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9:32-43
병고치는 능력 심지어 사람을 살리는 능력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이다.
요즘 병원의 암 병동을 가보면 환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대수명인 83.6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이 38.1%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특히 남성은 80.6세까지 살면 39.1%가, 여성은 86.6세까지 살면 36.0%가 암에 걸린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를 보면, 정말 많은 사람이 암과 같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큰 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찾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질병의 고통과 삶의 어려움 속에서 교회가 함께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병원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사실 병을 고치는 것은 병원의 역할이 아닙니다. 병원은 주로 증상을 완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진정한 치유는 환자 스스로의 삶이 건강하게 변화하고, 몸의 자연 치유력이 발휘될 때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항암약을 처방하는 것은 암을 억제하기 위함입니다. 환자 스스로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며, 몸의 면역력이 암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암 환자는 몸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해도 암은 다시 재발할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최소 5년 이내에 재발할 확률이 8.3%입니다. 재발이 일어나는 시기는 수술 후 1년 이내에 1/3 이상의 환자가 재발하며, 2년 이내에는 70~80%가 재발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는 몸을 고치는 것이 인간의 면역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몸을 진정으로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히스기야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명을 연장해 주셔야 합니다. 병원은 신이 아니며, 환자를 돌봐주는 곳일 뿐입니다.
현대 신학은 초대 교회에서처럼 병을 고치는 기적이나 성령의 예언 같은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저는 목회 현장에서 병이 나아지는 기적과 귀신이 쫓겨나는 경험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베드로의 사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신유는 베드로사도(초대 교회)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대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성령의 역사가 베드로를 통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병을 고치는 기적은 베드로에게 특별히 주어진 능력이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나 모든 사도들이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능력이 오직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행 6:8절에 스데반 집사를 소개한 구절을 보면,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빌립 집사를 통해 사마리아에 많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6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 8:6-8
베드로를 비롯한 신유가 나타나는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것이 있어서 저들에게 병 고침과 축귀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일까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할 때 표적을 나타낼 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었냐면 귀신 들린 아들을 데려온 한 아버지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아이는 귀신이 말을 못하게 하였는데, 거꾸러지고 거품을 물고 파리하게 떨었다고 아버지가 예수께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드디어 그 아이 아버지에게 유명한 말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시며 그 아이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제자들이 묻습니다. 왜 우리는 할 수 없습니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그러면 어느 정도의 기도를 해야 귀신이 떠나가고 질병이 낫는 은사를 주실까? 저는 이런 은사를 받겠다고 삶을 모두 중단하고 기도원에서 매일 기도하는 분도 보았습니다.
물론 많은 기도가 더욱 은사에 은혜를 주시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은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영혼 구원 사역을 위해 주시는 은사입니다.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5-18
복음을 전할 때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는 이 구절에 대하여 주석을 달기를 초대 교회에는 영혼 구원의 역사를 위해 이런 표적이 많이 나타나야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현대를 사는 우리는 더 이상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귀신을 쫓기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없는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도 동일하게 하나님이 낫게 하실 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병든 자를 위하여 끝까지 기도하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 지니라 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약 5:14-16
야고보는 병든 자가 있다면 교회의 장로를 부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이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기름을 바름은 약을 처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증상 완화를 위해서 의료적 도움을 주면서 하나님의 고치심을 위하여 교회가 함께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마가복음과 야고보서의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먼저 기도 이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는 것, 복음을 전하는 흐름 속에서 있는 것(자기 영광이 아님), 기도하는 자도 믿음으로, 그리고 병이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도 믿는 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보자는 의인 즉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르는 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엘리야를 예로 듭니다. 엘리야는 그러면 어떻게 비가 오도록 하였습니까? 그는 작은 구름이 떠오를 때까지 기도합니다. 그것이 일곱번입니다.
일곱번이 정확하게 일곱번이라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 18:43
비 구름이 떠오를 때까지 기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병이 나을 때까지 교회는 힘을 다해서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는 능력
베드로는 이미 죽은 다비다를 다시 살리는 기적도 행했습니다. 이 장면은 엘리야, 엘리사, 그리고 예수님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매우 극적이고 놀라운 기적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적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사람을 살린 일은 교회에 큰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할 수 있었다고 해서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병을 낫게 하시듯, 사람을 다시 살리신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위대한 일들을 해오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더 위대한 일을 할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를 만들어갑시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질병과 고통을 반드시 치유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합시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에 있지 않습니까? 혹은 당신의 가족 가운데 질병의 고통 가운데 있는 분이 있습니까?
2. 당신은 교회와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행 9:32-43
32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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