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9:28-36
아들
서울역 센터 예배가 뜨거워진 이유
최근 서울역 노숙인 센터에 오는 한 노숙인이 있는데 이분은 내가 지난 시간까지 목회하며 만난 사람 중 가장 뜨겁게 찬양하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분은 찬양 중간 중간에 혼자 크게 멘트를 합니다.
"아버지, 아들입니다. 저들이 깨닫게 하십시오."

사실 노숙인들은 혼자 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냥 예배에 방해가 안될 정도의 혼자 말이라 생각하고 넘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선포를 듣고 생각각한게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기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의 소외된 자였지만, 이 분의 찬양은 다른 예배자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기쁨과 은혜가 넘쳤던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여지 것 예배 사역을 해오면서 수많은 사람이 찬양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처럼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눅 7:9) 하셨던 것처럼, 저도 그분을 보며 그런 감탄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분의 멘트에 대해 생각하며 주일에 이 주제를 다룬 적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선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 정체성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예배하는 태도와, 마지못해 예배 자리에 앉아 있는 태도는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배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
제자들은 점점 더 예수님이 특별한 분임을 깨달아 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혹은 옛 선지자 중 한 사람이 살아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더 바른 신앙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눅 9:20).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좋은 선생이나 혹은 선지자정도로 생각하고 따르는 태도와 메시아임을 알고 따르는 태도는 다릅니다. 선지자정도로 생각한다면 그저 자신의 어려움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 보여주기만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아라면 성경에 약속한대로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날 것을 믿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게 하시는 사건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느 때처럼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역시 제자들은 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잠이 깨어 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예수님의 용모가 변하고, 영광의 광채가 그분을 감쌌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서 있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선지자들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죽음이 가려진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빛나는 모습으로 서 계신 예수님을 보면서 제자들은 황홀함에 빠졌습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황홀한 나머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눅 9:33).
그런데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저 이 감격적인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더 이상 시야가 확보가 안되게 되어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눅 9:35).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한 단계 더 높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훌륭한 선지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단계 업그레이드되어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먼저 다른 제자들에게는 이 사실을 안 알립니다.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눅 9:36).
왜냐하면 예수님이 임금이 될 때에 그 옆의 최고 중직이 경쟁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이 유대의 임금이 될 것이라 확신!, 확신!, 확신 하게 됩니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콩닥됩니다. 어부 출신에서 유대의 최고 관리자가 될 것을 생각하니 잠도 안 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반드시 될 것이니 이거야 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한국 드라마에서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나중에 그 신입 사원이 회장님 아들이라는 것을 자기만 알게 된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눅 9:46).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의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지만 사랑스러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길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막 10:38-39).

이런 말들이 제자들 안에서 더 퍼지게 되면서 서로 다투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
예수님의 진정한 영광은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희생 속에서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 진리를 깨달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변화
예수님이 단순히 예루살렘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릴 분이심을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을 대신할 하나님의 참된 임금이 될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점점 인식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라 온 열방을 다스릴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리고 요한은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따르는 자는 유대의 우의정, 좌의정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된 권세는 세상의 권력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섬기고 사랑하는 삶으로 아들의 권세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들의 마음으로 섬기는 삶
저는 소중한 사람들 사역을 하면서 한 번도 월차를 내고 쉰 적이 없습니다. 저와 함께 섬기는 14분의 직원들은 노동법에 따라 정당하게 월차를 내고 쉬지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1년에 단 이틀 정도 휴가를 내지만, 사실 그것도 부담스럽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그마저도 사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쉬지 못했다며 불만을 품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쉬는 것을 정할 수 있는 운영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저의 사명이며, 저의 삶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눈치우며
저는 이 일이 아버지 하나님이 저에게 맡기신 일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얼마를 버느냐 얼마나 쉬느냐의 문제가 제가 이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지날 달 직원들 월급을 계산할 때에 한 분을 드려야 하는 날짜에 전체 돈돈에서 40만원 정도가 부족해서 50만원을 헌금으로 더 넣었습니다. 아마 앞으로 무료로 운영하는 소중한 사람들에 또 재정이 부족해 진다면 제가 다른 일을 해서라도 이 사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저는 단순히 삯을 받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의 일이 잘되기를 원합니다. 단순한 고용인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어떤 곳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동일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게 맡기신 이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존 파이퍼는 『삶을 허비하지 말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출근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일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해야 한다.”(RIDIBOOKS, 328/495).
하지만 삯을 받는 자는 다릅니다. 삯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도 내게 이만큼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계산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런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맡기셨음을 알기에, 기쁨으로 헌신합니다.
아들은 독생자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단순한 호칭의 변화가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속자는 단순한 고용인이 아닙니다. 그 가문의 유산을 이어받고, 가문의 이름을 대표하며, 가문의 영광과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고난이 예상되어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드라마에서 대기업 회장의 아들을 일부러 가장 힘든 부서, 매출이 낮은 지방 지사나 힘든 공장으로 보내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이것은 아들을 얕봐서가 아니라 진정한 후계자로서 성장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혹은 회사가 부도가 나서 모두가 아버지를 떠날 때에 아들이 떠나는 것은 본적이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고용관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즉,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고난은 잠시뿐이며, 그것을 통해 장차 받을 영원한 나라를 바라 보라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삯을 받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단순한 고용된 일꾼처럼 불평 불만하며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상속자로서 마땅히 이뤄야 할 아버지의 나라의 뜻과 공의를 이루기 위해 고난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삯을 받는 종은 일한 만큼의 대가를 기대하지만, 상속자는 모든 것이 자기 것임을 알고 기쁨으로 헌신합니다. 삯을 받는 종은 고난을 피하려 하지만, 상속자는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고난도 기꺼이 감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로서, 독생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또한 함께 영광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믿고 선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2. 당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자로서, 아들의 마음으로 헌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수고와 대가를 따지며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눅 9:28-36
28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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