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21:20-45 어떻게 쉴 것인가 - 매일성경, 큐티 / 쉼, 완치 이후

사랑합니다예수님 2025. 2. 2. 07:59

수 21:20-45

가장 무서운 적 익숙해짐.

쉼의 시간

한번은 친구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이도 같고 신대원 동기인 친구 목사였습니다. 주일 저녁 시간이었는데, 뜬금없이 전화가 온 거예요. 전화를 받으니 친구 목사가 묻습니다.

 

“이 목사, 뭐해?”

 

그래서 제가 "그냥 쉬고 있어." 라고 했더니, 그 말을 듣자마자 친구 목사가 이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겁니다.

 

“이 목사, 주일 저녁이 목사한테 제일 위험한 시간이야. 잘 쉬어.”

 

순간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말이 참 맞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넋 놓고 TV보는 중이었습니다. TV보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바른 안식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바로 안식입니다. 에릭 프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식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최고의 시간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한없이 돌아가기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 유한한 존재이고,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반드시 쉼이 필요합니다. 안식은 하나님이 주신 복된 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이 안식을 잘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안식을 누려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안식이 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안식과 위기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지난 40년의 광야 생활과 쉼 없이 이어졌던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치고, 마침내 하나님의 안식을 얻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니라”(수 21:44).

 

드디어 싸움이 끝났습니다. 마치 암과의 싸움이 끝나는 어느 날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기쁨의 말과 같습니다.

 

 

"이제 항암 안 하셔도 됩니다. CT 촬영도 필요 없습니다. 이제 집에 가셔서 편히 쉬십시오."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끝이라는 말과 같이 들리는 안식하라는 말이 사실상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암환자에게 치병의 시간이 끝이 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암환자에게 완치되었다는 말을 쓰지 않고 관해라는 말을 씁니다. 관해는 지켜보자는 말입니다. 죽는 날까지 더 건강하게 살아가려고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안식은 정복을 멈추고 이제는 마음대로 쉬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안식을 얻고 난 후의 상황을 사사기의 한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삿 5:17).

 

길르앗은 요단 동편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길르앗, 단, 아셀 지파는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신 이후 그렇게 계속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사기 1장 1절에서 바로 전투가 재개되는 것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싸움을 마치고 안식을 얻었지만, 그 안식이 곧 익숙함이 되어 이제 다른 형제 지파가 싸우러 나가든 말든 저들은 멈춰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시 쉼을 주셨지만, 그것은 다시 나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중 몇 지파는 그냥 멈춰버렸습니다.

어떤 환우는 드디어 지긋 지긋한 항암이 끝나고 건강하게 잘 유지하다가 결국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서 막걸리 한잔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쯤이야…"

"한 번쯤은 괜찮겠지."

 

암 환자가 막걸리 한 잔을 마신다고 당장 죽지는 않습니다. 폐암 환자가 담배 한 개비를 핀다고 당장 암이 다시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선택이 결국 습관이 되고, 익숙함이 되면서 나태함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신 이유는 나태해져서 예전보다 더 악해 지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안식은 다음을 위한 준비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안식을 통해 힘을 얻고, 다시 나아가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나태해져 버립니다. 영적인 나태함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적입니다.

우리는 죽기 전까지는 완전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쉼을 잘 사용하십시오. 쉬는 단계를 나태함으로 들어가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안식을 발판 삶아 계속해서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야 합니다.

 

영적인 쉼의 방법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어떻게 누려야 할까요? 우리는 먼저 예수님에게서 바르게 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쉼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마치신 후, 피곤할 때마다 불멍을 하거나,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따로 시간을 내어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상황 속에서도 쉼이 필요하다 느끼시면 무리를 물리시고 아버지와의 시간을 따로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쉼과 평안을 누리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쉼을 단순히 몸을 쉬는 것,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하고 싶은 것이 우리를 참되게 쉬는 것이 되도록 하지 못합니다. 우리 영이 다시 충전을 받아야 하는데 영이 충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간을 피정(리트릿, Retreat) 이라고 부릅니다.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돌아보는 것이죠. 우리가 리트릿 센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헨리 나우엔(Henri Nouwen)은 무리로 나아가기에 앞서 필요한 단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헨리 나우엔, 친밀함).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다음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세워야 한다.

그 이후에야 사회 속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마음이 허전하면 바로 사회 속으로 뛰어들고, 사람들과 어울리다 지치면 자기 마음이 하고 싶은 데로 하려 합니다. 사람들 속에서 계속 마음을 다치고 힘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다르게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교제하시고, 그 힘으로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하나님과 1:1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까지는 친구들과 여러 명이 어울려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갑자기 두세 명이 화장실에 가거나 어디 가게 되어 누군가와 딱 1:1로 남게 되면 참 어색하더라고요.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상대에 집중하고 나에 오롯이 집중해야하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찬양할 때는 열심히 손을 들고 부르짖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런데 정작 혼자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려 하면, 너무나 어색합니다. 기도하려고 앉았는데,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 기도하는 시늉하고는 끝입니다. 혼자 오롯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 마음을 바라보는 훈련이 안되었던 때의 제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

이스라엘은 아직 정복을 완전히 마치지도 못했으면서 점점 나태해졌고, 결국 영적으로도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안식의 시간 속에서 예배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쉼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욱 깊어져야 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우상의 제사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가나안의 음란한 제사 방식을 사모하며, 하나님이 아닌 이방 신들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는 언제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레위인들이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찾는 대신, 점점 가나안 문화 속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신앙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가나안의 바알 숭배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제사는 사람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가득했습니다. 바알의 제사는 음란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남자들에게는 아주 큰 유혹이었습니다. 밀곰의 제사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들을 불에 태워 바치는 제사였죠.

