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6:1-15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는 사람들의 특징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래야 멸망 받지 않을 것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기후의 변화, 전염병, 전쟁, 기근, 홍수 난리와 소문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이제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보거든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알라 하였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으로 우리는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더 긴급하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경고를 무시할 것입니다.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 마음의 경계가 풀어진다.
저들은 매일이 평범한 날들이라며 경고하는 자들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급박하게 임합니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패망할 것입니다.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렘 6:1
왜 베냐민을 호명하냐면 예루살렘은 본래 베냐민 지파의 기업이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도성으로 삼은 뒤에 유다지파도 많이 유입이 되었겠지만 근본적으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입니다.
“셀라와 엘렙과 여부스 곧 예루살렘과 기부앗과 기럇이니 열네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라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었더라”
수 18:28
드고아, 벧학게렘 모두 예루살렘 인근의 도시들입니다. 성읍인근의 도시들은 예루살렘으로 오가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도성에서 물건을 사기도 하고 물건을 팔기도하며 드고아와 벧학게렘에서 오갔습니다. 그 모습은 지극히 평범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렘 6:2
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이라는 말이야 말로 현재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예루살렘과 인근 도시의 사람들의 마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코 황폐하여 질 것이라 생각조차 못하는 눈에 보이는 모습입니다.
“3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3-4
하나님의 진노가 가까이 왔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깨어 있으려 힘씁니다. 그러나 이를 비웃으며 조롱하는 이들은 여전히 만물이 똑같다며 우리의 경계하는 마음을 비웃습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보며 우리도 정욕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경계가 풀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이 평범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조차도 베드로 사도는 징계를 위한 이유라고 엄히 말씀하십니다.
“6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 6-7
평범하게 있는 것처럼 보여도 오늘날 일어나는 여러가지 징조를 보며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음을 우리는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잠시 찾아온 평안에 경계를 푸는 자들.
또 잠시 삶이 괜찮아진 것 같다하여서 하나님의 경고를 생각지 않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렘 6:4
치려고 올라오는 자들이 지금 아직 안들어왔다고 재앙이 안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징계가 잠시 주춤한 표현으로 예레미야는 전쟁을 준비하느라 늦어졌고 준비하다가 날이 저녁이 안 오는 줄 알면 안됩니다.
“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 하도다”
렘 6:5
재앙은 급박하게 생각하지 못한 가운데 찾아올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목회하며 음란의 문제로 성도들에게 틀켰다고 해 봅시다. 그래서 신문에도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며 자숙하는데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가 양쪽으로 나뉘어서 쫓아내라는 성도들, 우리 목사님이 회개했다며 받아주려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그냥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며 쫓아내려는 성도들을 오히려 쫓아냅니다. 이런 저런 죄명을 씌우고 공작하여 쫓아냅니다. 극단적이지만 그래서 결국 교회를 다시 목회를 시작했다고 해 보겠습니다. 이 죄악을 하나님은 가만 둘 것 같지 않습니다.
더 무서운 진노하심으로 패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6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7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렘 6:6-7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때에 유대의 그 포학한 것과 악이 드러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샘이 솟구쳐 나는 것처럼 악이 드러날 것이라 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와 경계를 두려워 하지 않는 자들은 더 악해지고 더 포학해지는 것입니다.
기 삶을 지키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지켜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 잠시 숨고르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더 무서운 재앙이 깨닫지 못한 때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길 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멸망 받아 없어지길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패망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렘 6:8
징계를 받고 있을 때에라도 훈계를 받고 회개를 진심으로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9-10
당신의 자녀들이 불의 심판을 받아 사라지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어려움들 속에서 우리는 깨닫고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자들의 특징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10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11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렘 6:10-11
여호야김 때에 1차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갑니다. 당시 여호야김은 쇠사슬에 묶여 잡혀 갔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는데 즉위한지 3개월만에 다시 바벨론에 침공을 받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갑니다.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왕하 24:9
18세에 왕이 되어 3개월이 지나는 동안 그는 두려움도 없고 경계함도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시드기야입니다. 앞의 일들을 보고도 회개가 없습니다. 경계함이 없습니다.
시드기야는 요시야의 아들입니다. 시드기야는 본명이 맛다니야입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식 이름입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세워졌으나 바벨론에 항거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선지자는 바벨론에 조공을 바쳐야만 산다고 말했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
렘 27:8
그러나 그가 끝까지 바벨론에 대해서 반기를 들었으니 그 이유를 성경은 그가 악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가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 보다는 거짓의 말들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거짓이 무엇입니까?
“13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3-14
“괜찮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다.”
전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음란하고 방탕한 목사가 되었다고 해 봅시다. 그래서 결국 문제가 어느 정도 봉합이 되었다고 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저를 괜찮다고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철저히 회개하지 않는다면 저는 완전 패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3차 포로까지 잡혀갈 때에 시드기야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시드기야는 경고를 무시하였습니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6:15
그리하여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혀 쇠사슬에 묶여 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이 죽는 것을 봐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핵심이 아닙니다. 회개가 핵심입니다.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정한 회개입니다. 살아 남으려는 몸부림이 아닙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살 길은 예수 믿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라 우리는 계속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당신 주변에 하나님의 심판의 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2. 우리는 마지막 때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이 깨어 있게 하기 위해서 늘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최근 당신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렘 6:1-15
1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2아름답고 우아한 시온의 딸을 내가 멸절하리니
3목자들이 그 양 떼를 몰고 와서 주위에 자기 장막을 치고 각기 그 처소에서 먹이리로다
4너희는 그를 칠 준비를 하라 일어나라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 아하 아깝다 날이 기울어 저녁 그늘이 길었구나
5일어나라 우리가 밤에 올라가서 그 요새들을 헐자 하도다
6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
7샘이 그 물을 솟구쳐냄 같이 그가 그 악을 드러내니 폭력과 탈취가 거기에서 들리며 질병과 살상이 내 앞에 계속하느니라
8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9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포도를 따듯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너는 포도 따는 자처럼 네 손을 광주리에 자주자주 놀리라 하시나니
10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11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12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4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5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묵상을 돕는 주해
1베냐민 자손들아 : 예레미야는 베냐민 사람이었다. (렘 1;1) 예루살렘은 베냐민 자손이 받은 기업이다. 수 18:28 “셀라와 엘렙과 여부스 곧 예루살렘과 기부앗과 기럇이니 열네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라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었더라“ (Benson Comment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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