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0:7-18
사명자의 딜레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안 하면 되지 않나요? 젊은 사람 중에는 일을 쉽게 그만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정의 아빠가 된다면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그만 두면 안 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 일이 너무 힘들어도 버텨 내는 것은 가정에 대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책 중에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라는 책도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버텨 내야 하는 한국 사회의 아픔을 보고한 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버틸 수 있는 힘은 무엇에 있을까요?
‘사명감’입니다.
예레미야의 사명감
하나님의 경고를 선포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고 감옥도 갇히고 매도 맞으며 살아가는 예레미야는 이런 딜레마를 호소합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 20:9
절대로 사역 안 하리라 마음먹어도 마음에서 사명감 때문에 답답하여 전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입니다.
사람은 감정을 가진 존재입니다. 단순히 본능에 의해서만 살지 않으며 감정으로 인해서 욕구가 더 커지기도 하고 수그러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너지면 일반적으로는 수행할 수 있는 것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하늘에서 비까지 내렸던 선지자였지만 영적 슬럼프가 왔을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숨고 싶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와 비교하여 예레미야는 아무것도 못하겠다며 숨어든 정도가 아닙니다. 아주 출생 자체를 비관하는 심정 상태가 되었습니다.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렘 20:14-18
그러나 사명감은 이런 모든 수렁의 끌어당김을 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나아가게 합니다. 마음에 불이 붙은 것 같아 예레미야는 숨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주께서 명령하시는 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에 전도지를 평화시장에서 돌리셨습니다. 아버지는 평화시장에서 ‘별주부’라는 이름으로 물놀이 용품을 파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는 ‘할렐루야’라고 상호를 바꾸었습니다. 할렐루야라는 상호는 물놀이 용품과 매칭도 되지 않지만 아버지 안에서 불같이 따오르는 열심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같이 고스톱치고 당구치던 이사장이 매일 전도지 돌리며 예수 믿으라 하니 아버지 친구들은 놀렸습니다.
“이 사장이 예수쟁이 되더니 단단히 미쳤다”
“저기 할렐루야 온다.”
그러나 아버지는 친했던 사장들이 조롱하고 왕따시켜도 전도를 매일해야 했습니다. 마음에 사명감이 비난과 조롱을 이기게 한 것입니다.
사명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사명감은 여러가지 강한 감정의 동인 중에서 특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른 욕구들은 자신 안에서부터 발동되지만 사명감은 사명에 대해서 공감하며 나타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명은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오며 시작됩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일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냥 문구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이 살아 있으며 우리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말씀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마 13:8)
말씀은 우리의 귀에 들려지는 것이며 (롬 10:7) 우리의 뇌에 기억되어 욕구가 생기게 되고 감정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환우들에게 매일 두번씩 말씀을 전하려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인하여 포기하지 말고 계속 전진해 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롬 8:5) 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자는 말씀을 따르고 말씀을 따르는 자는 또 말씀을 생각하고 또 말씀을 듣고 따르고 수행하는 이런 선순환의 은혜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침체에 빠지고 말씀을 소홀히하고 멀어지게 되면 반대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되고 육신의 생각은 육신의 일을 하게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6
침체됨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명자는 육의 트랩에 갇힌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씀을 붙들려고 안간힘을 써야 합니다.
사명감은 모든 우리 삶의 근간이 된다.
사명감은 우리 삶의 모든 일에 근간이 됩니다. 예를 들어 부부관계를 말할 때에 부부관계에 중심은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결핍되고 파괴된 상태가 되었어도 계속 관계를 이어가게 하는 힘은 사명감에서 비롯됩니다. 배우자가 미워서 다시는 같이 있고 싶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더 자신을 처서 굴복시켜 관계를 개선시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 관계에 대해서 성경은 이런 조언을 합니다. (엡 5:21-25)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때에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하라.
아내는 남편에게 주께 순복하듯 하라.
이런 말씀들을 한번 생각해 보면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숨쉬는 소리만 들어도 미운 감정이 드는 사람을 주님께 순복하듯 순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명감으로 부부의 깨어진 것들을 메우려 하면서 다시 인간적 사랑의 감정으로 부부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세상에서의 일과 관계에 대해서도 사명감으로 할 것을 조언합니다. (엡 6:1-10)
부모와 자식 관계, 종과 주인의 관계 속에서 사명감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관계를 이루어 가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모든 삶에 사명감이 불타 오르길 기대합니다.
사명감 속에 있는 자는 삶의 모든 딜레마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힘이 생겨날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관계를 끊어내지 않습니다. 숨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삶의 에너지로 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관계, 말씀, 미래에 대한 소망…)
2. 말씀을 향한 당신의 열정은 어떠합니까?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등등….
렘 20:7-18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득남하였다 하여 아버지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무너뜨리시고 후회하지 아니하신 성읍 같이 되었더면, 그가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니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머니를 내 무덤이 되지 않게 하셨으며 그의 배가 부른 채로 항상 있지 않게 하신 까닭이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부끄러움으로 보내는고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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