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6:15-23
죄를 완전히 끊어 내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늘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 완전히 죄를 끊어 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의 갈등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죄와 싸워 가야 한다’는 마음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차피 천국 가는 것은 예수 믿는 믿음으로 가는 것인데 적당히 종교생활하며 살겠다는 얄팍한 마음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적당히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결국 한국 기독교 윤리 수준은 처참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기독교 내의 교리적 차이로 우리 내에서 비평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대외적 비평의 목소리가 크다는 말입니다.
“국민일보가 최근 실시한 ‘기독교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22년 4월 27일(수)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18.1%다.”
출처: 고신뉴스 KNC(http://www.kosinnews.com)
죄의 종인가? 순종의 종인가?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신자가 은혜 안에 있다는 말은 삶에서 죄를 끊어내야만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롬 6:15
신자로서도 어쩔 수 없이 몇 개 죄는 허용이 되고 어떤 일은 괜찮다며 말할 수 없음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 6:16
바울이 이 구절에서 쓰는 ‘종(δούλους, dulous)’이라는 메타포를 생각할 때에, 종은 자기 주인의 말만 들으면 된다는 의미로 쓰는 것입니다. 다른 주인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완전히 바울은 죄를 따르거나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양단간(兩端間)에 나눴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라 말하여도 죄를 짓는 사람의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주인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의롭다 여기셨으니(Justification) 순종함으로 의(Righteousness)에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의(Righteousness)란 성품의 의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기시는 칭의(稱義)는 법적으로 죄가 없다고 선언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순종함으로 의를 이룬다는 것은 거룩함과 옳음의 인격적 의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순종함으로 의에 이르는 것은 구원을 받을 만큼 무죄함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칭의를 얻은 자는 의에 순종해야 합니다.
신자는 죄에 대하여 자유하다.
바울은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신자는 죄에 대하여 해방된 상태입니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 6;18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 8:32-34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라는 주인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주인인 의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간 지대, 타협지대가 신앙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번에 죄를 끊어 내지 못할지라도... (성화는 과정)
죄는 바울이 죄를 의인화해서 말한 것과 같이 단번에 끊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특히 중독된 것들은 쉽게 주님께 내어드리기 어렵게 생각합니다.
중독은 마음에서 위로의 자리를 차지한 일입니다. 게임, 술집, 이성에 대한 중독, 도박 이런 모든 것들을 쉽게 잘라내지 못하는 것은 강한 금단 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련회나 이런 집회들에 찾아가서 자신의 삶에 대해 회개했어도 다시 원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런 중독성이 있는 것들은 싸워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19절에도 말씀하는 것과 같이 의에 순종함으로 거룩에 이르는 것은 성도의 목적지입니다.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롬 16:19
거룩에 도달하기까지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결국 이 과정으로 나아가 거룩에 도달하게 되면 지난 죄의 삶에서 얻던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롬 6:21
죄 속에 거할 때에는 마음 한편에서 부끄러워 합니다. 양심이 자신을 정죄합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서 정죄함이 없다며 당위성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죄를 지어도 된다는 당위성을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된 달콤함에서 벗어나야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 6:22
바울이 말씀한 것과 같이 거룩에 이르러 마침내 그 열매를 만나게 되면 그 달콤한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고 다시는 옛사람의 헛된 삶을 쫓아가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의 싸움에서 필요한 것은 당위성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죄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혐오해야 합니다.
예수의 보혈이 우리 죄를 깨끗케 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삶에서 죄와 싸워 가는 것은 예수의 보혈을 믿는 사람으로써 당연한 권리입니다. 자유자의 권리입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의 보는 것, 만지는 것, 어딜 가야 하는 것 모두 죄에 대하여 자유인다운 면모를 갖추길 바랍니다. 더 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옛사람이 원하는 것에 아직도 노예가 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 옛사람에서 벗어나 참된 의를 붙들어 그 맛을 봤던 것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 승리가 항상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
성경본문 및 주해
롬 6:15-23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묵상을 돕는 주해
15 은혜 아래에 있으니 : 거저 용서함 받는다는 것이 죄를 지으라는 말이 아니다. 죄를 짓는 것은 죄의 종이 되는 것이다. 믿음은 죄의 종된 우리 본성에서 자유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Ellicott's Commentary for English Readers)
요 8:32-34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16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여기서의 의(δικαιοσύνη, dicaiosune)는 칭의(justification)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거룩함의 의(righteousness)를 말하는 것이다. (Expositor's Greek Testament) 칭의(justification)는 법적 무죄의 선고이다. 의(righteousness)는 사람의 정직한 성품과 관련하여 쓰인다.
22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 : 거룩함의 열매로 나아가는 것은 과정이 필요하다. 단번에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Cambridge Bible for Schools and Colle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