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는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한 이단 교회 사역자가 불법 촬영으로 적발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도학교'라는 이름으로 예언하는 법을 가르치며 교세를 확장해 온 곳이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은사란 무엇이며,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요?
성령의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부도덕한 모습을 보일 수 없습니다. 참된 은사는 성령의 열매와 함께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열매로 알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이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은사를 인위적 방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가르친 데 있습니다. 은사는 성령께서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고전 12:11) 주권적인 선물입니다. 물론 받은 은사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바울도 디모데에게 "네 속에 있는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라"(딤후 1:6)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정형화된 방법론으로 은사를 생산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주권을 부정하고, 은사를 인간의 기술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은사는 그 단어의 뜻 자체가 '카리스마(χάρισμα)', 즉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특별하기에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를 유익하게 하기 위해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은사를 추구해야 할까요? 참된 은사 추구는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를 더 섬기기 위해 기도하다 보니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 속에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은 필요한 은사를 주십니다.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바울은 모든 성도가 예언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고전 14:31). 이는 예언의 은사가 방언의 다음 단계라는 뜻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모든 성도가 사모해야 할 은사임을 의미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고전 14:4)라는 말씀처럼,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참된 예언이란 무엇입니까
예언은 무당이 하는 것처럼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말이 아닙니다. 존 칼빈은 예언을 "성경을 해석하는 은사"라 했고, 메튜 헨리도 "성경의 뜻을 풀어 교회를 권면하고 위로하며 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된 예언은 반드시 성경과 일치하며, 교회 공동체의 분별을 받아야 합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고전 14:29)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한때 한국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며 교회들을 다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 구절까지 인용하며 자신이 받았다는 계시를 이야기했지만, 그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겔 13:2-3이 경고한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거짓 예언입니다.
요한도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요일 4:1)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설교자만이 예언의 은사자는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말씀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을 세우고자 하는 권면과 위로의 말들을 기도 가운데 받게 됩니다. 존 파이퍼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예언은 성령의 조명 아래 성경을 적용하여 교회를 권면하고 위로하며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본다는 무당과 같은 예언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을 성령의 조명 가운데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오늘의 상황에 적절히 적용하여, 교회를 권면하고 위로하며 세우는 것이 참된 예언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은사를 구하십시오
바울은 은사의 가치가 그 은사가 교회를 얼마나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 14:12). 은사를 사모하되, 그 목적이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도 방언을 많이 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 이 말씀은 은사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그 은사가 교회를 세우는 데 쓰이느냐가 핵심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R.A. 토레이 목사님은 『말씀의 영을 받는 법』에서 성령의 은혜는 간절한 간구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역 안에서 지혜와 은혜, 기도의 능력, 그리고 사랑을 늘 간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기쁘게 주실 것입니다.
결론
은사를 사모할 때 더욱 주님께 헌신하고 충성하기 위해 구하십시오. 그 은사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임을 늘 기억한다면, 누구보다 더 건강한 영적 사람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은사가 아니라, 형제와 자매를 세우고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은사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주님이 더 주시길 원하십니다.
고전 14:1-19
1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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