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5:1-13
겉으로만 완전해 보이는 신앙의 위험
복음이 주는 용기와 경계
복음은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 멸망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살 길을 주셨다는 은혜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 은혜로 우리를 생명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 저를 살려주옵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비록 죄에 넘어질 때가 많지만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죄에 넘어지고 또 넘어질지라도,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간구하며,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해주시는 그 은혜를 힘입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살리는 은혜의 소식이며,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이 무한한 은혜가 죄를 마음대로 지어도 된다는 면죄부는 결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고 단호히 선언했습니다(롬 6:1-2). 죄는 그 자체로 죽음을 낳는 파괴적 힘이며(약 1:15),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합니다(히 9:27). 우리가 멸망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핑계가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하는 능력입니다(딤후 2:19).
분명한 것은 죄를 지어선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를 피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간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을 붙든 사람들의 삶이어야 합니다.
아마샤의 등장과 그의 평가
오늘은 아버지 요아스가 비참하게 죽은 이후,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즉위한 아마샤의 삶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마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대하 25:1-2).
아마샤는 정직한 자였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꼭 모든 마음을 100% 하나님께 드려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은 99%도, 98%도 아닌 100% 온전한 마음이어야 합니다.
온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반드시 모든 일에 결코 흠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죄에 빼았기지 않으리라는 결단이 100%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정직하지만, 마음은 닫혀 있는 사람
그러면 우리 주변에서 아마샤처럼 겉은 정직해 보이나 온전한 마음이 아닌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예의 바르고 정직하기에 잘못하면 정말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인줄 착각하기 만드는 아주 훌륭한 모습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정말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분명 평소에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에 잘 순종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일에 있어서 죄를 택하게 되니 이는 그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붙들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정치적, 신앙적으로 정직했던 아마샤
오늘 본문은 아마샤가 자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율법을 따라 행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마샤는 아버지를 죽인자들을 어떻게 하고 싶었겠습니까?

아마샤는 왕위가 안정화되자 아버지 요아스를 죽인 신하들을 처벌했습니다(대하 25:3).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는 그 신하들의 가족들은 죽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율법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께서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대하 25:4).
여기서 우리는 당시 일반적인 법과 하나님의 법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대사회, 특히 우리나라 조선왕조만 봐도 왕에 대한 반역죄, 즉 역모죄를 저지를 경우 삼족을 멸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삼족이라는 건 조부, 아버지, 자식까지, 그 한 사람의 죄로 최소한 세 세대가 모두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국에서는 구족을 멸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구족을 멸한다는 것은 고조부까지 올라가고, 그와 관련된 모든 친족이 멸절을 당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여도 족보 상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면 멀리 떨어진 친척마저도 죽임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엄청나게 잔인한 법과 비교해보면, 하나님의 율법은 정말로 사람을 살리는 법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각 사람의 죄는 각 사람에게만 물으라는 법입니다.
아마샤는 이런 말씀을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자신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했습니다. 이런 모습만 보면 신앙이 좋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 속 아마샤는 정말 온전한 신앙인처럼 보입니다.