 

처음에는 이스라엘도 가나안을 반드시 축출해야한다는 사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섞여 있게 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점 이런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다윗의 쉼과 예배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독대하며 쉼을 누리신 것처럼, 다윗 또한 그의 안식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갈망했습니다.

다윗은 마침내 블레셋을 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삼하 5:25).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을 물리쳐 주셨고, 이제 그는 왕으로서 평안한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평안 속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 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삼하 6:1-2).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 속에서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려 했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기에 그는 여호와의 궤를 옮겨오려 한 것 아니겠습니까?

다윗의 기쁨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 7:1-2).

 

그는 자신의 왕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을 가장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쉼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사모하고 예배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쉼 속에서 무엇을 채울 것인가?

우리는 쉬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쉼을 그저 몸을 누이고 퍼져 있는 시간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쉼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독대하며 그 시간과 장소에서 충분히 영적인 충전을 받으셨습니다. 다윗은 쉼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생각했습니다.

병에서 회복되었을 때, 어려운 시기를 지나 이제 평안을 얻었을 때, 그 쉼을 하나님을 더욱 찾는 시간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잘됐다! 다 나았어. 이제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서 한번 달려볼까?"

이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는 시간으로 삼아야겠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의 시간에 하나님을 가까이 대하지 않음으로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명을 잊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쉼을 그분을 더욱 사모하는 시간으로 만드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셨던 참된 평강이 우리 삶에도 임할 것입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의 쉼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주어진 안식의 시간을 단순한 휴식으로만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과 다윗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쉼을 누렸듯이, 당신의 쉼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할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2. 당신은 영적으로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이 안식 속에서 영적 나태함에 빠진 것처럼, 당신도 신앙의 자리에서 만족하며 더 이상 전진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쉼을 통해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오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수 21:20-45

20레위 사람인 그핫 자손 중에 남은 자들의 가족들 곧 그핫 자손에게는 제비 뽑아 에브라임 지파 중에서 그 성읍들을 주었으니

21곧 살인자의 도피성 에브라임 산지 세겜과 그 목초지이요 또 게셀과 그 목초지와

22깁사임과 그 목초지와 벧호론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23또 단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엘드게와 그 목초지와 깁브돈과 그 목초지와

24아얄론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25또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준 것은 다아낙과 그 목초지와 가드 림몬과 그 목초지이니 두 성읍이라

26그핫 자손의 남은 가족들을 위한 성읍들은 모두 열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

27레위 가족의 게르손 자손에게는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살인자의 도피성 바산 골란과 그 목초지를 주었고 또 브에스드라와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두 성읍이요

28잇사갈 지파 중에서는 기시온과 그 목초지와 다브랏과 그 목초지와

29야르뭇과 그 목초지와 엔 간님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네 성읍이요

30아셀 지파 중에서는 미살과 그 목초지와 압돈과 그 목초지와

31헬갓과 그 목초지와 르홉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네 성읍이요

32납달리 지파 중에서는 살인자의 도피성 갈릴리 게데스와 그 목초지를 주었고 또 함못 돌과 그 목초지와 가르단과 그 목초지를 주었으니 세 성읍이라

33게르손 사람이 그 가족대로 받은 성읍은 모두 열세 성읍과 그 목초지들이었더라

34그 남은 레위 사람 므라리 자손의 가족들에게 준 것은 스불론 지파 중에서 욕느암과 그 목초지와 가르다와 그 목초지와

35딤나와 그 목초지와 나할랄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36르우벤 지파 중에서 준 것은 베셀과 그 목초지와 야하스와 그 목초지와

37그데못과 그 목초지와 므바앗과 그 목초지이니 네 성읍이요

38갓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길르앗 라못과 그 목초지이요 또 마하나임과 그 목초지와

39헤스본과 그 목초지와 야셀과 그 목초지이니 모두 네 성읍이라

40이는 레위 가족의 남은 자 곧 므라리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성읍이니 그들이 제비 뽑아 얻은 성읍이 열두 성읍이었더라

41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 중에서 받은 성읍은 모두 마흔여덟 성읍이요 또 그 목초지들이라

42이 각 성읍의 주위에 목초지가 있었고 모든 성읍이 다 그러하였더라

43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44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음이니라

45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매일성경 #큐티 #여호수아 #영적쉼 #안식의의미 #신앙생활 #하나님과동행 #예배의삶 #기도하는삶 #영적성장 #신앙훈련 #믿음의생활 #성경묵상 #하나님의말씀 #쉼과예배 #다윗의예배 #예수님의기도 #신앙적안주 #영적전진 #하나님의평안 #말씀과삶 #신앙도전 #예배회복 #믿음의결단 #하나님의임재 #거룩한삶 #하나님께나아가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