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4:1-10
하나님의 성전과 백성의 가치
성전을 바라보는 예례미야의 황망함
예전에 청평에 계시던 조부모님의 집에 이제 제가 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먼저 돌아가신 후, 할머니 혼자 지내시다가 막내 고모 댁으로 가셔서 여생을 보내셨기에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저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준비하며 이 집에 머물기로 했고, 거처로 삼기 위해 리모델링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방치로 집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져 있었습니다.
막상 집에 들어와 살아보니, 문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더 이상 이 상태로는 지내기 어려워 결국 집을 전부 허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벽과 지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가꾸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크게 달라집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새로운 출발을 위해 집을 보수해야 했던 경험입니다.
하나님의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실 때, 성전은 그 어떤 장소보다도 거룩하고 아름다운 곳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성전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 소용도 없는 건물로 전락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바로 그처럼 파괴된 성전을 보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담지 못한 채, 폐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파괴와 그 의미
솔로몬의 성전은 그의 아버지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헌신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윗의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모든 금은보화를 아낌없이 하나님께 바치며 성전 건축에 동참했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의 치세 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고 지혜를 넘치게 부어주셔서 나라가 부강해지고 많은 재화를 쌓게 되었습니다. 이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성전은 그 내부와 외부가 모두 정금으로 치장되었습니다.
열왕기에는 솔로몬이 성전 내외를 정금으로 입히고, 그 중심에 언약궤를 모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왕상 6:19-22). 이 장면은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헌신과 사랑을 보여주며, 세상에서 가장 귀한 마감재로 성전을 채워 하나님께 드린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 자리한 순수한 신앙과 헌신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 성전에 머무시지 않으셨고, 성전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애 4:1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여기서 '순금의 변질'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금속의 변화가 아닌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전의 진정한 가치는 그 화려함에 있지 않았고, 하나님과 백성들의 올바른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 관계가 단절되자 성전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했고, 결국 무의미한 장소로 전락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타락과 가치의 상실
이는 성전의 가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2절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의 가치도 말하고 있습니다.
“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시온의 백성은 순금처럼 귀하게 여겨졌던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며 경외하고 예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그들의 삶은 한낱 질항아리처럼 아무 가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지 않음으로 결국 하나님께서 저들을 무가치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가장 존귀한 분으로 여기며 마음을 다해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짓기 위해 금은보화와 귀한 재물들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역대상 29:3-9). 이러한 헌신은 단지 물질의 크기나 외형적인 풍성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경외심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에서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드릴 헌금은 단지 교회 건물을 금은보화로 치장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전의 재물’은 형식적인 물질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작은 자들을 향한 사랑과 섬김의 실천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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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우리의 헌신은 작은 자를 섬기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고 권면합니다. 형제자매의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한 방식입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6:7은 말씀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바울은 우리가 작은 자를 향한 섬김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다윗과 백성들이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듯이, 우리의 섬김 또한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진심과 사랑이 담긴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를 하나님께 하듯 섬길 때, 그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가장 존귀한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섬김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드린 작은 정성 하나가 하나님 앞에서는 금은보화와 같은 귀한 헌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와 백성의 파멸
애 4:3 “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예레미야는 타조의 무정함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를 돌보지 않는 비참한 상태를 묘사합니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린 것이고, 둘째는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점입니다. 하나님과 이웃 모두를 등진 이스라엘의 상태를 타조에 빗대어 설명한 것은 욥기를 통해 그 의미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욥기 39:13-17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욥 39:13-17 “13) 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14)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15)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16)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17)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타조가 자신의 알을 방치하듯, 이스라엘 백성도 서로를 돌보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저버린 데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타조의 무정함은 단순한 습성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진 인간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의 참상은 처참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애 4:5).