온전한 마음에서의 순종이 아닐 때의 위험성
본문을 보면 아마샤는 선지자의 말에도 잘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실 그 순종이 자기에게 큰 손해가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외적으로는 순종합니다. 마치 이런 상황과 같습니다. 목사님이 권면하기를 “집사님, 그 사업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니 멈추십시오.” 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설이거나,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며 자신에게 막대한 손해가 되는 일도 멈출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마샤는 에돔을 치러 가기 위해 유다의 모든 장정, 즉 20세 이상의 싸울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전력이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이스라엘에서 은 100달란트, 오늘날 가치로 약 20억 원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10만 명의 용병을 고용합니다(대하 25:5-6).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제야 알려주십니다.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한 선지자를 통해 “왕이여, 이스라엘 용병과 함께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십니다. 용병들을 돌려보내고 왕이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 싸우십시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 겁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샤는 이미 돈을 지불해버렸기 때문에 고민합니다. "그럼 제가 준 100달란트는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께서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라고 답합니다(대하 25:9). 이 말은 확정된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중에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샤는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20억을 포기합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쯤에서 타협합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실제로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명령에 따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마샤가 온전히 마음을 하나님께 두지 않은 데 있습니다. 마음을 온전히 하여 순종한 것이 아니라면, 결국 치명적 상황 속에서 마음이 깨어지게 됩니다. 마치 거대한 담수를 받아야 하는 댐에 작은 균열도 생기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그 틈을 사용하여 거대한 담수, 즉 인생의 위기가 될 죄를 짓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온전하지 못한 순종의 결과
아마샤는 선지자의 예언대로 북 이스라엘의 도움 없이 에돔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소금 골짜기에 이르러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이고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대하 25:11-12).
그러나 아마샤는 큰 승리에도 불구하고 마음에서 하나님을 버립니다.
"여호와께 순종했더니 내게 이렇게 큰 손해가 임하게 되다니!"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였더니 아마샤는 은 100달란트를 손해 보았고, 심지어 이스라엘 부대는 욕을 하며 돌아가면서 유다의 성읍들을 사마리아에서 벧호론까지 약탈하고 파괴했습니다. 이때 죽은 사람이 3,000명입니다(대하 25:13).
100% 하나님 앞에 순종한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여 혹 손해를 보더라도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응어리로 남게 되면 마음이 돌아서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다 드려도 돈만큼은 내가 손해 볼 수 없다."
"다 드려도 내가 욕먹는 것만큼은 할 수 없다."
"뭐야! 제자 훈련도 받고 성경도 열심히 읽었는데 왜 사업이 이렇게 안 돼!"

그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할 부분이 바로 이런 마음에 감춰진 부분들입니다.
만일 아마샤가 다시 선대 왕들처럼 북이스라엘 왕과 연합하려 했다면 반드시 패망했을 것입니다. 아마샤의 선대 왕들이 북이스라엘과 연합했을 때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 전투에 나갔을 때 거의 죽을 뻔했고(왕상 22장, 대하 18장), 여호람은 아합의 딸 아달랴와 혼인 동맹을 맺어 온 집안이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대하 21-22장).
사실 에돔과의 전투는 아마샤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기게 하신 것이지, 유다가 이길 만한 힘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사마리아에서 벧호론에 사는 주민 3,000명이 죽고 약탈당한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였더니 이런 손해를 봤다는 것에 완전히 사로잡힙니다. 사로잡혔다는 말은 은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해졌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결국 아마샤는 큰 승리와 함께 멸망의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진정한 신앙의 자리
목사로서든 집사로서든 권사로서든, 우리는 얼마든지 겉으로는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 숨겨져 드러나지 않은 그 불평, 불만, 악함을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내 안의 이 분노를 보십시오. 내 안의 이 원망을 보십시오. 나를 변화시켜 주십시오."
이 고백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죽입니다. 죄의 무서움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원망하는 마음의 틈을 비집고 마귀가 들어오려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 당신의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2. 당신이 최근 하나님께 순종했던 일 중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순종하겠다는 마음보다 억울함, 아까움, 분함이 더 컸던 순간은 언제였으며, 그 마음을 지금 주님께 어떻게 내려놓으시겠습니까?
대하 25:1-13
1아마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2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3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4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5아마샤가 유다 사람들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 만한 자 삼십만 명을 얻고
6또 은 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 명을 고용하였더니
7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를 왕과 함께 가게 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8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적군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하니
9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까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하니라
10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온 군대를 나누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그 무리가 유다 사람에게 심히 노하여 분연히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11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소금 골짜기에 이르러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이고
12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
13아마샤가 자기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돌려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들을 약탈하고 사람 삼천 명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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