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5:14-28
비슷한 것을 주의하라
2020-12-4 소중한 사람들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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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파 사건과 복음의 본질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가 집중 조명을 받게 되었고, 수사망을 피해 도주하던 유병언은 결국 2014년 7월 2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DNA 감식을 통해 본인임이 확인되었죠.

유병언이 생전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의 재산 은닉과 비리 의혹 등을 직접 조사해야 했지만, 그가 사망함으로써 진상 규명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당시 구원파는 상당한 사회적 관심을 받았으며, 신도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으나 상당한 규모로 추정되었습니다.
또한, 그 무렵 뉴스에서 1987년 8월에 발생한 오대양 집단사망 사건이 재조명되었습니다. 당시 교주 박순자를 포함해 33명이 집단으로 사망한 충격적인 사건이었죠.
다만, 오대양은 구원파적인 별개의 신흥종교 단체였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구원파가 주목받으면서, 과거 유사한 종교 집단의 비극적 사건들이 함께 회자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파는 어떤 특징을 가진 집단일까요?
구원파가 정통 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규정받는 핵심 이유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극단적 해석 때문입니다. 이들은 신자가 자신이 구원받은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모르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가르칩니다. 구원받은 날짜만 알면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아마샤 이야기에서도 제가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으로 서야 합니다. 이게 바로 정통 신앙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는 신앙입니다.
풀러신학교 김세윤 박사가 한 기자와의 대담에서 한국 교회 일부 성도들의 신앙 태도를 비판하며, 구원의 확신만 강조하고 이후 삶의 변화는 소홀히 하는 경향을 지적한 것을 되새기게 합니다.
성경도 동일하게 보며 예배도 똑같이 드리나 구원파적 구원관은 완전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은혜는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은혜로 보좌앞에 나아갈 담력을 얻었으니 하나님께 나아가 온전함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파적인 신앙을 갖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정통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회개하라는 말씀, 하나님 앞에 철저히 서자는 말씀을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결국, 외형은 똑같고, 십자가도 똑같지만, 심지어 정통 교회 안에서도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샤 왕의 타락과 겉과 속이 다른 신앙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겉으로 정직하고 괜찮아 보였던 아마샤가 사실은 온전한 마음이 아니었음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대하 25:14).
아마샤는 에돔 사람들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대신, 오히려 패배한 에돔의 신들을 가져와 그것들에게 경배했습니다.

에돔의 신 코스
에돔의 주신은 코스(Qos)라 불렸습니다. 흥미롭게도 일부 학자들은 에돔의 종교가 이스라엘 종교와 초기에 유사한 배경을 가졌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에돔 역시 이스라엘과 같은 조상(에서와 야곱)에서 나온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스는 여호와가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아마샤에게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역대하 25장 후반부를 보면, 아마샤는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도전장을 냅니다(대하 25:17). 그는 북이스라엘을 응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마샤가 생각하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동족 간의 전쟁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을 막으셨습니다(대하 25:7-10). 그래서 아마샤는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줄 다른 신, 전쟁의 신으로 여겨지는 에돔의 코스를 선택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정통 신앙을 떠나 이단이나 왜곡된 신앙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정통 신앙은 우리의 욕심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단이나 왜곡된 신앙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의 욕망을 정당화해주는 신을 제시합니다.
아마샤처럼 우리도 내가 원하는 것을 허락해주는 신을 찾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욕망을 따르게 하는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파적 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왜 망하려는가?
그래서 이 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어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대하 25:15).
선지자의 아마샤를 책망합니다.
"당신이 이긴 전쟁에서 패배한 에돔의 신들이 자기 백성도 구하지 못했는데, 왜 그 신들을 섬기십니까?"
그러나 아마샤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화를 내며 말합니다.
"선지자가 왕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대하 25:16 상).
"내가 언제 너를 왕의 고문으로 삼았느냐? 그만하지 않으면 죽을 줄 알아라"는 협박이었습니다.
결국 선지자는 이렇게 선언하고 떠납니다.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대하 25:16하).
저는 순결한 복음, 즉 내 주께서 부르신 그 험한 십자가를 붙들라는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자라고 늘 생각합니다.
아마샤는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신에게 의지하며 북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대하 25:17).
"너 나와라!"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싸움을 걸고 나선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요아스는 가시나무와 백향목의 비유를 들어 경고합니다. 레바논의 작은 가시나무가 큰 백향목에게 혼인을 청했다가 들짐승에게 밟혀 죽었다는 비유였습니다(대하 25:18).
요아스는 이어서 말합니다.
"네가 에돔을 쳤다 하여 마음이 교만하여졌으니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대하 25:19).
간단히 말해 "까불지 마라. 나섰다가 너 큰일난다. 네가 나오면 반드시 진다"는 경고였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듣지 않았습니다(대하 25:20).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또 하나님의 전 안에서 오벧에돔이 지키는 모든 금은과 그릇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또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대하 25:23-24).

