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누가복음 6:27-38 용서의 자리, 축복의 자리 - 매일성경, 큐티 / 용서의 은혜, 진정한 변화

사랑합니다예수님 2025. 2. 24. 07:19

눅 6:27-38

용서의 자리 축복의 자리

 

섬김의 삶으로의 변화

저는 지는 것을 진짜 싫어합니다. 청소년 시절 지는 게 싫어서 친구들과 당구장을 갔다가 더 이상 당구를 칠 수가 없었어요. 친구들은 당구를 잘 치는데 저는 못 치니까 자연스럽게 당구에 취미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번 해보려고 했지만 게임에서 지는 게 싫으니까 열심히 해야 되는데, 남들보다 더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작조차 안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에게는 게임도 취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저를 아는 친구 목사님들이 종종 충고를 합니다. “이 목사님, 건강을 위해서라도 테니스도 좀 치고, 축구도 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다 싫습니다. 질 게 뻔하니까 다 싫어요. 물론 아예 시도조차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 있을 때 테니스 레슨도 한번 받아봤습니다. 그런데 배워 보니 보나마나 질 것 같더라고요. 이처럼 제 본성은 이기는 것을 좋아하고, 숙이는 것을 너무나 싫어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목회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목회는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길입니다. 말싸움에서조차 이길 수 있을 것 같아도 져줘야 하고, 하고 싶은 말을 삼켜야 하고, 항상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길 수 있는데도 져주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삶입니다. 제 본성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삶이죠.

그래서 저는 신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항상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저를 낮춰 주십시오. 제 자아가 드러나려고 할 때마다 저를 붙잡아 주십시오.”

 

제 지기 싫어하는 본성이 드러나면 내 주님 면이 상하게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속에서 제 본성이 올라와 외칩니다.

 

“주님, 저도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렇게까지 져줘야 합니까?”

 

 

왜 우리가 그렇게까지 져줘야 합니까? 왜 입을 닫아야 합니까? 왜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우리 삶에 그리스도인 다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목소리가 커져서 할렐루야를 외치게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변화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이제는 남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증거입니다.

도달하기 어려운 말씀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 28).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 구절을 보면 열두 제자뿐 아니라 많은 제자들과 예수님을 쫓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이 축복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때에 세상은 너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희를 핍박하고, 모욕하고, 괴롭게 할 텐데 그때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를 핍박하는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원수들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로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보면 얼마나 밉습니까? 그냥 말없이 지나가 주기만 하면 좋겠는데 우리 인생에서 같이 삽니다. 솔직히 그들을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이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사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이유

제가 너무나 미워하는 원수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괴롭게한 어떤 사람입니다. 어머니를 위해 중보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화가 납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한가지 깨닫게 하신 것이 있습니다.

원수를 향한 한 가지 관점만 바꾸면 그 분노를 사그러 뜨릴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이 우리를 핍박하고 괴롭게 하는 것입니까? 저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겉으로 볼 때는 믿음이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겉으로는 목사일 수도 있고,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를 괴롭히고 핍박합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무엇이라고 기도하셨습니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예수님은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향해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약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교회가 어떤 곳인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았다면, 우리를 핍박하는 대신에 협력하고 함께 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생각이 조금도 없고 오직 자기 생각, 자기 주장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괴롭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마귀가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불을 지피고 충동질하기 때문에 우리가 더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은혜를 얻을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해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분노와 원망 대신 불쌍히 여기고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은혜입니다.

 

자비로운 자가 되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

 

왜 우리가 자비로워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괴롭게 한 자들은 마귀의 자녀라 이렇게 힘들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별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미워하는 자들까지도 품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눅 6:32).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자비롭고 너그러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는 그들 이상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변화되어라.

물론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여전히 가까운 사람조차 사랑하지 못하고, 말끝마다 칼이 박혀있는 것처럼 상처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전혀 변화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왜 변화되지 못했습니까? 스스로를 바꾸려고 한 번도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는 데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왜 우리가 변화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쳐서 굴복시키며 변화되어야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성경책을 손에 들고 다닌다고 해서 기독교인, 예수님의 제자라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다움은 사랑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어도, 내 곁에 있는 사람조차 용서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아직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시작하지 않은 것입니다.

 

제게는 이와 관련하여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제 육신의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분노를 깨닫게 하시고, 제 신학의 첫 시작을 아버지를 용서하는 기도의 자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유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상담을 공부하게 된 것도 이런 변화가 얼마나 좋은지 모든 성도들에게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라고 잘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용서가 곧 축복이라는 사실을 많은 성도들이 모르고 지냅니다.

제가 청년 사역을 하면서 제자훈련을 하며 청년들에게 늘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 용서입니다. 제자 훈련은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인데 용서함 보다 더 강력한 역동이 일어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한 청년은 제자훈련을 받다가 즉시 고향 부산으로 내려간 일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용서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15년간 아버지와 연락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성령에게 이끌려 그동안 쌓였던 원망을 아버지에게 전하고, 아버지를 용서했습니다. 이 청년의 아버지도 아들을 끌어안으며 “미안하다,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청년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상처와 중독이 그 순간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심지어 중독된 것에서 치유되는 은혜도 입게 됩니다.

 

결론: 성경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삶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입니다. 성경 구절을 많이 외우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성경을 많이 읽지 못해서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예수 믿는 사람임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진짜 제자다움은 사랑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변화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분노하며 원수처럼 지내지 마십시오. 용서하고 사랑하십시오. 당신의 삶에 진정한 변화와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이 가장 섬기기 어렵고, 사랑하기 힘든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람을 축복하고 기도하기 위해 오늘 어떤 결심을 하겠습니까?

 

2. 당신의 삶에서 진정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눅 6:27-38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라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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