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20:1-9 도피성과 같은 교회 - 매일성경, 큐티 / 교회, 사랑 나눔

사랑합니다예수님 2025. 1. 31. 17:23

수 20:1-9

도피성과 같은 교회

어린 시절의 영적 방황

제가 목사의 아들로 자랐지만 항상 기쁘고 행복하게 지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 삶에 대해 때때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 가정이 평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형편도 어려웠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고, 목회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가정도 불안정했습니다. 저는 교회가 부흥하고 형편이 나아지면 우리 집도 좀 더 평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자라났습니다. ‘왜 우리 집은 이렇게 힘들어야 할까?’, ‘왜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깨닫지 못했고, 오직 눈앞의 상황만 바라보며 답답함과 혼란을 느꼈습니다. 마치 다윗이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의 시간표가 있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사울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연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저 또한 하나님께서 저를 이끄시는 방법을 이해했어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믿음으로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에는 가장 하나님과 멀어진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자취하던 집 앞의 작은 교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새벽 기도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그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성도는 거의 없었습니다. 방학이라서인지 목사님의 중·고등학생 딸들이 있었고, 사모님으로 보이는 한 분과 한 권사님 정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저는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제 회심의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날이었고, 그때부터 제가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그 교회는 도피성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도피성과 같은 교회

오늘날 교회는 낙담하고 좌절한 이들이 찾아와 피할 수 있는 도피성과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자기 교회의 등록 교인들끼리 종교 의식만 이뤄지는 곳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회는 과연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을까요?

 

본문은 도피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도피성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들이 보복을 피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당시의 율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철저한 공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죽인 자는 자신도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지중에 살인을 저지른 자들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스스로 변론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도피성으로 도망온 사람은 정말로 고의로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고 부지간에 살인이 일어나 도망온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피성을 관리하는 레위인들은 그를 편견을 가지고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도피성과 같다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편견없이 열려 있으며 죄인이 회개하고 변화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는 어느 누구나 죄에서 자유롭게 되었으며, 그 은혜 안에서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구원을 얻길 바라는 이들에게 열려 있을 때에 진정한 현대의 도피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열려 있는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에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 자매는 다단계에 빠져 부모님의 돈을 모두 다단계에 쓰고는,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돈을 빌리다가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그녀가 마지막으로 도망간 곳은 다름 아닌 교회였습니다.

그녀가 찾아간 곳은 작은 교회였습니다. 작은 교회였기에 더욱 성도들이 이 자매를 품어줄 수 있었고,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성도들은 그녀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보아 주었습니다. 유아들이 예배드리는 방을 내어주어 쉴 수 있도록 했고, 기도할 공간도 제공했습니다. 이 자매는 그곳에서 몇 달을 머물며 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죄책감과 절망 속에서 자살까지 생각했는데 교회의 사랑과 권사님들의 기도를 통해 다시 일어섰습니다. 결국 이 자매는 도망치는 삶을 끝내고 친구들에게 돌아가 용서를 구하며 빚을 갚아 나가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목회적으로 큰 성과를 내서 많은 성도가 모이게 하진 못하셨지만,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문을 365일 24시간 열어 두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인생 속에 너무나 힘든 시간을 많이 겪었는데, 너무 힘겨워서 기도하러 교회에 가보면 교회 문이 잠겨 있었던 것이 늘 마음 아프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인들이 목회를 할 때에는 항상 문을 열어 두고 기도할 사람들이 기도의 그늘 아래에 들어 올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원칙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어머니께서는 교회에서 칼을 든 청소년들에게 위협을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닫지 않았기에 누군가 슬퍼하며 기도하고 싶을 때, 혹은 삶에서 하나님을 붙들어야할 때에 하나로 교회에서 도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도피성의 운영을 생각해 보십시오. 도피성은 365일 24시간 언제든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살인을 저지른 자가 피의 보복자로부터 도망가야 하는데, “오늘은 도피성 쉬는 날입니다”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절망한 사람이 새벽에 기도하러 갔는데 “오늘 새벽 예배는 쉽니다”라고 하면 그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교회가 문을 닫아버린다면, 그 순간 찾아온 사람들은 다시 상처를 입고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도피성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죄인들이 교회를 찾아올 수 있도록, 상처받은 자들이 주저 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는 모든 사람을 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문턱이 너무 높아 죄인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냄새나는 노숙자가 교회에 와도 환영받을 수 있을까요? 감옥에서 출소한 사람이 교회에 와도 따뜻하게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요? 교회가 모든 사람을 품기 위해서는 관계의 장벽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정죄받기 전에 먼저 품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받아주신 사람들

우리 주님은 창녀와 세리도 받아들이셨고, 강도까지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용납하셨다면, 교회 역시 누구든지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때때로 교회가 사람을 차별하고 제한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두에 교회가 과연 도피성의 역할을 하고 있느냐고 반문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교회에서는 노인들이 많이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여 제한을 두자는 논의가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회가 특정한 사람들만 받아들이려 한다면, 과연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일까요? 교회의 색깔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정말 모든 사람을 수용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교회는 이 시대의 진정한 도피성이 될 수 있습니다.

구약의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에게 피할 기회를 주는 획기적인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그것보다도 더 큰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한 탈북민 집사님이 간증하기를, 처음 압록강을 건너 도망갈 때 찾아간 곳이 교회였고, 심양으로 도망하면서도 의지할 곳이 교회였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낯선 미국 땅에서 의지할 곳은 교회뿐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낙심하고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정한 도피성이 되려면, 우리 각자의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합니다. 교회 건물이 아무리 크고 별별 룸들이 교회 내부에 존재해도 성도들이 죄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교회는 참된 도피성이 될 수 없습니다.

구약에는 여섯 개의 도피성이 있었지만, 오늘날 진정한 도피성은 교회이며, 더 나아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도피성입니다.

누구든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해 위로받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속한 교회가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셨듯이, 우리도 모든 이들을 환영하고 품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에게 교회는 어떤 의미입니까? 당신이 힘겨울 때 교회를 의지한 적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순간 교회가 당신에게 어떤 역할을 했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또한, 당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피성이 되어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십시오.

 

2. 예수님께서 누구든 받아주신 것처럼, 당신도 주변의 연약한 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혹시 스스로 알게 모르게 문턱을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을 품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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