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누가복음 9:51-62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 매일성경, 큐티 / 인간관계, 사명

사랑합니다예수님 2025. 3. 9. 23:26

눅 9:51-62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

 

주를 위하여 무엇을 하려는가?

지금까지 누가복음을 읽으며 이제 정말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신 분이 계신가요? 우리가 성경을 보거나 교회에서 훈련을 받는 것은 결국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고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삶을 살든 그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꿈꾼다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연예인을 목표로 한다면 그 분야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했다면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혼자 사명을 감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고, 반드시 함께할 동역자들을 붙여 주십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 4:9-10).

 

저도 소중한 사람들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청소, 관리, 설교, 식자재 준비 등등모든 일을 혼자 해야 했습니다. 식사 준비 빼고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좋은 동역자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지금 사역을 함께하는 스태프들이 14명이나 됩니다.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돕는 스텝들과 회식후

그런데 이곳은 산골짜기라서 일하고 싶어도 오기가 쉬운 곳이 아닙니다. 더욱이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기에 누가 오겠는가 하는 걱정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이곳에 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일하고 있다는 것은 저분들이 가진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생각과 우리의 사명이 어느 정도 맞기 때문일 것입니다. 같은 뜻을 품고, 같은 비전을 바라보기에 이곳까지 와서 함께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명을 공유할 수 있는 이들을 보내주셔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게 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좋은 사람일까요? 동역자로 온다고 해서 항상 좋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도 가룟 유다는 결국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버렸습니다.

사람은 참 소중한 존재입니다. 혼자서는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으로 인해 시험을 겪기도 합니다.

사실 사람이 힘듭니다. 정말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를 위해 살아가는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사명을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을 우리도 듣길 원합니다.

 

함께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이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를 막으며, "너는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눅 9:50).

 

저희 부모님이 사역하시던 하나로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아버지를 도와주시던 전도사님과 함께 성도들의 절반 이상이 떠났습니다. 개척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정말 큰 충격입니다. 처음부터 성도들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애썼겠습니까? 말씀을 가르치고, 심방하고, 기도하며 함께했는데, 갑자기 성도들이 다른 교회로 간다고 하면 목회자의 마음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이런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목회를 내려놓기도 하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희 어머니에게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다 내 교회 안에 있다."

 

어머니가 교회 성도들이 떠나는 이유로 너무 가슴 아파하실 때에 주신 이 말씀이 어머니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우리” 교회를 떠났지만, 결국 하나님의 큰 교회 안에 있는 것입니다.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낙심되고 서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여전히 주님의 은혜 안에 있고, 거룩한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러 있다면 괜찮은 것입니다.

이 깨달음 덕분에 저는 제가 목회를 할 때 성도들이 내 바운더리를 떠나는 일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언제든 떠날 수도 있고,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꼭 나와 함께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해하는 자들에 대한 태도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모세와 더불어 주께서 앞으로 십자가를 지실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예수님의 행보는 속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고 더욱 서두르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그때 예수님과 일행들은 갈릴리에서 유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택하셨는데, 그 길은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몇 명의 제자들을 먼저 보내어 사마리아에서 잠시 머물 숙소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유대인들이라는 이유로 숙소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마리아인과 유대인 사이의 오래된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들을 좋게 해 주고 싶어 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런데 사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저 사람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저들을 태워버리겠다고 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다 없애 버리면,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려 함이 아니라 구원하려 함이라”(눅 9:56).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 사역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하나님, 저 사람 좀 없애 주세요!” 라고 기도한다면 누가 우리와 함께 하겠습니까? 주님의 제자는 사랑하고 품어줌으로 세워가기 위해 힘을 써야할 것 아니겠습니까?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도망가던 때, 베냐민 지파의 시므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므이는 도망가는 다윗의 무리를 향해 돌을 던지며 조롱했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이제 네가 망하는구나!” (삼하 16:7-8)

 

이 모습을 본 아비새가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저 자를 당장 죽여 버리겠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삼하 16:10).

 

다윗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우리도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비방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함께 하겠다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

감사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함께 하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니 어떤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섭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럼 예수님께서 “그래, 고맙다. 나와 함께 가자.” 하셔야 할 것 같은데,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 9:58).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결코 편안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감사하게도 함께하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있고, 진심으로 헌신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마음을 다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스스로 세운 원칙들이 사람들 때문에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눅9:59).

 

이 요청은 합당한 이유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사정을 따라 사명을 미루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냉혹할 정도입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 9:60).

 

사람에게는 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다 들어주다 보면 어떻게 될까요?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 끌려 다니지 말고, 사명에 집중하십시오

사명자는 사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야 합니다. 때로는 동역자가 떠날 수 있습니다. 또 때로는 당신의 삶을 비방하고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혹 옆에 가까이 있으면서 당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사명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 일을 왜하는가? 사람을 좋게 하려는가?”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향이 바르면, 나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분명하다면, 함께할 사람도 있고, 떠날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 때문에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만 붙들고 나아가십시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 속에서 사람들 때문에 뜻이 흔들린 적이 있습니까? 함께하지 않는 사람, 방해하는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2. 당신의 삶의 방향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길을 향하고 있습니까?


51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57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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