이 구절은 예루살렘 백성들이 한때 부와 명예를 누리던 삶에서, 하나님을 잃고 난 후 처참한 몰락으로 떨어진 현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도 바로 이 경고입니다. 유대인들이 자신의 탐욕과 안일함에 빠져 하나님과 어려운 이들을 외면했을 때,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처럼 우리 역시 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과거 유대인들은 자주빛 옷, 곧 당시 가장 값비싼 염료로 만든 고급 의복을 입고 자신을 뽐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자랑하던 붉은 옷은 거름더미에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탐욕과 허영이 몰락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경고가 됩니다. 지금 우리는 명품과 사치로 자신을 꾸미고, 고급 식당과 화려한 생활을 SNS에 자랑하는 데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모든 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탐욕에 빠져 하나님과 이웃을 외면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듯,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의 욕심과 교만을 심판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소돔보다도 더 비참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소돔은 사람의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졌지만, 딸 내 백성의 죄는 소돔의 죄보다도 더 무겁도다” (애 4:6)라는 말씀처럼, 이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죄악의 결과입니다. 소돔은 한순간에 멸망했지만, 이스라엘은 경고를 듣고도 돌이키지 않았기에 더 큰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영접하지 않고 너희 말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마 10:14). 그리고 경고하셨습니다. 복음을 거절한 자들의 죄는 소돔보다 더 클 것이며, 그들에게 임할 심판은 더 무섭고 가혹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일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예루살렘은 그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A.D. 70년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돌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항전지였던 맛사다에서는 2년 동안 저항하던 사람들이 끝내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보다 더 두려운 심판이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형벌의 처참함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화려한 삶이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치가 아닙니다. 가장 가치 있고 존귀한 일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의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거절한 도시는 소돔보다 더 큰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한 인생의 끝은 얼마나 더 비참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이 세상의 허무한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입니다.
예배와 헌신의 참된 가치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헌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만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결국 그 끝은 비참한 몰락이었습니다.
애가 4장 7-8절은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렇게 대조합니다.
애 4:7-8 “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과거의 그들은 자신의 부와 아름다움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피부는 윤택했고, 품위 있어 보였으며, 화려한 삶을 누리던 이들은 마치 빛나는 보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자 그들은 한순간에 초라하고 형편없는 모습으로 전락했습니다. 모든 영광이 사라진 채, 그들의 몰골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췌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애 4:9-10 “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굶주림은 그들을 비인간적인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습니다.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를 삶아 먹을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이 처참한 현실은 하나님과 이웃을 외면한 죄악의 대가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치장을 위해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을 모른 척했듯, 이제 그들은 그 죄의 무게를 자기들 몸으로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화려한 외적 치장이나 일시적인 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마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외면당한 자들을 돌보지 않는 탐욕과 허영을 심판하셨듯, 우리도 경고를 무시한다면 같은 비참한 결말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외면한 삶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끕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헌신할 때, 주님은 우리를 순금과 같이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형식적인 예배와 봉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드릴 때 주님은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며, 형제와 자매를 섬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순금처럼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장소로서의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과 삶 속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당신은 일상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꾸고 계신가요?
2. 작은 자를 섬기고 서로의 짐을 나누는 것이 주님께 대한 헌신입니다. 당신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떤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며, 어려운 이웃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애 4:1-10
1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순금이 변질하였으며 성소의 돌들이 거리 어귀마다 쏟아졌는고
2순금에 비할 만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이 어찌 그리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3들개들도 젖을 주어 그들의 새끼를 먹이나 딸 내 백성은 잔인하여 마치 광야의 타조 같도다
4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5맛있는 음식을 먹던 자들이 외롭게 거리 거리에 있으며 이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자라난 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6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였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
7전에는 존귀한 자들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들보다 붉어 그들의 윤택함이 갈아서 빛낸 청옥 같더니
8이제는 그들의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들의 가죽이 뼈들에 붙어 막대기 같이 말랐으니 어느 거리에서든지 알아볼 사람이 없도다
9칼에 죽은 자들이 주려 죽은 자들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그들은 찔림 받은 자들처럼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10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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