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대하

역대하 24:17-27 우리는 언제나 무너질 수 있다- 매일성경, 큐티/ 성화, 영적 각성

사랑합니다예수님 2025. 10. 13. 09:19

대하 24:17-27

우리는 언제나 무너질 수 있다

 

죄의 본성과 존 오웬의 죄죽이기

죄는 언제든 다시 우리를 집어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존 오웬의 "죄 죽이기"라는 책의 원제목은 The Mortification of Sin입니다.

The Termination of Sin이 아닙니다. 터미네이터라는 영화 아시지요? 터미네이트(terminate)는 '단번에 완전히 없애버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티피케이션(mortification)은 '계속해서 죽여나가다', '죽이는 과정을 지속하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죄 죽이기'라는 말은 마치 죄를 우리가 한 번에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죄의 본성은 우리 안에 깊이 뿌리박힌 타락한 본성입니다.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음란한 마음—이것들은 어떤 훈련이나 수양으로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이 어떤 상황과 어느 시점에 증폭되어 욕설, 폭력, 도둑질, 거짓말, 위증, 성폭력, 혹은 변태적인 행위로 분출되어 실제 죄의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성화라는 것이 있는 것 아닌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성화는 단번에 우리를 완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는 평생에 걸친 과정입니다.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본성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길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완전함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틀 간격으로, 혹은 한 달 간격으로 주님께 나아가 내 본성을 억제하겠다고 다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자아를 부인하고 죽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죄의 본성을 경계하며 눌러 놓고, 마치 날카로운 칼을 조심스럽게 다루듯 내 본성을 다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눌렀던 죄악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듯 우리를 집어삼키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요아스가 바로 그렇습니다. 자신 안에 억눌렸던 죄가 폭발하듯 튀어 오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정말 괜찮은 왕을 만난 것은 아닐까?" 기대했지만, 그 결말의 처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억눌린 죄의 폭발: 요아스 왕의 예시

오늘 본문을 보면 유다의 억눌렸던 죄가 어떻게 다시 분출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지도자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대하 24:17).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던 시기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지도자들이 감히 나서지 못하고 억눌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들이 요아스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나아옵니다. 사실 요아스는 자기 세력이 없는 왕이었습니다. 요아스의 친인척이 되어줄 다윗 가문의 사람들은 아달랴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여호야다뿐이었습니다. 사탄은 이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여호야다가 죽은 뒤, 요아스의 마음속에 의구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과연 레위 지파 사람들을 비롯하여 신앙적으로 보수적인 이들이 나의 말을 들을 것인가?' 사실 그들이 말을 들을지 안 들을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항상 우리의 부정적인 마음,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더 잘 자라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제 유다의 지도자들, 그 힘 있는 자들이 자기에게 충성을 맹세해 주니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요청은 우상숭배와 관련된 일들이었습니다. 건설을 요구하는 것은 산당이었고, 추진하려는 일마다 우상 숭배자들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라의 죄의 고삐가 풀려나왔습니다.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대하 24:18).

 

자신을 왕위에 앉게 해 주었던 여호야다의 보호가 사라지자, 억눌렸던 죄가 곧바로 봉인 해제되듯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죄에 빠지는 이유

왕이 직접 "아세라와 바알을 섬기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상황과 분위기만 조성되면 자연스럽게 우상숭배가 퍼져나갑니다. 아무리 지난 시간 동안 종교 개혁이 이뤄졌다 하여도 백성들 안의 죄의 본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집에 있는 탐욕의 흔적들을 버리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탐욕을 쫓던 흔적들—남자의 경우에는 양주 진열장에 가득한 술들, 여자의 경우에는 고가의 명품 가방이나 그릇들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다면—아무리 우리가 암이라는 큰 훈련을 통해 본성을 제거한 듯 보여도, 다시 이 세상의 영,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에 따라 사치와 쾌락에 미혹되고 말 것입니다.

아세라와 바알 숭배는 아주 위험했습니다. 아세라는 가나안의 다산의 여신이었고, 바알은 풍요와 생산력의 신이었습니다. 이들을 섬기는 제의에는 신전 창녀(temple prostitute)들과의 성행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예레미야 시대에는 여호와의 성전 안에 남창(male cult prostitute)들의 방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왕하 23:7).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남창의 집을 헐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그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음란한 제의 장소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아스가 유다 방백들의 지지를 얻으며 산당마다 아세라 목상이 세워지고, 그 주변에서 다시 음행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이 문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빼앗았습니다.

