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누가복음 5:27-39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 매일성경, 큐티 / 노숙인 사역, 복음의 능력

사랑합니다예수님 2025. 2. 21. 10:12

눅 5:27-39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

 

인간은 본래 선한가? 악한가?

인간은 본래 선한가요, 악한가요? 이 근본적인 질문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논쟁입니다. 4세기경, 펠라기우스라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인물이었지만,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은 원죄의 영향 아래 놓여 있지 않으며, 자신의 의지로 충분히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무척 잘못된 것이지요. 자신의 의지로 선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예수님이 필요 없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다는 말인가요? 어거스틴은 이에 대해 "인간은 본래 악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을 때만 변화될 수 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은혜의 교리를 붙든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는 어떠한 선한 것도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누구도 참된 변화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본성과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죄악된 본성에 도달하게 될 때, 우리의 시선이 새롭게 열리고,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레위를 부르시는 예수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리 레위(히브리식 이름), 즉 마태(헬라식 이름)를 만나십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눅 5:27)

 

레위는 세리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의 세금을 징수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정해진 세금 외에도 개인적으로 더 많은 돈을 거두어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직업이었습니다. 이를 악용하여 많은 세리들이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거나 뇌물을 요구하며 부당한 이득을 취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세리는 동족을 착취하는 배신자로 여겨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 곧 자신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세리들은 많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탐욕스럽고 부정직한 직업이라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살아가며 일반 백성과의 관계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동족의 고통을 이용해 부를 쌓았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고, 백성들에게 배신자로 손가락질받으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돈이 주는 만족감이 있었을지 모르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받는 멸시와 증오의 시선은 무겁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존경받지 못하고, 같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현실은 그들에게 깊은 죄책감과 자괴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부당하게 거둔 돈이 백성들의 생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멈출 수 없는 악순환 속에서 내면적인 갈등과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돈으로 좋은 음식을 사 먹을 수는 있지만, 행복이 주는 진정한 식탁교제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도 경험해 보셨겠지만 산해진미를 올려 놓아도 관계가 깨진 사람과 식사하면 좋을리 없습니다. 좋은 집을 가질 수 있지만, 집이 크다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면의 만족을 주는 기본이 되는 인간 자체의 만족함이 있어야 합니다.

레위도 많은 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내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싫어했고, 돈이 많아도 진정한 행복과 평안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따르라.”

 

이는 마치 베드로가 “하루 종일 물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그 허망한 순간에 참된 본질의 삶인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부르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레위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 그거 아무것도 아닌 거 알지? 다 내려놓고 나를 따라와라.”

 

레위는 그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눅 5:28).

 

사람들은 예수님이 레위를 부르실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레위는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죄사함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도 모두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부르심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관점입니다. 어느 누구나 예수님이 필요한 죄인이며 예수님을 따르면 놀라운 변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대상은 누구인가?

아무리 악한 자라도, 아무리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자라도 예수님의 은혜가 임하면 변화됩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 들어가시면 그의 삶은 새로워집니다.

이 믿음으로 저는 매주 노숙인 센터를 찾아갑니다. 요즘 예배 시간 찬양이 참 은혜롭습니다. 몇 주 전부터 오기 시작한 분인데, 찬양을 크고 뜨겁게 부르는 분에 의해서 예배가 더 은혜로워졌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보니 얼굴에 상처가 나있고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노숙인의 삶은 철저한 약육강식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노숙인들 사이에는 철저한 서열이 있습니다. 다리 밑에서도 덜 추운 자리, 비가 들이치지 않는 자리는 힘센 사람이 차지합니다. 힘없는 노인들은 바깥으로 밀려나고, 그 안에서는 다툼과 싸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 안에도 예수님이 들어가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증거하는 것이 반창고를 붙이고라도 예배당에 나와 “아버지 아들이 왔습니다” 하며 뜨겁게 찬양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거리로 나가 예배당으로 나오지 못하는 더 처절한 절망속에 살아가는 노숙인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합니다. 육개장 사발면과 빵을 준비해 2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짧게라도 전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 짧은 말 한마디가 복음의 씨앗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은혜를 찾아와 센터로 와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어머니가 20년전 ytn건물 지하 보도에서 1000명의 노숙인들과 예배하고 식사를 나눠주던 그 처음의 모습을 우리는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 초창기에 어머니는 저에게 한번 5분 설교를 노숙인들에게 해 보라고 하셨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처음에 거리 설교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노숙인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까?

위로해야 할까? 회개를 촉구해야 할까?

생각해 보니, 제가 고민했던 이유는 나 스스로 그들과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설교가 필요없습니다. 우리가 들어야 하는 이 복음의 메시지가 저들에게도 동일하게 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에 오전 8시에 암환우들에게 한 설교 그대로 오전 11시에 노숙인에게 전합니다.

 

복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동일하다

예수님이 레위를 부르시고 레위의 동료들과 식사하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분노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눅 5:30)

 

 

그들은 세리와 자신들을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도 모두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일 뿐입니다.

이 잘못된 구별은 역사 속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화되면서, 더 이상 야만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초기 선교사들은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자신들과 다르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셔서 선교사님들이 이 차별을 회개했습니다. 이 회개의 은혜가 온 한국에 퍼져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복음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노숙인이든, 세리든, 바리새인이든, 목회자이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레위를 부르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동일하게 부르십니다.

"너희도 죄인이다. 너희도 내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

 

예수님이 레위를 부르셨듯이,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복음

돈이 없는 노숙인뿐만 아니라, 돈이 많은 사람도 예수가 필요합니다. 오히려 더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최근에 한 성도님의 요청으로 반포에 있는 한 고급 아파트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주차장이 4층으로 되어 있고, 모든 자리가 지정 주차였습니다. 건물 출입도 철저히 통제되어 있었습니다. 옛날에 복도식 아파트처럼 되어 있어서 아파트 전도라는 것을 절대 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어서 그랬는지 사실 주차장에서부터 성도님 집에 가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IoT기술이 강화된 아파트 안에 사는 사람들, 자기들만의 성을 짓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저들이 겉으로는 부유해 보이지만 사실 저들도 동일한 사람들인지라 삶에서 부딪히는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영적인 갈망과 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들만의 성을 쌓아놓았지만, 그 안에는 삶의 상처와 외로움이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레위처럼 깨달으면 예수님 붙들겠지요.

‘이렇게 얼굴 인식하고 들어오는 아파트가 다 무슨 소용인가? 주차장에 내 번호가 적힌 2평 남짓한 내 주차장 가진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깨닫는 구나.’

 

이처럼 복음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쁘고 멋있고, 돈도 많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예수님이 필요 없을까요?

천만에요. 오히려 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예수님입니다.

 

모든 자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저는 부목사 시절 암 환자들에게 복음의 사명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힘드니까 그냥 쉬셔야 하지 않을까?’

‘예배 참석이 어려울 텐데, 부담 주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암 환자들에게도 복음이 가장 필요합니다. 육체의 고통 속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소망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붙잡아 줄 진짜 소망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190만 명의 암 환자가 있습니다. 이 숫자는 한 도시 전체 인구보다 많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대상자들입니다. 인생의 9회말에 있는 진짜 소망이 필요한 자들이 190만명 영혼의 입을 열고 먹을 것을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노숙인들에게도, 부유한 사람들에게도, 목사에게도, 장로에게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허망함을 깨닫고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하는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시간 예수님 앞에 순복하며 나아오십시오. 그러므로 이 예수를 만나 온 땅에 전파하십시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의 삶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외면했던 순간이 있습니까? 레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듯이, 당신도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2. 당신 주변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눅 5:27-39 묵상

27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30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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