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22:21-34
거룩한 분냄
거룩한 분냄
예전에 제가 청소년 사역을 하던 전도사 시절이었습니다(2005년즈음). 한 청소년 연합 집회에서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거룩한 분노"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 설교의 핵심은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였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비난과 모욕을 듣고 분연히 일어나 맞서 싸운 것처럼, 우리 청소년들도 세상의 조롱과 부조리함에 대해 거룩한 분노를 품고 일어나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분노가 사명이 될 것이라며 말씀하시던 장면이 제 뇌리에 새겨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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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당시 모습
그리고 부목사 시절, 제가 섬기던 교회가 교회갱신협의회(교갱협)에 소속되어 있어서 저도 교갱협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2012년즈음). 그 모임에서 강사로 모신 분이 이찬수 목사님이었습니다. 설교 중에 다시 거룩한 분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청소년이 아니라 목회자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였습니다.
"목사님들,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고 분노해야 합니다.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합니다."
설교를 듣고 나오면서 동기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일부 목사님들은 "교회를 갱신하려고 우리가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정작 이찬수 목사님은 본인 교회 사역 외에는 대외적인 일에 나서지 않지 않느냐?"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저 거룩한 분노 속에서 치열하게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이찬수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구나.’
우연히 접한 두 번의 설교였지만, 그것이 10년, 20년의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은 목사님의 깊은 속내가 다윗처럼 불타는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찬수 목사님은 대외 활동보다는 각 교회가 건강해지는 것이 곧 교회의 갱신이라고 강조하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직접 나아가 외치며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맡은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 곧 교회의 갱신이다."라고 믿고 묵묵히 자기 사역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길이 옳은 길일까요?
그 답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 부조리하고 죄악된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 마음속에 거룩한 분노가 있는지 깊이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의 제단에 대한 오해
오늘 본문은 요단 동편 지파들이 재단을 쌓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요단 동편 지파들과 서편 지파들 사이에 오해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오해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언제든지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서로 오해를 했더라도, 그들이 즉각 분노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분노가 불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열정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후가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우상 숭배와 타락이 우후죽순처럼 곳곳에서 일어나지만 정작 아무도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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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의 제단
솔로몬 이후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단과 벧엘에 다른 제단을 세웠지만 어떤 왕이 분노하며 이 제단을 없애려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안에 거룩한 분노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 제단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건재하게 됩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이 요단 동편 이야기부분은 34절에 해당할 정도로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오해로 인한 갈등이 오히려 이스라엘의 초심과 열정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에 서로 부딪힐 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분열된 이후 여로보암의 죄에 대해서 남유다의 어떤 왕도 하나 됨을 위해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이후 남 유다에는 20명의 왕이 등극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지 않습니까? 오히려 북이스라엘과 친하게 지내면서 결혼 협정을 맺고(4대 왕 여호사밧), 후손 왕들 속에서는 바알 우상 숭배까지 답습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5대, 6대, 7대 유대 왕들/ 12대, 14대, 15대 왕들). 결국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마음이 전혀 없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이 시대를 향해 거룩한 분노를 품고 있는가?"
"나는 그 분노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하면, 저 자신이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무명의 목사이고, 세력도 없고, 실력도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이 시대를 회복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히스기야의 거룩한 분냄
말씀을 묵상하면서 히스기야 왕의 모습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바알의 우상숭배가 강하던 시기에 유대의 13대 왕이었던 히스기야는 유일하게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몸부림쳤던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거룩을 회복하는 방법은 특별했습니다. 그는 군대를 모아 앗수르와 싸운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을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대하 30:1).
히스기야가 왕이 되기 전(B.C. 715)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의 땅이되어 있었습니다. 10여년전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던 호세아 왕은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던 것을 거부하고 독립을 시도하며 애굽과 손을 잡으려 했었습니다. 결국 이 소식을 들은 앗수르 왕은 그를 반역자로 간주하고 감금했으며,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되고 말았습니다(B.C. 722).
사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도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고 심지어 종교도 앗수르식으로 바꿈으로 사실상 남유다도 앗수르의 속국이나 다름없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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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가 아무리 거룩한 분노가 내면에 불타오를지라도 무슨 힘으로 앗수를 대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히스기야는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앗수르의 우상의 영을 대적합니다.
“보발꾼들이 왕과 방백들의 편지를 받아 가지고 왕의 명령을 따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 전하니 일렀으되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시리라”(대하 30:6)
하나님께 우리 북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유다의 거룩한 자들이 돌아온다면 우리는 앗수르를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간절한 히스기야의 외침입니다.
거룩한 분냄을 실천하는 삶
도산 안창호 선생은 1878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나라의 미래를 깊이 고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16세에 "힘이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학문을 닦기 위해 상경하여 서재필이 주도한 독립협회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점점 쇠약해지고,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는 상황을 보며 그는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교육이 없이는 조국의 독립도 없다."
1902년, 그는 보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더 혹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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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안창호
미국에 도착한 그는 한인 노동자들이 극심한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현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한인들은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농장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변변한 숙소도 없이, 노동의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비참한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안창호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차별과 절망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제대로 해내겠다."
그는 농장에서 오렌지를 딸 때도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한 민족"임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의 오렌지를 따더라도 남들보다 더 정성껏 땄습니다.
동료 노동자들은 처음엔 의아해했습니다. "어차피 똑같이 돈을 받는데, 왜 그렇게까지 정성스럽게 따는가?"
그러나 안창호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일 하나하나가 한국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길이다."
그의 성실함과 책임감은 점차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통해 한인 노동자들의 이미지도 점점 바뀌었고, 한인 공동체는 조금씩 신뢰를 얻어갔습니다.
창호는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한인 사회를 이끌 지도자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903년 미국 최초의 한인 조직인 ‘공립협회’를 창설하여 한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교육을 장려했습니다. 그의 작은 실천이 공동체를 이끄는 힘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그의 나라를 향한 열정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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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 시대를 향한 거룩한 분노의 실천인 것입니다.
저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외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숙인들과 암 환우들을 위한 예배를 세우는 일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사역일 수도 있지만, 제게는 이 시대를 향한 거룩한 외침입니다.
거룩한 초심을 회복하라
후대에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오직 여호와의 거룩을 회복하기 위한 일이었다고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여러분의 삶에서 무엇을 위해 일생을 드려야 할지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부조리를 바라보며 거룩한 분냄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세상의 부조리와 죄악 앞에서 당신은 분연히 일어나 하나님의 뜻을 외친 적이 있습니까? 혹은 조용히라도 하나님 앞에서 분노하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2. 당신의 삶에서 예배 회복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히스기야가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듯이, 당신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수 22:21-34
21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22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23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24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25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26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27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8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29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 하리라
30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 한 회중의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31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
32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와 그들에게 보고하매
33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거주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34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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