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9:19-29
긍휼을 입은 사람
교회 안에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일지라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들입니다.
본인이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과 같이 신앙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좌우를 구분할 수 없는 뱃속에서부터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2-13
이것을 우리가 신학적 용어로 예정론이라 부르는데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반문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의 예정에 대해서
‘구원을 정하셨다면 믿음 갖지 못한 사람은 자기 힘으로 믿을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러면 하나님께서 죄가 있다 없다 판단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합니다.
누구라도 태어날 때부터 믿음이 출중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구원받았다 아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즉 예정하심은 고백의 교리이지 판단의 교리가 아닌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고 나니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누가 구원받았다 못 받았다 인간의 편에서 판단하기 위한 교리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선하게 산 사람이 예수 안 믿었다고 구원 못 받았다 말하는가요?
우리가 오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이름에 국한한 정책적인 실수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순신장군이 구원을 받았냐고 동창회 같은 곳에 나가면 술먹는 친구들이 비아냥 거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의인은 아무도 없다 하였습니다. (롬 3:10) 인간의 운명은 죄로 인하여 사망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죄악된 인생들을 멸망받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아들 예수를 보내시어 그 피로 죄를 속죄하셔서 구원을 받게 하셨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의 초대를 자신이 선택한 백성들에게만 꼭 집어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복음이 미치는 곳곳에 하나님의 초대가 있었으니 하나님은 종일 그 팔을 벌려 부르셨다 하였습니다. (롬 10:21)
그 마음의 완악함으로 하나님의 초대를 끝까지 거부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헤를 베푸심에 끝이 없었으나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는 끝까지 거부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녹여주시고 복음의 소식을 믿게 하신 이가 있으니 죄인 중의 괴수인 바로 “나”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원을 설명하며 긍휼히 여길자를 긍휼히 여긴다고 하신 것입니다. (롬 9:15)
저의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제 마음이 드디어 회복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긍휼의 그릇
그러므로 바울은 은혜를 입은 사람을 ‘긍휼의 그릇’이라 부릅니다. (롬 9:23) 그릇이란 토기장이가 무엇인가 쓰기 위한 목적을 담아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유대인으로써는 부정하다 생각하는 이방인에게 까지 미치게 하셨습니다.
“24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4-26
긍휼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마음의 완악함을 풀어주시고 이렇게 믿게 하신 이유가 다음에 나와 있습니다.
남은자로 우리를 세우신 것이니 남은 자는 이 세상이 멸망하여 없어지지 않도록 세우신 자들입니다.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9:27, 29
남은 자는 숙명의 사람들입니다. 마치 마지막 보루는 끝까지 사수해야 하는 것이듯 남은 자는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이겨나가야할 숙명을 가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대표적 실례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대홍수 가운데서 살아남은 노아의 가족(창 6:5-8).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유일하게 남기신 자들입니다.
② 바로의 남아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모세(출 2장).
모세의 또래들은 모두 학살되었으나 모세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③ 출애굽 1세대로서 광야에서 살아남은 여호수아와 갈렙(민 14:29-30).
출애굽 1세대는 모세를 포함하여 모두 가나안에 갈 수 없었습니다.
④ 아합의 여호와 신앙 말살 정책 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의 성도(왕상 19:18).
⑤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할 때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자(사 10:20; 미 2:12-13) 들이 있습니다.
남은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하늘의 영광을 사모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할 사명자들입니다. 그 수가 많지 않으나 멸망의 세대를 회복시킬 자로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믿음을 가진 당신입니다. 당신의 곁에서 함께 믿음을 붙들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주님 저 뿐입니까?
제가 부끄럽지만 소중한사람들 사역 초기에 분리 수거대 앞에서 운적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일하는 사람이 조리사님과 저뿐이었습니다. 이 시설은 환우가 한 명이어도 지금과 동일하게 돌아가야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설교 준비하고 청소도 제가 했습니다. 건물 관리도 제가 했습니다. 그날은 무슨 영문인지 참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은 꼭 와야 하는게 있지요. 비도 추적 추적 내렸습니다. 분리수거를 하는데 우산이 가만히 있지를 않는 것입니다.
속으로 울분이 났습니다.
‘누가 이 산에 와서 병원을 하려고 하겠으며, 누가 식당 섬기는 일이며 관리하는 일을 하겠나요?’
지금은 보십시오. 하나님의 구별하신 남은 자가 이리 많습니다. 주의 사명을 이뤄가는 참된 분들이 저와 함께 합니다. 실제로 일하는 분들도 있지만 봉사자들과 후원자들, 그리고 모든 우리를 아는 기도자들이 있습니다.
그 때는 부끄럽게도 믿음이 없어 엘리야처럼 투덜 거렸지만 하나님께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아자를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분들이 하루 아침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지난 오랜 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복음 앞에 서기까지 길러지고 세워졌던 것입니다.
당신도 긍휼을 입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의 그릇 곧 하나님이 이 시대에 남은 자로 사명자로 쓰기 위해서 은혜를 주셨음을 아십시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까? 믿음을 주신 은혜를 묵상해 보십시오.
2.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때로는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 혼자만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동역자들이 함께 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본문
롬 9:19-29
19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