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0:1-24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구원의 기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회개하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당연한줄 압니다. 복음의 기회는 언제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시아의 동쪽 끝, 이 작은 나라에까지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지난 120여 년 동안 이 땅에 복음이 전해져 많은 영혼이 구원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평양 신학교 1기
12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기 때문에 지금 우리 생각에 당연히 복음이 전해지고 있고 언제든 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도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후 6:2)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온 힘을 기울여 복음을 전하면서도 이 복음이 바울이 전할 때처럼 강력하게 전해질 것이라 예측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자신이 잘해서 회개할 기회가 지금이라는 말을 한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얼마나 큰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말미암아 복음이 온 땅에 퍼져 나갔으니 이런 기회가 계속될지 바울로써는 알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두 번 감옥에 갇혔지만 네로의 때에는 다시 풀려 날 수 없을 것임을 자신도 알고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 이후 기독교는 극악한 정도의 핍박을 받습니다. 트라야누스 황제(98-117)는 기독교인들을 색출하여 죽이라고 명령했고 공개 처형을 했습니다. 당시 순교자 폴리갑은 화형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기독교의 박해가 얼마나 극심한지 기독교인들은 카타콤이라는 동굴 묘지에서 숨어 지냈으니 이 때만큼 복음을 듣기 힘들고 회개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시기가 올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구원의 기회는 무한정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문을 여시는 때가 있고, 그 기회가 닫히는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죄악이 관영한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구할 수 있을지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카타콤(해골 벽)
복음이 왜 필요합니까? 복음은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종교적인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신 경고로부터 나온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하였으나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에게 거짓된 안일함을 줍니다.
"어제도 오늘도 세상은 그대로일 거야. 별일 없을 거야."라고 속삭이며 회개를 미루게 만듭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든 죄가 관영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이 일관되게 증거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참된 회개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온전히 해결해 주실 분을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사 1:18)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죄가 온전히 씻김 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는다고 말하면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는 믿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 없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다면 결국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나를 변화시켜 주세요."라고 간구하며 나아간다면, 주님께서 요한일서의 말씀대로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한 자녀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만도 저로써는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구원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기회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마십시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전도의 기회
우리가 전도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순신 장군은 구원받았나요?” 이순신 장군은 한국인의 영웅이고, 맹자가 말한 군자의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충분히 갖춘 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은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예수가 전해진 지 120~13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이전에 살았던 의로운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않으셨느냐?”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질문입니다. 마치 모든 사람이 당연히 구원받아야 하는데, 일부는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 모두는 원래 죄로 인해 멸망받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구원하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반드시 멸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자격이 무엇이었습니까? 130년 전의 조선은 얼마나 완악하고 강팍한 나라였습니까? 만약 내가 하나님이라면, 당시 조선을 구원할 마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미국 현대 선교 흐름
그런데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이 땅에 복음의 소식이 전해지게 하셨습니다.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선교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미국은 선교에 대한 열망이 크지 않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강한 선교의 열정이 일어나며 세계 곳곳으로 선교사들이 파송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파로 지도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나라, 가망 없어 보이는 나라 조선에까지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당시 조선에 온 선교사들은 이 나라에 대해 절망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조선 땅을 바라 보며 쓴 선교 본부에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는 너무나도 가난하고 어둡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절망 가운데 살고 있으며, 미신과 우상숭배가 만연해 있다.”
“조선 사람들은 고집이 세고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랫동안 유교적 가치 속에서 살아왔으며,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크다.”
이렇게 완강히 복음을 거부하는 민족에 1950년 전쟁이 터졌습니다. 사실 그 때 죄악 속에서 영원히 지도에서 살아졌어도 할 말이 없는 이 나라에게 하나님은 큰 기회를 주셨습니다. 전쟁 이후에도 이 나라를 보존하시고, 무려 7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복음의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음의 기회, 구원의 소식은 사람을 통해 전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이라 합니다. 전쟁을 겪은 후 나라 전체가 폐허 속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에 미국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의 도움을 통해 한국 사회가 재건되고 복음이 강하게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경제적 성장기를 맞이하며 1980년대에는 세계에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 중 하나로 영적으로도 크게 도약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경제적 번영기를 맞이하며 교회도 같이 부패하기 시작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섞어 감을 막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교회들이 곳곳에서 “새생명 축제”라며 전도를 열심히 하지만 죄의 부패는 그 속도 보다 더 빠르게 교회와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의 기회가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전도는 긴박한 사명
예수님께서는 70명의 전도자들을 각 마을로 보내셨습니다(눅 10:1).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전도자들을 보내시면서도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눅 10:2)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전도자들로 보내시면서도 시간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전도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니 그만큼 절박하고 시급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자들에게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눅 10:4)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물질적인 의존을 배제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전도가 얼마나 긴급한 사명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도는 느긋하게 할 일이 아니라, 한 순간도 지체해서는 안 될 급박한 사명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고 각 마을로 들어가 전도할 사람들을 만나라한 긴급함을 구약의 엘리사와 수넴 여인의 이야기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왕하 4:8-37).
수넴에는 한 귀한 여인이 있었는데, 이 여인은 늘 선지자 엘리사를 정성껏 섬겼습니다. 식사 대접만 하다 어느 날은 선지자를 위해 방을 마련해주고, 책상과 침상까지 준비하며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이에 감동한 엘리사는 수넴 여인 가족에 아이가 생길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즉 엘리사가 이 집안에 아이가 생기도록 기도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 아이가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밭에서 추수하던 중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졌고, 어머니의 품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아이를 잃은 슬픔 속에서 수넴 여인은 곧바로 엘리사를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남편이 "월초도 아니고 안식일도 아닌데 이 슬픈 상황에서 왜 선지자를 찾아가려 하느냐?"고 묻지만, 그녀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즉시 나귀를 타고 떠나며 사환에게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위하여 달려가기를 멈추지 말라"(왕하 4:24)라고 말합니다.
