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7:18-35
지금이 은혜 받을 때
회개
전혀 반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교한다 상상해 보십시오. 정말 난감한 순간입니다. 저도 청소년 집회에서 설교를 해 보면 마치 "할 테면 해봐라" 하는 태도를 보이기에 진땀이 납니다.

그래도 놀랍게도 집회가 끝나고 나면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듣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듣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오히려 직분이 높으신 분들 앞에서 말씀을 전할 때 반응이 더욱 어렵습니다. 신학교 교수님들도 신학생들과 교수님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받기보다는 "이 설교가 잘하나 못하나" 비판적으로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통해 위로를 전하기 위해 메시지를 준비하여 전할 때도 있지만 악하고 패역한 세대 가운데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말씀을 전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달은 사람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죄 가운데 거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종교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 설교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죄를 깨닫고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죄를 삶속에서 허용하는 것은 병든 자가 의사 앞에서 병 고칠 마음이 없다고 조롱하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죄를 방치하는 것은 병을 방치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결과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 1:18).

하나님의 진노는 막연한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임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죄를 이겨낸 새생명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의 세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는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눅 7:29-30).

세례 요한이 등장했을 때, 이스라엘에는 강력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백성과 세리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세례 요한이 행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저들은 회개를 바라지 않았습니까?
저들은 늘 남을 비판하며 정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남의 눈 속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기는 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니 최고의 선지자 세례 요한을 보내어 회개하도록 촉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 대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 7: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할 때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돌이키도록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북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내셨고, 남유다가 멸망하기 전에는 예레미야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누구나 최고의 선지자라 평가할 만한 엘리야, 엘리사, 예레미야 보다도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최고로 평가해 주셨으니 아무리 대단한 의를 자랑하는 외식하는 자일지라도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인정해야할 것입니다. 그만큼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고, 회개를 촉구하는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최고의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죄를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도록 하셨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도록 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사하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심판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인정하며 주님께서 죄의 올무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길 기도할 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새롭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백성과 세리들이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으며 회개했습니다. 하지만 회개한다고 해서 죄가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죄를 짓고, 반복되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누가 우리의 죄를 해결해 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께서 세리 레위를 부르신 후 세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았습니다. 세리 레위와 다른 세리들이 예수님께 나온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유명한 인물과 함께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를 사하실 권세가 있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 처음에서 보았듯이 세리들이 요한에게 나와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읽지 않았습니까?

세리들은 백성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죄책감을 느끼고 회개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눅 5:20)고 말한 것은 유대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일 이후 안식일에 손마른자를 고치시며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발언하심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합니다. 세리들도 예수님께서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믿고 나아간 것입니다. 억만 죄악 가운데 괴로워하는 세리들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말씀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세리들과의 식사는 잔치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 주님은 계속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은 죄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죄 사함 선포를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태도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눅 7:32).
이는 저들이 최고의 선지자 세례 요한에게서도 회개의 마음을 열지 않았고 심지어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은혜를 보여주셔도 하나님의 회개의 부르심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저들의 마음은 외식함으로 닫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이 회개하길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눅 7:30).
지금은 은혜 받을 때
하나님의 능력 주심으로 온 힘을 다해 모든 곳에서 전도하던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음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 때문에 안타까워 하는 말이라 생각이 듭니다. 은혜를 받을 때라는 말은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아 은혜를 발로 차면, 이제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지금 우리가 말씀을 듣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때이며, 구원의 기회입니다. 제가 암환우들에게 온 힘을 다해 말씀을 전하며 바울이 지금이 은혜 받을 때라는 말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건강할 때에는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교회 마당만 밟던 성도들이 이제 암에 걸리고 나서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인생이 낮아지고 나서야 마음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간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갚을 수 없는 은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누군가로부터 은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힘들 때 누군가 도와주었다면, 우리는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에게 갚지 못하더라도 가난한 자를 돕고, 어려운 자를 위해 받은 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꼭 받아야 하는 예수님의 은혜는 우리가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우리는 원래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그러나 주께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울은 지금 그 은혜를 받아야할 때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죄인 아닌 것처럼 회칠한 무덤 같은 자기 자신을 가리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부패하였는지를 드러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용서하시고, 주님께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이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고, 예수님께서 베푸신 완전한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때입니다.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고후 6:2) 회개하십시오. 주의 날이 가까이 왔지 않습니까?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회개하라는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하여도 울지 않는 자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당신은 예수님의 죄사함의 권세를 믿고 온전히 회개한 적이 있습니까? 만약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겠습니까?
눅 7:18-35
18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24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26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27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29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31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32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매일성경 #큐티 #누가복음 #회개 #구원 #예수님의은혜 #죄사함 #복음설교 #하나님의진노 #세례요한 #바리새인 #율법교사 #예수님의부르심 #믿음 #심판과은혜 #복음의능력 #영적회복 #기도 #성경말씀 #말씀묵상
'누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8:1-15 하나님 나라가 더 좋은가 - 매일성경,큐티 / 그리스도의 제자, 씨뿌리는 자의 비유 (2) | 2025.03.01 |
---|---|
누가복음 7:36-50 더 사랑하는 사람 -매일성경, 큐티 / 충성, 예수님 따르는 삶 (0) | 2025.02.28 |
누가복음 7:1-17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만나는 은혜 - 매일성경, 큐티 / 하나님의 응답, 섭리 (0) | 2025.02.26 |
눅 6:39-49 듣고 행하는 사람 - 매일성경, 큐티 / 제자의 삶, 말씀 순종 (2) | 2025.02.25 |
누가복음 6:27-38 용서의 자리, 축복의 자리 - 매일성경, 큐티 / 용서의 은혜, 진정한 변화 (0) | 2025.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