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말라기 1:1-14 예배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 - 매일성경, 큐티 / 진정한 예배, 예배 회복

사랑합니다예수님 2024. 12. 16. 07:01

말 1:1-14

예배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그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예배를 경멸히 여기며 형식적으로 드리는 자들의 마음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의 태도, 삶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내면에 숨겨진 본질까지도 하나님은 모두 아십니다.

말라기의 배경은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말 1:1). 그들은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말라기서에서는 그들의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그들의 예배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것과도 같았는지 분명히 보여줍니다.

 

포로되었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사랑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두 나라가 망하는 시기는 달랐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이미 돌아올 기회를 충분히 주셨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내리는 날은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의 날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기회를 놓친 결과가 나타나는 날이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짓과 위선을 심판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사치와 교만에 빠진 자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벌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심판은 더욱 참혹했습니다. 그 피비린내가 2km 밖에서도 진동했다고 전해집니다. 남유다 왕 시드기야는 자녀들이 죽는 것을 본 후 두 눈이 뽑히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백성들은 쇠고리에 꿰어 끌려가고,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70년의 포로 생활은 극심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생명을 위협받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의 땅에서 아무런 보호도 보장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대로 70년 만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학개, 스가랴, 느혜미야와 에스라 선지자의 말씀과 지도를 통해 회개하며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주신 오늘의 말씀은, 겉으로는 하나님께 돌아왔고 예루살렘도 회복된 듯 보이지만 충분하지 않음을 알려줍니다.

 

말 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은 묻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이런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징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돌이켜 다시 회복되길 원하셨기에, 사랑의 채찍으로 그들을 다루셨습니다. 하지만 고통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살아갈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외치셨습니다. 멸망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다시 돌아온 삶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모세에게 말씀하신대로 저들을 이방 땅 먼 곳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예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이 사랑하는 증거를 설명하십니다.

 

말 1:2-3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에서와 야곱의 말씀은 그들의 민족적 기원과 하나님의 선택을 떠올리게 합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였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선택하시고 에서는 버리셨습니다. 에돔(에서의 후손)은 결국 황폐화되어 회복되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4절에서 에돔은 말합니다.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말 1:4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라”

 

에돔이 자신들의 나라를 다시 세우려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회복되었고,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재건하며 다시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말 1: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향력이 이스라엘 경계를 넘어 온 세상에 미칠 것을 예고합니다. 이는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복에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의 제사장적 사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열방에 드러날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합니다. 예레미야 애가에서도 예레미야는 절망 가운데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애 3:22 “주의 인자하심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나이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고통은 하나님의 징계였지만, 그들은 죽음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자비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이미 멸망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가 살아 숨 쉬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존 자체가 그분의 사랑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의 사랑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타락과 하나님의 분노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하나님의 소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 모습은 다시 멸망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주도하는 제사장들부터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었습니다.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그러나 제사장들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답하십니다.

 

말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제사장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지도하고, 바른 예배를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정한 제물을 받고도 이를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히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며, 형식적으로만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은 눈먼 희생제물, 저는 것, 병든 것이었습니다.

 

말 1:8 “너희가 눈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과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사람도 받지 않을 것을 영광의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제사장들의 이러한 행위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백성들 역시 하나님을 멸시하는 마음으로 부정한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이를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형식적인 예배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진심과 경외가 빠진 채 그저 외적인 형식에 그칠 때,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에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예배를 싫어하시며, 분노하십니다.

 

진정한 예배의 부재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형식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없었습니다.

 

말 1:9-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당시 예배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타락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겉으로는 예배를 드렸지만, 그 마음은 하나님을 젼혀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예배의 형식은 갖추지만, 마음가짐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한 청년부 예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당 2층 구석진 자리에 슬리퍼를 신고 온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예배 내내 여자친구와 장난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뒤에서 웹툰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찾아가 바른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경고했습니다. 저는 23살에 다시 주께 돌아와 그 때부터 신학을 시작했었습니다. 제게 예배는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하나님이 저를 다시 부르신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을 경멸하는 듯한 이런 태도를 저는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경외심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방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서 예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말 1: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본래 율법에 따르면 예배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예루살렘을 넘어, 모든 민족과 땅끝까지 하나님께 예배가 드려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듯,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는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한 사람을 통해 드려질 것입니다.

예배의 자세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예배를 드릴 때 좋은 예배 시설과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제가 태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경험했던 예배는 그러한 예배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태국은 기독교 복음화율이 2%도 안 되는 나라입니다. 그곳의 예배는 우리나라의 화려하고 큰 예배당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기타 하나와 오래된 OHP(오버헤드 프로젝터)로 찬양과 설교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예배는 뜨거운 눈물과 간절함으로 가득했습니다.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통곡하며 기도하는 모습은 제게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우리 목회자와 지도자들부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온전한 예배로 이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목회자들 안에서 먼저 불타오를 때, 그 열정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습니다.

 

예배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예배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그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온 땅에서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한 사람입니다. 그 예배자가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삶으로 나아갑시다. 준비된 마음과 간절한 사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온 땅에서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자인가요? 지금 당신의 예배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모습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기억하며, 오늘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 사랑에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깊이 묵상해 보세요.


말 1:1-14

1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6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14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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