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0:25-42
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나의 사명
저는 지금 암 환우들을 섬기는 일에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사역에 대한 주님의 비전도 품고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확장되면 주님을 찾고 기도하는 이들 모두를 섬기는 것이 제가 가진 비전입니다.
20대 초반에는 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러하듯이, 그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 속에서 대학을 갔고, 선배들이 추천하는 길을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원래 음악을 하고 싶어해서 철학과를 갔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막연한 결정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나름의 방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군 복무도 마치고 복학한 뒤에는 더 먹고 사는 문제가 마음에 커졌습니다. 철학 공부? 음악인? 이런 거 해서는 먹고 살 수 없는 것이지요. 철없던 시절 헛된 생각입니다. 먹고 사는 것을 위해 고민하던 어느 날, 선배들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컴퓨터 홈페이지 일에 선배들과 함께 하기로 했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하며 살 겁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돈을 벌어야죠.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라고 답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예수님은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아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우리는 늘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걱정합니다. 심지어 암 병이 나아도 먹고 사는 일로 또 걱정을 하지요.

특히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을 진 분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걱정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정말로 믿어야 할 약속입니다. 만약 이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 해 주시리라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없는데, 더 큰 기적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 먼저 구해야할 하나님의 나라와 의란 무엇일까요?
어느 날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5)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묻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 10:26).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예수님께서는 그 대답이 옳다고 하시며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율법 학자는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강도를 만나 길가에 쓰러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를 보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지만, 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멸시하고 상종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도와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율법 학자의 질문을 뒤집어 버리십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이웃이 되어야 하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
율법 학자는 대답합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눅 10:3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우리도 바쁜 일상과 사역 속에서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혹은 다른 중요한 일이 있다는 이유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한 적은 없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의 그것이 거창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실제적인 사랑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외면하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나의 이웃
저는 일평생, 아마 천국에 가서도 잊지 못할 한 친구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반에서 문제를 일으키던 친구를 선생님께 알린 것이 들통난 것 같았습니다. 반장은 선생님을 위해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자리였지만, 그 순간부터 급우들은 그 친구를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그 친구와 점심을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친구와 함께 밥을 먹을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1년 내내 그 친구의 곁에 앉아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항상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서관 화장실에서 그 친구를 마주쳤습니다. 남학생들은 화장실에서 마주치면 참 어색한 시간이 흐릅니다. 1~2분 동안 묘한 침묵이 이어지는 그 순간, 저는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습니다.
"너 뭐 하냐?"
그런데 그 친구의 눈빛이 저를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너도 나를 무시했던 그중 한 명 아니었어?’라는 눈빛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앞뒤 없이 말했습니다.
"나 예수 믿는 사람이야. 너 교회 다녀?"
얼마나 뜬금없는 말이었을까요. 진심으로 이 친구를 위해서 기도했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전하는 일이라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앞뒤 없는 전도였지요. 그 친구는 당황했고, 저는 너무 부끄러워서 도망치듯 그 도서관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도서관에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왜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꼭 아프리카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웃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항상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이웃입니다. 그때 저는 그 친구의 이웃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기도는 했지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시간이 지나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에도 저는 늘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지금 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인가?’
어느 교회에서 장년부 사역할 때, 저는 1년 가까이 몰랐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동네에서 폐지를 줍던 할머니 한 분이 우리 교회 성도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장기결석자들을 돌보려 전화를 하던 중에야 그분이 성도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저희 교구 성도님이신데, 제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씀하셨습니다.
"부목사님이 우리 집에 온 건 처음이에요. 30년 넘게 이 교회를 다녔는데, 한 번도 목사님이 찾아온 적이 없어요."
그 말이 얼마나 제 가슴을 찔렀는지 모릅니다. 할머니의 상황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아들은 술에 취해 살다 문제를 일으켜 감옥에 가 있었으며, 며느리는 아이들을 두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무릎 관절의 연골이 다 없어졌지만 손주들을 위해 폐지를 매일 주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큰 손자가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데 제가 사주질 못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정육점에 가서 삼겹살 10근을 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 드리며 말했습니다.
"드시고 싶을 때마다 드세요. 떨어지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그 후로 그 할머니는 단 한 번도 교회를 빠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암환우를 위해서 바쁘게 사역한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성도님들의 이웃이 되고 있었을까요? 아닌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오늘도 차를 타고 오면서, 복도를 지나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는 환우들에게 좋은 이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부족합니다."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늘 마음 한 켠에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해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분주함이 아닌 집중력 있는 사역
오늘 말씀을 듣고 나면 마음속에서 이런 다짐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 나도 내 이웃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 뭔가 더 해야겠다!"
그런데 조심해야 합니다. 이 일 저 일 벌이려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맞이하느라 너무나 바빴습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마르다는 답답한 마음에 예수님께 하소연합니다.

"주님, 마리아가 저를 돕도록 말씀해 주세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1-42).
하나님 나라, 의를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하려다가 오히려 번아웃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또 저것도 해야지!" 하다가 결국 지쳐버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 이런 오류에 빠졌었습니다.
어머니의 재판으로 인해 서울역 자활센터가 비워졌을 때였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를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할까? 아니면 고아원에서 나온 청년들을 위한 시설로 만들까?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로 꾸밀까?"
마음속에서 수많은 계획이 떠올랐고, 너무나 좋은 생각들로 가득 찼습니다. 어머니께 이런 저런 기획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만. 잠시만 그냥 두자."
처음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씀이 저에게 얼마나 큰 지혜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환우들을 섬기며 최선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매일 설교를 준비하고, 블로그를 정리하며, 집필도 하고, 예배 사역을 감당하고, 심지어 식자재까지 신경 쓰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거기에다가 센터 운영까지 더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저는 완전히 번아웃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많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가지만이라도 기쁨으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일을 벌이기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사명을 집중하여 감당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론
우리는 어디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할까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곁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길입니다.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고, 기도하는 것—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아름답게 쓰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이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은 무엇입니까?
(예: 어려운 이웃에게 다가가기, 주변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자신의 직장에서 하나님을 나타내기 등)
2. 당신은 하나님께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너무 많은 일에 분주하여 진정한 목적을 놓치고 있습니까?
눅 10:25-42
25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8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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