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13:1-19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문제가 생길 때 풀어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라 생각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오해가 풀려 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관련된 우리의 삶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대답을 듣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말해 주어도 진실로 내면이 평안해지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독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요청
욥은 더 이상 친구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변론을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저들의 변론은 오히려 욥의 마음을 더 상하게 했으니 이는 욥을 죄인으로 호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욥 13:3
욥의 친구들은 자칭 의인들이고 욥은 죄인이 된 그들과의 대화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4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5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욥 13:4-5
어려움이 생긴 자, 응답이 더딘 자에게 교회 권사님이나 집사님들이 조언합니다.
“새벽 예배를 열심히 나와봐.”
“말씀을 열심히 읽었어야지”
“기도를 한 시간씩 했어?”
“목사님 말을 누가 거역하래 그러니까 벌받은 거야!”
이런 말을 하는 자는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아무 죄가 없는 자들인가요? 항상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만 했기에 지금 아무 어려움이 없다는 말인가요?
영적 조언을 해주는 말이 오히려 고난당하는 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9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욥 13:9-10
그러므로 욥은 친구들에게 이제 그 입을 다물고 욥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나 옅들어 보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욥 13:6
이제 하나님 본인이 등판하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전과 같이 욥이 의롭다는 것을 말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욥이 불의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고발해 달라고 말합니다.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 13:23
아무 말도 없이 계시지 말고 욥이 받아야 죄를 받고 있다면 그 죄가 무엇인지 말해 달라 요청합니다. 그러나 보응교리의 한계속에서는 의인이 받는 고난에 대해서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받고 있는 고난의 의미
“내가 받을만한 죄를 받고 있는건가? 이렇게 힘든 일이 생기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이런 생각의 근원 자체가 보응 교리 속의 의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로 어려움을 받아야할 죄인가요?”
우리는 꼭 죄와 고난을 연결하려 합니다. 이것이 보응 교리입니다. 그러나 은혜 교리는 죄와 고난이 항상 연결되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여러 의미에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받을 수밖에 없는 말세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 일어난 세상에서 본인 혼자 고난을 안 받을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에 교회라고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또한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다 당하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으로 들어오라고 초대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 8:17
은혜속에 살아가는 자에게 고난의 의미는 반드시 보응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나의 고난은 무슨 의미인가?
오늘날 많은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참된 성도들이 왜 고난을 받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막힌 줄 알지만 사실은 열려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 1:18
우리의 삶의 주파수가 영혼 구원에 맞춰지면 왜 고난을 받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 환우 중 한 분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제가 암에 걸림으로 우리 식구들이 모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혼구원에에서 고난의 의미를 찾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속에서 삶을 다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왜 고난을 받았습니까?
어떤 사람은 정치적으로 몰려서 로마의 사형 제도에 따라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고난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압니다.
제자들은 왜 고난을 받았습니까?
제자들의 고난을 생활적인 다른 의도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모두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받은 고난이라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나를 주의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면 십자가를 따르는 자가 받는 고난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은 자신의 십자가가 되는 것입니다.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닥쳤느냐고 자기 죄와 비교하여 묻지 마십시오.
내게 닥친 고난은 영혼 구원의 역사속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과의 대화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영혼 구원에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의 삶의 어려웠던 시간에 대해서 받은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입니까? 없다면 오늘 말씀과 같이 영혼 구원의 의미 속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2.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합니까?
욥 13:1-19
1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깨달았느니라
2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
3참으로 나는 전능자에게 말씀하려 하며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4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5너희가 참으로 잠잠하면 그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
6너희는 나의 변론을 들으며 내 입술의 변명을 들어 보라
7너희가 하나님을 위하여 불의를 말하려느냐 그를 위하여 속임을 말하려느냐
8너희가 하나님의 낯을 따르려느냐 그를 위하여 변론하려느냐
9하나님이 너희를 감찰하시면 좋겠느냐 너희가 사람을 속임 같이 그를 속이려느냐
10만일 너희가 몰래 낯을 따를진대 그가 반드시 책망하시리니
11그의 존귀가 너희를 두렵게 하지 않겠으며 그의 두려움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겠느냐
12너희의 격언은 재 같은 속담이요 너희가 방어하는 것은 토성이니라
13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14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15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16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7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18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19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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