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4:1-12
부활의 증거자
기독교 신앙의 중심, 부활
기독교는 그 근간을 ‘부활’에 두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 진리는 모든 신앙의 중심이며 복음의 핵심입니다.
역사 속에서 개혁 교회는 여러 차례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개혁이 일어났고, 그 흐름은 독일과 스위스, 프랑스와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으로 이어졌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위그노로, 네덜란드에서는 개혁 교회로, 영국에서는 성공회와 청교도 운동으로 그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청교도 전통은 다시 웨슬리 운동을 통해 감리교로, 감리교는 미국 땅에서 성결교회로 이어졌고, 다시 오순절 운동으로 확산되어갔습니다.

교단의 분화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만 해도 250개가 넘는 교단이 존재합니다. 사람의 역사 안에서 다양한 신학적 해석과 시대적 요청에 따라 교회의 모습은 계속해서 나뉘고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다양함과 분열 속에서도 정통 기독교가 붙들고 있는 한 가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 어떤 교단에 속했든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고백 위에 서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아무리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전한다 해도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기독교의 본질을 버린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 평화와 같은 윤리적 가르침에만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물론 사랑, 정의, 평화, 기쁨은 기독교 안에서 매우 귀한 열매이지만, 그 열매는 ‘부활’이라는 뿌리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을 제외한 기독교는 본질을 잃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부활 없는 기독교는 생명 없는 신앙이며 그것은 더 이상 복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부활의 사건은 우리가 믿는 영원한 생명의 약속입니다. 만약 부활이 믿기 어려운 초자연적 사건이기에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그 신앙은 더 이상 기독교일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입니다.
부활의 첫 증인들: 여인들
부활의 시작점은 분명 예수님의 부활 자체입니다. 그러나 그 부활이 세대에서 세대로, 사람에게서 사람에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증거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담대히 증언할 때,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고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2000년 전, 부활의 첫 증인들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눅 24:1).
안식일에는 율법에 따라 움직일 수 없었기에 여인들은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날 새벽, 곧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주일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여인들은 마지막 장례를 마무리하려는 마음으로 향품을 들고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놀라고 당황한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눅 24:7)
천사가 예수께서 하신 말을 해주자 여인들은 그제서야 예수님께서 이미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 냅니다. 누가는 바로 이 ‘기억함’에 주목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여인들이 무덤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시지만(마 28:10), 누가복음은 그런 직접적인 만남보다 ‘말씀을 기억하고 믿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
이 흐름은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의 이야기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일상을 살기 위하여 가던 두 제자 곁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동행하십니다(눅 24:13이하).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당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시고, 오히려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을 통해 성경에 기록된 자신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풀어 설명해 주십니다.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7)

이 장면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친히 곁에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주는 수단은 다름 아닌 말씀이었습니다. 눈으로 본다고 해서, 손으로 만졌다고 해서 참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될 때에만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삶에서 수많은 유혹과 시험을 마주하게 됩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믿음이 세워져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부활을 믿으라.
오늘날 우리는 부활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믿음의 기초는 말씀입니다. 말씀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말씀 묵상 가운데 삶의 크고 작은 고비마다 역사하시는 주님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부활을 전하는 데에 어떤 자격이 따로 요구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사회적 관습 속에서 증인의 자격조차 인정받기 어려웠던 여인들이 주님의 부활을 전한 복음의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기억하고 믿었기에 기라성 같은 제자들에게 주께서 부활하셨음을 전한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일은 신분이나 배경, 세상의 평가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가장 중요한 소양은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믿게 되는 것은 단지 지식이나 결심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말씀을 믿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우리는 이 부활의 은혜를 진심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부활이 믿어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크고 놀라운 선물입니다. 부활을 믿는 신자는 부활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 멈춘 것이 아닙니다. 부활, 즉 예수께서 살아 역사하심을 믿음으로 고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이기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소망의 근원이 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
이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에서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9-11).
바울은 부활의 권능을 말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함께 고백합니다. 부활은 단지 장차 죽은 뒤에 경험하게 될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부활 신앙은 고난 한복판에서도 믿음으로 이기게 하는 능력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 3:12).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붙들린 인생으로서 부활의 영광을 향해 지금도 힘써 달려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바로 지금, 고난과 연약함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이며, 매일의 삶에서 부활의 능력을 좇아 달려가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고난 없는 삶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닥쳐올 때마다 우리는 고난 앞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붙들린 자로서 날마다 다시 일어나 부활의 능력을 좇아 나아가야 합니다.
부활의 증거는 삶의 변화
저도 제 나름의 인생 속에서 수많은 눈물과 고난을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어둠과 나락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은 순간들마다, 주님은 그 은혜로 저를 다시 살리셨고 주님의 살아계심을 제 삶에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부활의 증거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각자는 여러 시련과 아픔 속에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당신과 함께하시며 당신의 삶을 일으키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여인들이 말씀을 기억하고 즉시로 제자들에게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듯이 주의 말씀을 붙들고 주의 살아계심을 믿고 당신의 고난을 이겨내십시오.
우리가 곧 부활의 증인입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의 삶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 생각합니까?
2.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심을 믿고 있습니까?
눅 24:1-12
1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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