이 여인은 한시라도 빨리 엘리사에게 가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부패하여 썩어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길에서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았고, 쉬지도 않았으며, 오직 엘리사에게 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수넴 여인의 마음과 동일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이 볼 때 아직 죄 가운데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명이라도 더 예수가 메시아임을 알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가 이토록 급박한 이유
예수님께서 70명의 전도자들을 보내신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마지막 전도 사역이었으며,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총력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기간 동안 많은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쫓겨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을 보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단순한 선지자로만 여겼습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을 진정한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여느 선지자들처럼 기적을 일으키던 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더라. 그런데 사실 악한 자였더며… 나무에 달렸으니 얼마나 하나님이 진노하신 거야.” 라며 헛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로 그 고난 받는 메시아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회개하고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한 명이라도 더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총력전으로 70명의 전도자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에도 유대인들에게는 40년의 시간이 더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A.D. 70년, 로마의 티토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당하고 맙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에 따르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그 성에서 약 110만 명이 죽었습니다. 성 안에는 너무 많은 시체가 쌓여서 피비린내가 먼 곳에서도 낫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눅 21:20-21).
실제로 A.D. 66년경, 로마군이 한 차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가 갑자기 철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내부에서 내란이 발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이 일로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셨다!"라며 더 교만해졌습니다. 결국 4년 후, A.D. 70년 티토 장군이 다시 와서 예루살렘을 함락시켰고, 엄청난 참극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지금이 기회다! 시간이 없다! 한 명이라도 더 회개해야 한다!”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본질: 회개와 구원
예수님은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잠시 예루살렘에 머물며 성령을 받길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40년밖에 남지 않은 급한 상황이지만 주님은 이 급한 일이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성령을 받기까지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4,8).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전도의 범위를 설명하는 구절로만 이해합니다. 예루살렘이란 자기 주변, 사마리아는 복음 전하기 싫은 사람들, 그리고 땅끝은 언젠가 가야하는 곳… 그러나 시간이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 말씀은 더욱 강력한 의미를 갖습니다. 언젠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전도가 아닙니다. 저들의 생명이 달린 일이기에 속히 온 땅에 구원의 소식을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서도 이 긴박함이 지속되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의 큰 부흥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너무나 강력한 개입이 사도행전 7장에서 일어납니다. 신실한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함으로 다른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흩어지면서 복음이 이방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
초대 교회와 고대 교회의 열정적인 복음 전파로 드디어 로마 전역에 복음이 전파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안정을 얻게 되며 부패하게 되며 또한 야만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성직자들은 귀족처럼 지내며 복음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고 타락해 갔습니다.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는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선포함으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강제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테오도시우스의 이교도 박해
그래서 476년 훈족과 게르만족에 의하여 서로마는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하며 유럽으로 기독교가 확산되는 계기가 됩니다. 유럽의 여러 부족과 왕국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며 저들 안에서 교황의 권위가 강화됩니다.
그런데, 이후 교회가 부패하면서 중세의 천 년 동안 영적 암흑기가 찾아옵니다. 당시 431년 네스토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되면서 그들은 동방으로 퍼져 가며 아시아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쓰게 됩니다.
복음은 사람에 의해서 전파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통해 회개할 기회는 늘 잠시 주어져 왔습니다. 그 시간을 놓이면 순식간에 암흑기가 찾아옵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 – 긴박함이 사라진 복음
오늘날 우리는 전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긴박함을 잃어버렸습니다. 바쁜 삶을 살아가며 주일에 교회 나와주는 것만도 힘든 일인데 전도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눅 21:10-13).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잎이 변하는 것을 보고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듯이 세상의 징조를 보고 복음을 전해야 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향한 경고
하나님께서는 120년 넘게 대한민국에 복음을 허락하셨지만, 이제 이 나라의 죄악이 소돔과 고모라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동성애의 합법화, 마약, 성적 문란, 성도들과 성직자들의 타락, 교회의 세속화…
대한민국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직전입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눅 10:15).
복음은 우리가 잘 먹고 잘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진노가 가까이 왔으니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구원받으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님께 나아가 죄를 씻어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죄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진짜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5:29).

만약 암에 걸려서라도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할 기회를 얻는다면, 그것은 큰 은혜입니다. 우리 환우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느라 믿음을 저버린 시간들을 우리가 얼마나 회개했는가요? 비록 삶이 힘들긴 하지만 회개할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회개할 시간이 없어진다면, 멸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복음의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겠지만 나는 그 핏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다”(겔 3:17-19).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는 직무유기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했는데도 듣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핏값이 우리에게 넘어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오늘도 살게 하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오늘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습니다. 갑자기 패혈증이 생겨서 하루아침에 떠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많은 줄 아십니까? 전혀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시간 없습니다!
오늘 건강하다고 내일도 건강할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일 전쟁이 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남은 생명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를 붙잡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혹시 언제든 회개의 기회가 있다며 지난 시간 동안 전혀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기회를 오늘 잡으십시오.
2.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허락하신 생명의 시간 동안,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하겠습니까?
눅 10:1-24
1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3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6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7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8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9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10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1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12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5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17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20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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