여호와 신앙은 거룩함과 절제를 요구했지만, 바알 숭배는 방종과 쾌락을 허용했습니다. 억눌렸던 죄의 본성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유혹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유다의 지도자들이 요아스에게 제안한 것은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거룩함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정욕을 따라 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보통 모태신앙의 사람들은 이런 봉인 해제가 대학에 갈 때 일어납니다. 잘 믿는 것처럼 보이던 자녀가 먼 곳으로 가게 되면서 봉인이 해제되어 더 이상 신앙을 붙들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사실 솔직히 고백하면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학창시절 늘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숨어서 제 죄의 본성을 즐겼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몰래 하던 제 죄의 모습은 심각한 정도라고 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그 묶인 사슬이 풀리면 저를 집어삼킬 수 있는 괴물들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가며 성인이 되면서, 제 안의 죄의 본성들은 기회를 노리다가 저를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죽어가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주일에는 참 좋은 교회 성도, 청년부의 리더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느 날에는 주일에 교회를 가기 싫다는 생각까지 이르렀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내 자신을 볼 때 너무나 시간이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 많은 거야? 왜 주일에 아르바이트를 하면 안 된다는 거야? 나는 돈이 필요해. 그렇다고 가난한 아버지가 내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도 아니잖아.'

 

거룩한 결박

거룩한 결박이 해제되면 우리 안의 죄의 본성이 금세 우리를 집어삼킵니다. 마치 여호야다의 보호가 사라지자 요아스가 무너진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환우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예배 시간들은 바로 거룩한 결박이 됩니다. 매일 두 번씩 예배를 드리고, 아침에는 성경 읽기, 저녁에는 중보기도를 하며 영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탄탄하게 결계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집으로 돌아간 뒤입니다.

그러므로 죄와의 싸움을 스스로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이것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스스로 새벽을 열어야 하고, 스스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 점검을 해나가야만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첫째,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살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는 절박한 경고를 스스로에게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암에 걸린 분들이 절대로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이유는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일반인보다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롬 6:23)고 경고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 탐욕에 젖어 들어가고 있는 것을 감지하는 예민함이 필요합니다.

제가 뉴저지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 부분을 저에게 훈련시키셨습니다. 너무나 영적으로 편안해진 시기였습니다. 제가 기도를 안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말씀을 보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스스로 부패해 가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요한일서에 나온 것처럼 겉으로는 죄가 없는 듯 보여도 내 안에 죄가 가득 채워지고 있음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그러므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죄의 본성의 위력입니다. 언제든 내 안에서 죄가 나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일 영적인 훈련을 강화해 가야 합니다.

 

베드로의 실수와 동역자의 중요성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아니겠습니까? 그 베드로도 죄에 넘어졌습니다. 갈라디아서를 보면,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갈 2:1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가 안디옥에서 한 행동을 책망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유대인들이 들어오자 그 자리를 피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다른 믿는 자들도 베드로와 같은 외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베드로에게는 바울과 같이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회개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직언할 사람이 없는 것이지요.

저처럼 옆에서 "먹지 마십시오, 나쁜 짓 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봅시다, 기도합시다"라고 일깨워 주는 사람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높아지거나 권세를 갖게 되면 듣지 않으려 합니다. 건강해지면 안 듣습니다. 생활이 좀 나아지면 안 듣습니다.

 

요아스 왕도 결국 자신에게 직언하는 스가랴를 죽이고 맙니다.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더라"(대하 24:20-21).

 

왕이 권력을 가지고 선지자를 죽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곧 스스로를 죽이는 일입니다.

 

"일 년 만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 죽인지라"(대하 24:23-25).

 

요아스처럼 우리가 선지자를 죽이는 것은 아니어도, 스스로 말씀을 거부합니다. "나는 저런 말씀 안 듣겠다"고 귀를 막고 양심을 마비시키면,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결국엔 멸망으로 끝나고 맙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날마다 십자가로 이기는 삶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날마다 십자가로 이기는 삶'입니다. 내가 이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직 주님 앞에 나아갈 때, 그분의 은혜를 구하고 의지할 때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한결같이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 앞에 서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나아가 거룩한 영적 전쟁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준비 없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서 실수하고, 저기서 넘어지고, 끝없는 영적 실패가 반복됩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내 죄를 주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밤마다 "주님, 오늘도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잠자리에 들고, 또 아침에는 "주님, 도와주십시오. 말씀과 은혜를 주십시오"라고 무릎 꿇고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이렇게 매일매일 주 안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여호야다가 사라진 후 요아스가 무너진 것처럼, 당신에게도 거룩한 결박이 사라지는 순간 드러날 죄의 본성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2. 당신의 일상에서 이 정도는 괜찮다며 타협하고 있는 죄의 영역은 무엇입니까? 오늘부터 그 죄를 날마다 십자가 앞에 가져가 주님의 은혜로 억누르기 위해, 당신은 어떤 영적 훈련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대하 24:17-27

17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19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20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1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22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23일 주년 말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24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25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26반역한 자들은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더라

27요아스의 아들들의 사적과 요아스가 중대한 경책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전을 보수한 사적은 다 열왕기 주석에 기록되니라 그의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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