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욥기 31:1-23 스스로 변화하는 욥 매일성경 큐티 / 다 내려 놓을 수 있겠는가?

사랑합니다예수님 2023. 12. 7. 10:09

욥 31:1-23

다 내려 놓을 수 있겠는가?

저는 전도사 시절 아버지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했었습니다. 당시 교회 바로 옆에 사택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까지 2분이면 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넥타이를 고르다가 예배 시간에 1-2분 늦었던 것입니다. 제가1부 예배 시간에 반주를 했었는데 예배 시간에 약간 늦은 일로 인하여 아버지는 제 정강이를 발로 차셨습니다. 저는 정강이를 맞은 것이 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예배 시간을 방해한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 죄책감에 그날 예배를 늦게 만들었던 넥타이를 쓰레기 통에 버렸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언제든 제가 소중히 여기던 것을 버릴 수 있는지를 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어하고 더 나를 꾸미려고 드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소유하고 싶어하는 본성을 탐욕이라 부릅니다.

 

욥의 최후 변론 시작

욥은 오늘 본문에서 어떤 탐욕에도 빠지지 않았음을 변론합니다. 욥은 자신이 의로운 자이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재앙을 받았음을 하나님께서 증언해 주시길 바랬습니다. 이 증언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증명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법정에 나와 주시길 요청합니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으시므로 욥은 되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시길 요청합니다. 자신을 법정에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심으로 자신의 최후 변론을 합니다.

 

1. 저는 탐욕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자신은 처녀를 정욕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욥 31:1

현대인의 성경 버전을 보면, “내가 내 눈과 서약하였으니 어찌 처녀를 정욕의 눈으로 볼 수 있겠는가?”

남자는 숟가락들 힘만 있어도 딴 생각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적 정욕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런데 욥은 처녀를 보며 정욕의 눈으로 보지 않았다고 하나님 앞에 변론합니다. 그 이유는 욥은 탐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배나온 중년 남성이 처녀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마음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사치스러운 옷과 차, 외적인 허세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욥은 짝지어 주신 아내 외에 다른 처녀를 눈독 들였다면 벌을 받음이 마땅하다 말합니다. 처녀를 정욕으로 보지 않는 것은 욥이 탐욕에 사로잡히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2. 저는 신의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두번째 그는 다른 여인에게도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욥 31:9

이웃의 문을 엿보는 이유는 다른 여인을 몰래 만나야 하기 때문이겠습니다. 이는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하이닥에 따르면 미국 앨라배마 버밍엄 대학교의 임상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조슈아 클라포우(Joshua Klapow) 박사는 “바람을 피우는 행위는 단지 하나의 이유 때문이 아니다”라면서 “바람을 피우는 사람의 심리적 패턴은 매우 뚜렷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클라포우 박사에 따르면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은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갈등 해결을 무서워한다는 것입니다.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은 연인과의 갈등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피하려고만 합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연인과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불륜을 통해 ‘현실 도피’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관계를 찾는 사람은 현실 회피, 관계 회피하는 불성실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부부의 신의조차 저버리는 죄는 분명히 죄값을 받아야할 죄라 말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욥 31:11

3. 저는 권위로 어려운 자를 짓밟지 않았습니다.

또한 욥은 어려운 자, 소자들의 삶에 대하여 탐욕으로나 혹은 악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욥 31:13

현대에서도 직원이 상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거나 혹은 직원에 대한 여러 착취적 행위가 보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남들을 짓밟고 싶어하는 권위적인 욕구에 의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을 평등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모욕적인 언행으로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욥은 스스로 변론하길 사람을 대할 때에 결코 권위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말하는 것입니다.

“16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17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18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19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 했다면 20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21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22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욥 31:16-22

욥은 긍휼의 마음과 자비의 마음으로 어려운 자들을 대했었음을 스스로 변론합니다. 욥은 율법적으로 불의하다고 말할 것이 없습니다.

 

제자도

욥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탐욕이 가득하고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주님의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 자신 안의 탐욕과 정욕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이것을 “자기부인”이라 말합니다.

 

자기부인의 삶이야 말로 주께서 제자들에게 요청하신 제자도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사도께서는 그리스도의 사람은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저는 나의 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 것에서 탐심의 종노릇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한번은 시험에 들 번한 일이 있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소중한사람들 힐링센터가 준공이 날 때쯤 이제 이 건물에 대한 명의를 신고해야 할 때가 왔었습니다. 당시 건물 지을 때에는 소중한 사람들 교회가 정식으로 시작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머니 이름으로 건물을 지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명의를 제대로 써야 하는데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명의를 어떻게 할까?”

제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내이름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순식간입니다.

“소중한사람들교회로 해야지요.”

미국 뉴져지에서 유학을 시작했을 때에 저를 도와 주시던 뉴져지연합감리교회 목사님은 스스로 자기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차가 없으니 어디를 가려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딜 가야할 것을 아시고는 선듯 본인 차를 타고 가라 하셨습니다. 제가 미국에 갔을 때에 목사님의 집에서 가장 좋은 방을 저에게 내 주셨습니다.

“목사님, 이 집은 내 집이 아니예요. 이 집은 아버지의 것이니 편안하게 생각하세요.”

무엇을 하시든 어떤 것이든 자기 것으로 생각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나** 목사님께서 은퇴하실 때에도 얼마나 깔끔하고 분명하게 후임 목사님께 교회를 인계하셨는지 모릅니다.

탐욕은 해안을 어둡게 합니다.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전 7:7

그러므로 탐심이 마음에 들어와 앉을 만한 작은 틈도 주지 마십시오.

 

성경에서 늘 의아하게 여기지던 것이 있었습니다.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 19:20-22

이는 가난한 자를 위한 절대 의인의 모습으로 생각하면 의아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탐욕을 내려 놓는 것을 말합니다. 내 것이라 여기는 것이 내 것이 아닐 때에 비로소 진정한 제자도가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탐심을 내려 놓으라는 말이 21세기 물질 만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한다면 먼저 이것 저것 소유하고 싶어하는 탐심을 내려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이 사로잡히기 쉬운 소유욕, 정욕은 무엇입니까?

 

2. 그리스도의 사람은 매일 십자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무덤입니다. 예수와 함께 하는 우리가 오히려 더 바라봐야할 것은 하늘입니다. 당신은 하늘을 더욱 소망하십니까?

 

 


욥 31:1-23

1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2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3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4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5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6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7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8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9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10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11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12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

13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14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15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16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17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18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19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 했다면

20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21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22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23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