 믿음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4)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재정을 통해 예배 환경을 마련하고 유지하며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4. 교제: 교제는 성도 간의 공동체적 관계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도행전 2:42-47에서 초대 교회가 성도의 교제를 통해 서로를 돌보고, 함께 예배하고, 물질을 나누며 믿음의 공동체를 세운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중요한 토대입니다.
5. 양육: 성경은 교회의 주요 임무 중 하나로 성도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에베소서 4:11-13에서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한다고 말하는 바와 같이, 교회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며, 성경적 가치관과 신앙 생활을 가르치는 데 책임이 있습니다.
릭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
이들은 단순한 보조 역할이 아니라 교회의 중요한 사명을 실현해 나가는 매우 구체적인 일들로, 실제로 집사님들이 헌금을 사용하여 교회의 다양한 사역을 이루어 가는 중대한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집사님들이 헌금을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교회의 감독을 받습니다.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이들을 감독하고, 집사님들이 사용하는 예산과 지출을 점검하며 계획이 올바르게 실현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역할은 초대교회의 7집사들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이어진 명예로운 전통입니다. 당시에도 집사님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구제 사역에 힘쓰며,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초대 교회 일곱집사 안수식 상상화
또한 초대교회와 고대교회 집사들은 때로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헌신적으로 헌금을 드리며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나누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교회의 필요를 채웠습니다. 이는 단순히 헌금만을 드리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통해 교회를 섬기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섬김이 가능했던 것은 감독들이 먼저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와 같은 감독이 자신이 가진 밭을 팔아 교회에 바치고, 성도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감독이 검소하고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헌신할 때, 집사들도 그 본을 따라 기꺼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검소함과 교회 재정의 사용
초대 교회는 점차 부유해졌지만, 그 재정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기근이 들었을 때, 교회의 지도자였던 키릴루스는 구제를 위해 교회의 그릇과 예복을 팔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교회의 물질은 쌓아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어려움을 덜어주는 데 사용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암브로시우스가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비난받은 일화도 있습니다. 그가 교회의 성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운 것이 문제가 되자,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암브로시우스(339-397)
“교회가 금을 가진 것은 쌓아두기 위함이 아니라 쓰고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성례에는 금이 필요 없고, 갇힌 자들을 해방시키는 석방금이 바로 성전의 장식물이다.”
이렇듯, 고대 교회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구제와 섬김에 힘썼고, 교회의 물질은 이러한 사역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섬김을 위해서는 교회를 이끄는 감독이 올바른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감독의 자격에 대해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감독이 교회의 물질을 올바르게 사용하며 검소한 삶을 본으로 보일 때, 교회는 진정한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교회를 이끈다면, 교회의 재정이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위해 사용되기 어렵고, 성도들도 진정한 섬김에 참여하기 힘들 것입니다.
집사에 대해서도 검소에 대한 기준이 있습니다. 집사는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고, 여성 집사는 정숙해야 한다고 합니다. 집사는 교회의 헌금을 맡아 봉사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로서, 감독의 지도 아래 섬김과 구제, 그리고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헌신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와 고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 검소하게 살며 성도들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가톨릭의 부제와 개신교의 집사직에 대한 비판
초대 교회가 검소하게 하나님을 섬겼던 것에 반해, 로마 교회는 점차 사치와 부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로마 교회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교회 안에서 집사직이 평신도의 사역이 아닌 성직자의 서열 속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현재 가톨릭에서 ‘부제’라 불리는 집사 직분은 성직자로 서품되어 사제와 주교의 보조 역할을 하며, 예식에 참여하고 노래나 성경 봉독을 맡는 역할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부제들(Diaconus)
그러나 개신교의 집사는 감독의 지도 아래 교회의 봉사와 구제에 직접 참여하며, 실질적으로 교회의 물질을 관리하고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칼빈은 당시 로마 교회가 구제를 위해 쓰여야 할 교회의 자금 중 약 4분의 1이 사제들에게 흘러갔음을 비판하며, 이를 “하나님의 돈을 훔친 것”이라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집사들은 구제와 봉사에 헌신하여 스스로 재정 관리에 책임을 지며, 필요에 따라 헌금을 사용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중세에 들어 집사직이 사역과 구제에서 멀어지자, 교회의 재정은 성직자들에게 집중되었고, 재물에 대한 통제나 견제가 사라지면서 교회는 세속적 탐욕에 휘말리게 된 것입니다.
고대 교회의 사제들은 절제와 검소함의 모범이 되었고, 히에로니무스는 “주교의 영광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베푸는 데 있고, 사제들의 치욕은 부귀를 추구하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중세 교회의 사제들은 자신들의 부를 채우기 위해 사치스러운 생활을 일삼았으며, 건물과 의복을 화려하게 꾸미고 연회를 즐기며 살아갔습니다. 바울은 감독의 자격으로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딛 1:7)고 강조했지만, 중세 교회는 이 기준을 멀리하고, 오히려 부유함과 사치를 누리며 교회의 본질을 잃어갔습니다.
현대 교회를 향한 성찰과 다짐
오늘날 개신교에는 감독직과 집사직이 잘 확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교회에서는 집사직을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말씀드렸습니다. 집사직을 교회에 두지 않으려는 것은 집사가 직접 교회의 사역을 하면서도 또한 교회가 헌금을 투명하게 사용하는 것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당장은 영웅적인 유명한 목회자와 교회의 지침 아래 잘 운영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고 견제가 사라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중세 교회의 타락을 보면, 이러한 견제의 부재가 얼마나 큰 타락을 불러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
521년 독일 보름스에서 열린 국회에 참석한 마르틴 루터
히에로니무스는 “주교의 영광은 가난한 자를 위해 베푸는 데 있고, 사제들의 치욕은 자기 부귀를 추구하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과연 이러한 가르침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까? 교회의 감독들은 집사들의 헌신을 존중하고, 그들의 수고와 섬김을 보며 스스로 더 낮아지고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평신도들이 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섬기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헌신을 보며 감독들이 본을 보이지 않는다면 교회의 방향이 흔들리고, 참된 공동체의 본질을 잃게 됩니다. 목사와 장로의 영광은 가난한 자를 돕는 데 있으며, 감독의 영광은 검소함과 겸손함에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이룩한 검소하고 겸손한 전통이 중세 교회에서 무너진 것을 우리는 다시 기억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는 다시금 칼빈의 비판을 성찰하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인생이 아니라, 섬기지 못한 것이 아쉬운 인생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며 살아가는 삶의 가치는 우리의 부와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베풀고 섬겼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교회가 진정으로 섬김의 공동체로 나아간다면 우리 사회와 나라가 변화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삶이야말로 참된 복된 삶임을 깨닫고, 더 많이 섬길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지금의 삶에서 '성령 충만함'을 어떻게 느끼고 있습니까? 성령 충만함이란 꼭 기적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히 따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뜻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말씀을 충성되게 따르고 있나요?
2. 당신은 섬김과 헌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깊게 만들고 있습니까?
딤전 3:8-16
8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11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14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16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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