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2:26-35
축복의 삶, 저주의 삶
당신은 오늘을 살면서 자신의 삶이 축복의 삶이라 생각하십니까? 저주받은 삶이라 생각하십니까? 삶이 고달프고 힘든 시간이 많겠지만 스스로 어떻게 바라 보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집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축복의 은혜 아래에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는 모든 저주에서 축복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고대 이스라엘이 에발산과 그리심산에서 축복과 저주의 말을 합니다. (수 8:33) 축복과 저주의 기준은 말씀에 순종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알기 전에는 모든 저주 아래에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엡 2:3)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축복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축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당신의 모든 순종의 삶 속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며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축복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주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비아달의 사례를 생각해 봅니다.
저주 아래에 있어도 순종함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가 왕위를 다시 도모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결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비아달, 요압과 무관하지 않다고 파악했습니다. 아도니야에게 사형을 내렸지만 아비아달과 요압이 나쁜 마음을 먹고 있다면 얼마든지 솔로몬의 다른 형제를 부추겨 다른 쿠테타의 위기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제사장 아비아달을 낙향시킵니다.
본래 대제사장 직분은 아론 지파에게서 나옵니다. (민 18:1) 아론의 두아들은 잘못된 향을 드렸다가 죽게 되고 3, 4째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직을 시행합니다. 엘르아살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대제사장이 솔로몬 시대의 사독입니다.
그리고 이다말에게서 이어진 제사장 중 사무엘 시대에 제사장이 엘리입니다.
엘리는 하나님의 제사를 만홀히 여긴 그의 자식들과 함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삼상 2:31
하나님은 엘리의 집에 노인이 없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엘리에서 겨우 그 계보를 이어가며 놉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에서 아비아달까지 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저주를 비관하며 엘리의 자손들은 살아야겠다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아비아달은 다윗을 도움으로 다윗과 함께 명성과 부를 얻었었습니다. 그러나 아비아달은 아도니야를 지지하다 죽을 목숨이었으나 낙향으로 감형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아달부터는 더 이상 제사장직에 진출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왕상 2:27
이것이 하나님의 저주아래에 놓인 집안의 모습의 말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그들이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아비아달은 다윗을 잘 보필함으로 죽지 않고 낙향하게 된 것입니다.
“26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왕상 2:26-27
이는 선대 엘리의 때에 있었던 저주가 있었으나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산다면 축복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신 24:16
그러나 우리 선대로부터 어떤 저주아래에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저주에서 자유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한 삶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축복 아래에 있어도 저주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축복의 삶을 저주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시편 106편 기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할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는지를 노래합니다.
“24그들이 그 기쁨의 땅을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25 그들의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26 이러므로 그가 그의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그들이 광야에 엎드러지게 하고”
시 106:24-26
그리스도인 가운데 믿음의 축복을 망령되이 여기며 주신 가족도 저주하고, 주신 교회도 저주하고, 주신 삶도 저주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복된 삶을 망령되이 말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물론 힘들고 지쳐서 생을 괴로워하며 헛말을 내 뱉을 수 있으나 반드시 그 말이 하나님 귀에 들린다는 것 만큼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편 106편 기자는 므리바에서 모세가 반석을 두번친 사건에 대해서 모세가 입술로 망령되이 일컬은 것을 주목합니다.
“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33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시 106-32-33
모세는 두 행동을 했습니다. 우리가 므리바 사건에서 의아해 하는 반석을 두번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두번 칠 때에 한 말은 이렇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민 20:10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저주와 분냄으로 하나님을 모욕한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혹 하나님을 원망하였다면 반드시 회개해야할 것이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저주를 제거하신 그 은혜를 모욕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하나님께서 우리가 내뱉은 말대로 저주하신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있겠습니까?
“이 망할 집.”
“이 망할 자식.”
입술을 함부로 열지 말라.
솔로몬이 요압을 판결하는 방식을 보며 우리의 입술의 말을 조심해야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압은 아비아달이 낙향하였다는 말을 듣고 자기 죄를 스스로 깨달았나 봅니다. 그의 도망함은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스스로 증명한 일이 되었습니다. 요압은 아도니야처럼 여호와의 뿔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와 요압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누굴 죽인 일이 없던 것이고, 요압은 사람을 죽인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출 21:14
요압이 여호와의 제단의 뿔을 잡고 자비를 구했지만 솔로몬은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뿐입니다. 여호와의 뿔을 잡은 요압을 마주한 브나야는 그래도 그를 제단에서 떨어뜨리기 위해서 왕이 부른다고 유인합니다.
이 때 요압은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브나야는 죽이지 못하고 솔로몬에게 다시 물으러 옵니다.
그러나 요압을 향한 판결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은 이러합니다.
“왕이 이르되 그의 말과 같이 하여 그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왕상 2:31
사람들이 어떻게 솔로몬이 제단의 뿔을 잡은 요압을 죽였느냐 묻는다면 그가 그것을 원하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요압은 율법에 따라 악의없는 자들을 고의로 죽임으로 이 판결이 얼마나 온전한 판결인지가 더욱 나라에 소문이 날 것입니다.
나랏님의 권위가 세워지며 그 통치의 힘이 강해지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은 법이 바르게 집행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하여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통해 솔로몬이 얼마나 말씀으로 백성들을 통치하게 될지를 기대하게 합니다. 아무리 솔로몬이 지혜로울지라도 하나님에 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주신 축복의 삶을 망령된 입으로 저주로 덮으려 하지 마십시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그 입술의 말대로 시행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이 예수를 믿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2.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원망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 보십시오.
26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28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29어떤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30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아뢰어 이르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31왕이 이르되 그의 말과 같이 하여 그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32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33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34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그를 쳐죽이매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35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사령관으로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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