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애가

애가 4:11-22 설마 - 매일성경, 큐티 / 하나님의 소망, 위기 극복

사랑합니다예수님 2024. 10. 26. 06:49

애 4:11-22

설마

 

우리말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설마’라는 생각을 할까요? 이는 현실을 부정하며,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확실한 소망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외의 것에 기대는 모든 것들은 결국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사람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경고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안전 하다 여기는 것이나 인간적인 계획에 의지하려 할 때, 그것들은 오히려 우리를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만 흔들리지 않는 소망과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세상의 보장이 아닌, 영원히 신실하신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천의 요새에 설마 대적과 원수가 들어가랴?

애 4:11-12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예루살렘은 "천의 요새"로 불릴 만큼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의 침략 앞에서 무너진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다윗 왕이 여부스 족속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으면서 이 도시는 강력한 요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견고한 방어력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결국 바벨론 앞에서 항복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패배는 물리적인 성벽이나 요새로는 끝내 지켜낼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삼하 5:6-7에 기록된 다윗과 여부스 족속의 전투는 예루살렘이 인간의 눈에 얼마나 철저한 방어를 자랑하는 요새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에게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막을 수 있다"고 조롱할 만큼 그들의 성이 난공불락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m의 높은 고지대에 위치해 있고,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 침입을 어렵게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들이 예상치 못한 수로를 통해 군대를 들여보내 예루살렘을 점령했습니다.

애 4:11-12에서 묘사된 예루살렘의 멸망은 단순한 군사적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파괴임을 보여줍니다. 바벨론의 침공 당시 유다 백성은 히스기야 왕 시절에 완성된 도시 내의 수로와 우물로 인해 어떠한 포위전에도 버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물이 충분하니 굶주림이나 고갈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 어떤 자원도 그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리적인 방어와 자원에만 의존했던 그들의 자만은 결국 바벨론의 포위 속에서 기근과 고통으로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천의 요새 예루살렘 성

예루살렘이 천의 요새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 도성의 운명을 이미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왕들과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문이 적에게 열릴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심판 앞에서는 그 어떤 방어도 무의미했습니다.

 

유대가 멸망한 이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예루살렘의 멸망은 위선적인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자신들이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부정한 자들을 멀리하며, 사람들에게 “저리 가라, 부정하다”라고 외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거룩함은 겉모습뿐인 위선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권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의인들을 핍박하고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거짓된 거룩을 심판하셨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그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거리에서 비틀거리며 헤매게 되었고, 이제는 자신들이 “저리 가라, 부정하다”는 말을 듣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4장 14-15절은 그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이 거리에서 맹인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아무도 만질 수 없도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애 4:14-15)

 

이제 이방인들마저 그들에게 가까이하지 않으며 “그들이 다시는 이곳에서 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위선적인 거룩을 지키기 위해 남을 정죄하던 그 언어와 상황을 그대로 돌려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피를 흘리며 거리를 헤매고, 자신들이 멸시하던 자들처럼 “부정하다”는 말을 들으며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설마 안 도와 주겠어?

예루살렘이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하며 도움을 구한 것은 결국 헛된 기대였고, 이로 인해 큰 대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앗수르와 애굽에 막대한 조공을 바치면서 이들의 군사적 보호를 바랐지만, 그들은 유다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앗수르에게는 1000 달란트의 은을 바쳤으며(왕하 15:19), 애굽의 바로 느고도 예루살렘을 제압하고 100 달란트의 은과 1 달란트의 금을 강제로 바치게 했습니다(왕하 23:33). 그러나 아무리 많은 조공을 바치고 도움을 요청해도, 결국 이들 강대국조차 바벨론의 침공을 막지 못했습니다​

앗수르는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며 쇠락했고, 애굽 역시 바벨론의 군사력 앞에 무력했습니다. 유다가 믿었던 애굽과 앗수르 모두 자신들을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보호는 신기루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애 4:17)라는 예레미야의 고백처럼, 유다는 인간적인 연합과 조공에 의지한 것이 오히려 파멸로 이어졌습니다.

인간의 힘과 외적인 것을 의지하는 것은 결코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유다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진노가 사라질 때에야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위기 속에서 사람이나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만이 참된 소망과 구원이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마지막 설마

이스라엘이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왕,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이방의 함정에 빠진 것은 유다 백성의 절망을 말합니다(애 4:20). 고대 사회에서 왕은 백성의 생명과 영혼을 상징했기에, 왕이 잡힌 것은 곧 유다 전체가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이른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영원히 멸망 속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회복의 반전을 이루실 것임을 예언합니다.

이때 유다의 멸망을 가장 즐거워했던 자들이 바로 에돔이었습니다. 에돔은 유다가 바벨론에게 파괴될 때 단순히 방관한 것에 그치지 않고, 유다에서 도망하던 사람들을 잡아 바벨론에 넘기며 예루살렘에서 약탈까지 자행했습니다(시 137:7). 에돔은 유다의 비극에 고통을 더하며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라고 외치며 유다의 완전한 파멸을 축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돔의 죄악을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4장 21-22절에서 하나님은 에돔에게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고 선언하며 그들의 교만한 기쁨이 심판으로 바뀔 것을 경고합니다. 에돔의 허물과 죄가 드러나고,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유다에게는 소망이 주어집니다.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않게 하시리로다"(애 4:22). 이는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를 모두 청산하시고, 상상하지 못할 방식으로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유다의 운명은 일시적으로 바벨론의 심판 아래 놓였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은혜로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전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은혜로, 결국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드러낼 것입니다(렘 30:18). 우리의 도움과 소망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우리가 '설마'라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인간적인 확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의지하는 것이 반드시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지만, 성경은 반복해서 이와 같은 신념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경고합니다. 가장 견고해 보였던 예루살렘 성조차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무너졌습니다. 위선적인 제사장과 선지자들 역시 결국 파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애굽과 앗수르에 의지하며 도움을 구했을 때조차, 그 모든 기대는 헛되게 끝났습니다(애 4:17).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원히 신실하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반석과 보호처가 되십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의 것에 기대어 '설마'를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모든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은 견고한 반석 위에 서는 것이며, 그분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방식으로 회복과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렘 30:18).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삶에서 어떤 세상적인 것에 의지하고 있습니까? 혹시 당신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자원이나 계획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돌아보십시오. 지금 바로 하나님께 돌이켜, 그분만이 참된 소망과 보호가 되심을 신뢰할 수 있도록 기도해 보세요.

 

2. 당신이 위기나 어려움을 만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애 4:11-22

11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12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아무도 만질 수 없도다

15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7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8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19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 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20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21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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