아마샤는 사로잡혔고,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졌으며, 성전과 왕궁의 보물은 약탈당했고, 백성들은 볼모로 끌려갔습니다. 완전한 패배였습니다.
이단에 빠지는 이유와 한국 교회의 현실
이단(異端)이라는 말은 '다른 끝' 또는 '다른 시작'이라는 뜻으로, 정통 신앙에서 벗어난 다른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지 않으면, 육체의 정욕과 마찬가지로 이단에 미혹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
음행, 더러운 것, 우상숭배와 같은 것들은 우리도 명백히 죄라고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이단도 이 목록에 함께 나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단에 빠지는 것과 음행에 빠지는 것은 똑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왜 목회자가 성적 타락에 빠지는 일이 벌어집니까? 마음에 음란함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음란함을 조금이라도 허용하면, 아직 겉으로 크게 문제가 드러나지 않아도 이미 문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하신 것처럼, 마음 안에서 이미 죄가 시작된 것입니다. 마음에 생긴 때부터 자리 잡지 못하도록 회개했으면 더 이상 죄는 사로잡지 못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소해 보이는 것들입니다. 특별한 한 여성도와 커피 한 잔, 함께 드라이브, 친밀한 대화 정도는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순간 부터는 경계선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여성도와 문제가 생겼다고 신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단에 미혹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이단에 미혹되는 자는 진리보다 불의를 좋아하기 때문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왜곡된 복음에 빠집니까? 그것이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자리 잡은 온갖 불의한 욕구들을 지지하는 편한 길을 제시하는 가르침에 끌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11-12).
미혹의 역사는 마지막 때에 더욱 강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거짓된 마음, 온전하지 않은 마음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심판적 작업이 될 것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지 않은 자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마샤를 버리셨다.
하나님을 버린 아마샤를 하나님도 버리셨습니다
"이스라엘 왕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 간 생존하였더라"(대하 25:25).
아마샤는 자기를 이긴 요아스보다 15년이나 더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15년 동안 아마샤는 과연 회개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처참한 노년을 보냅니다.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의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대하 25:27-28).
여호와를 버린 때부터 그는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15년이나 더 살았으니, 그는 도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라기스에서 숨어 지내던 그를 반역자들이 쫓아가 죽였습니다.
이제 앞으로 한국에서도 동성연애를 지지하는 목사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했다"며 음흉하게 말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죄의 역사가 멸망을 일으키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죄가 욕망을 삼키며 커져 가는 것입니다.

동성연애를 지지하는 목사가 좋아하는 말씀은 다윗이 요나단을 사랑했다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괜찮다"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그 말을 듣고 그 정욕을 따라 설면, 바울이 로마서에서 경고한 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롬 1:24),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롬 1:26),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그 버림받은 마음 가운데 살다 죽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때에 대한 경고
하나님이 막으시면, 막힌 대로 두어야 합니다. 안 된다고 하시면 안 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억지로 이리저리 피해 어떻게든 해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치지 말라 하시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동성애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마 24:4-5).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1-1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3-24).
마지막 때, 우리가 붙들어야할 신앙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 24:44-46).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과 함께 오늘 이 시간을 기뻐하며, 하루하루 주님의 백성을 섬기고 세워 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에 '아니오'라고 답하실 때, 그분을 버리고 당신이 원하는 응답을 줄 다른 신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당신이 지금 하나님의 뜻이라 알면서도 회피하고 있는 그 한 가지 순종은 무엇이며, 오늘 그 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첫 발걸음을 내디딜 것입니까?
대하 25:14-28
14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15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16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17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오라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18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9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20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21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와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22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23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24또 하나님의 전 안에서 오벧에돔이 지키는 모든 금은과 그릇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또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25이스라엘 왕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 간 생존하였더라
26아마샤의 이 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7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8그의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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