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누가복음 9:37-50 예수님이 원하신 공동체 - 매일성경, 큐티 / 섬김의 리더쉽, 제자들의 갈등

사랑합니다예수님 2025. 3. 8. 08:16

눅 9:37-50

예수님이 원하신 공동체

 

소중한 사람들 공동체를 위해 세워진 나의 정체성

저는 목사입니다. 동시에 암 환우 공동체인 "소중한 사람들" 센터를 운영하는 관리자이기도 합니다. ‘관리자’라는 단어는 다소 직설적이고 업무적인 느낌을 주지만, 저는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합니다.

목사로서 저는 환우들을 목양적으로 대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섬기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관리자로서의 역할은 환우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철저히 살피고, 문제가 발생하면 단호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동체 내에서 관계의 갈등을 일으키거나 규칙을 어기는 일이 발생할 경우, 목사로서의 따뜻함은 내려 놓고 관리자로서의 냉정함 속에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저는 계약에 따라 분명한 규칙을 적용하고, 필요할 경우 퇴소를 요청합니다. 실제로 계약서에는 이와 관련한 조항들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입소자들이 계약서를 쓰는 것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제가 퇴소 조치를 내릴 때, 어떤 분들은 "목사가 너무 칼같이 구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간호사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이 하기 어려운 역할이라면, 결국 제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지요. 저는 공동체를 지키고 건강하게 운영하기 위해, 목사로서의 사랑과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균형 있게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동체를 칼같이 지키려는 정신이 있습니다.

 

공동체의 미래 비전

소중한 사람들 힐링센터는 환우들 서로를 위해서 중보하는 기도시간이 있습니다. 저는 이 중보 기도가 굉장히 귀한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환우들 중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분이 있으면 동료 환우들이 찾아가 진통이 멎길 같이 기도해 줍니다. 서로를 위하여 섬기는 이런 공동체는 제가 의도적으로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처음 입소한 환우들로부터 내려오는 소중한 사람들의 문화입니다.

 

처음 이곳에 온 환우는 세분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아직 소중한사람들이 셑팅이 되기도 전에 오셨었습니다.

 

“목사님, 저희는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기도할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그분들 안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공동체의 영적 성격이 형성되었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신앙 안에서 성장하는 모습이 이곳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제가 영적인 돌봄을 위한 정한 것은 아침 예배와 저녁 예배입니다. 하지만 오후 4시 30분의 중보 기도는 환우들이 스스로 만든 시간입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영적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더 많은 분들을 받기 위해 확장이 이루어지더라도 "소중한 사람들"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공동체, 기도하는 공동체라는 본질을 계속 이뤄갈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라신 공동체의 모습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세워 나갈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셨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자가 예수님처럼 대우받는 공동체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며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눅 9:48).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곧 제사장들에게 넘겨져 고난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 직후 제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무엇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다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오히려 누가 더 큰 자인지 논쟁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제자들 사이의 갈등과 예수님의 말씀

상황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산 아래로 내려와 보니, 한 아버지가 예수님께 찾아와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의 아들은 귀신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동안 남아 있던 아홉 명의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내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눅 9:41).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직도 믿음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답답함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때가 점점 가까워지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눅 9:44).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하지만 제자들은 이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을 감례하면서라도 저 예루살렘의 악한 무리와 싸워 나가면 반드시 권세가 점점 높아지고, 자신들이 그 곁에서 더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예수께서 감란산에서 변하신 모습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본 후 그 자리 싸움은 더 거세집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까지 등장합니다.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1).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이 예수님과 더 가까운 자리에 앉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어머니까지 나서서 부탁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제자들도 발끈하며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더 예수님과 가까운가?" "누가 더 많은 공로를 세웠는가?" 하며 자기 공로를 늘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 어린아이를 데려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마음의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눅 9:47-48).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는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다투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장 작은 자를 예수님이라 여기며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오늘 모든 교회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가장 작은자라도 귀하게 섬기고, 함께 기도하는 이 공동체의 정신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공동체의 정신과 우리의 실천

소중한 사람들은 사람을 돈이나 지위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공동체의 철칙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을 대하듯 귀하게 여깁니다.

가끔 이런 요청을 받습니다.

 

"목사님, 제가 1인실에 들어가고 싶은데 돈을 더 낼 테니 가능할까요?"

 

저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여기서는 누구도 돈으로 자신의 위치를 바꿀 수 없습니다. 고통이 가장 크고 가장 힘든 분이 1인실입니다.

입소 순서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특혜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신청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하도록 하고, 거기에 명확한 번호가 부여됩니다. 연줄을 이용해 들어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소중한사람들이기 때문에 저는 관리자 모드가 되어 아주 칼 같이 이 공동체 정신을 지켜내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성찬을 나누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2-17).

 

예수님보다 큰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겸손하게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내가 누군데? 감히!"

이런 말을 하는 자는 스스로 예수님 보다 높은 사람이라 주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교회에서, 공동체에서 어디서든 "내가 누군데?" 라는 태도로 행동하면, 그 순간부터 관계는 깨지고 공동체는 무너질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는 우리 집 왕이다!" 하면 그 가정은 어려워집니다.

어머니가 "나는 우리 집 여왕이다!" 하면 가정이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나는 종입니다. 주님께서 가정에, 우리 공동체에 보내신 종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생명이 회복될 것입니다.

 

저는 소중한 사람들 힐링센터에서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한다고 자부합니다. 자랑하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가장 많이 일하고 있는 것은 제가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려 하기 때문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요양병원에서는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서로가 서로를 섬깁니다. 그렇기에 "여기는 천국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계속해서 예수님의 공동체로 서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당신이 속한 공동체에서도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예수님의 본을 따라 나아가길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원하신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작은 자를 예수님처럼 귀하게 여기고 섬기고 있습니까?

 

2.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을 낮추려고 하십니까?


눅 9:37-50

37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46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9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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