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0:20-21:1
하나님은 복주고 싶어하시는데
아버지 목회의 시작
제 나이 12살 즈음 아버지가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어린 제 눈에도 아버지의 믿음은 순수하고 저돌적이었습니다. 개척 당시부터 하나님께서 워낙 강하게 역사하심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옆으로 비껴 나가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는 정말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는 가정의 화목함과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만 부모님께서 보여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우리 가정과 교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풍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훈련이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의 목회에 중간중간 불순종이 들어옴으로써 하나님께서 손을 쓰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 집에는 왜 늘 고난만 주시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길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복을 받지 못할까요?
위기 속 순종과 하나님의 응답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납작 엎드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 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여호사밧은 선지자가 말한 방법이 무척이나 허망하게 느껴질 것임을 알았습니다. 모압, 암몬, 마온, 세일 산에 사는 이들이 연합하여 유다를 치러 왔는데, 특별한 전술 설명도 없이 대열을 갖추고 드고아 들로 나아가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다시 선포합니다.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대하 20:20).
인간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전략입니다. 숫자도 부족한데, 협곡이나 산속도 아니고 그냥 개활지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마치 죽으러 가라는 명령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명령은 그 다음입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대하 20:21).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전쟁터에서 노래 부르며 찬양하며 자기 위치를 알리라는 것입니다. 아무 방어 무기도 없는 이 찬양대가 제일 먼저 적의 화살을 맞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에 모두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순종할 수 있을까요?
찬양과 기도, 그리고 진정한 치유
암에 걸린 여러분께 저는 말합니다. 찬송하십시오. 힘차게 박수치며 찬송하십시오. 이것이 암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를 살리는 길입니다. 기도하십시오. 힘들고 지쳐서 침상에 누워 있지 말고 다른 환우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통독하십시오. 전도 훈련을 감당하십시오.
전화로 그곳 치유 프로그램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치유 프로그램 따로 없고요, 오셔서 예배 같이 드리시고, 여기서 환우들이 운동할 때 같이 운동하시면 됩니다."
저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하시는 모든 분이 그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그 말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이곳 소중한사람들 힐링센터에 오신 분들은 모두가 압니다. 이곳의 치유 프로그램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치유하시길 바라시면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암 치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환우들이 하나님께 영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느냐입니다. 치유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달린 일입니다.
이 말은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치유하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 그 길은 오직 예배밖에 없습니다.
요단 동편의 모든 족속이 유다를 공격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함으로 생긴 문제 때문입니다. 백성들 안에 은근히 우상숭배가 다시 꿈틀거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때에 그들의 우상숭배의 마음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 되심을 이 전쟁에서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이 전쟁의 열쇠입니다.
마찬가지로 암이라는 질병이 우리에게 온 이유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한국 교회의 우상인 탐심을 없앨 방법이 교회 안에 없기에, 이를 없애기 위해 소중한사람들 힐링센터를 준비하시고 이렇게 암환우들을 모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는 다녀도 얼마나 탐심을 쫓아 살았습니까? 왜 주일 성수도 못 했나요? 왜 자녀들을 이방인들과 결혼시켰나요? 왜 여러분의 자녀들이 신앙을 버렸나요? 우리는 무엇에 인생을 허비하였나요?
탐심입니다. 이 탐심이 죄를 낳았고 우리는 그 죄에 허덕이다 병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이 치유의 길이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듣고 함께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된다면, 저는 하나님이 반드시 치유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예배의 시간들을 통해 우리 안의 탐심을 제거하시고, 우리가 바라봐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각자의 교회로 나아가 교회 안에 가득 역사하는 탐욕의 영을 꾸짖을 것입니다.
"권사님, 제가 암에 걸려 보니 그런 사치스러운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더이다."
"집사님, 병들면 그런 자랑 아무 소용없어요."
저는 우리 환우들이 다시 교회로 나아가야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에 치유의 길이 있다 생각합니다.
승리, 찬송 속에 임한 하나님의 역사
찬양이 시작되는 그 순간입니다.

그때 일이 시작됩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대하 20:22).
잠깐! 이 복병은 누구인가요?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에게 복병을 두라고 하신 적이 없는데요? 이 숨겨진 복병이 답입니다. 이 복병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 답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암몬, 모압, 세일 산 주민, 즉 에돔에게도 똑같은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저 복병들이 누구지?"
그런데 연합 부대가 저 복병들에게 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암몬과 모압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길을 열어준 세일 산 주민들, 에돔 사람들이 반역했구나. 맞아. 에돔은 유다의 속국이잖아! 우리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저 복병에게 밀릴 수가 없지."
그래서 암몬과 모압이 연합하여 세일 산 주민을 칩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은 저 멀리서 찬송하며 대열을 갖추고 오고 있습니다. 이 복병이 작동하게 된 것은 찬송 소리 때문입니다. 만일 찬송하지 않았다면 그저 유다 족속이 오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 저 복병들도 자기들이 죽인 사람들이 자기 편인 줄 몰랐을 것입니다.
이것이 자중지란입니다.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 죽였더라"(대하 20:23).
그런데 암몬과 모압이 생각해 보니 세일 산 주민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 죽이고 보니 암몬 족인 것 같습니다. 암몬이 볼 때는 모압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저들끼리 싸웁니다.
우리는 이걸 '헐'이라고 하더라고요.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대하 20:24).
유다 사람들이 찬송하며 들 망대에 이르렀더니 까마귀가 깍깍 댑니다. 뭐야? 다 죽었습니다.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대하 20:25).
탈취한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사흘 동안이나 거두어야 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대하 20:27).
한국 교회에 드리운 이 강력한 우상, 탐심을 어떻게 없앨지 깨달았습니다.
우리 소중한사람들에서 앞으로 더 많은 암환우를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반드시 이 세상의 탐심, 우상숭배를 버리고, 반드시 죄악의 근원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섬으로써 이제 한국 교회는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합시다.
그러므로 기도합시다.
그러므로 말씀을 봅시다.
100% 순종하지 않으면 문제의 뿌리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100% 순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왕들의 문제점 중 하나인데요. 아무리 잘했어도 꼭 이 말이 붙습니다.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대하 20:32-33).

이스라엘 여행당시 어떤 산당의 제단 앞에서
저는 이 산당이 도대체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산당은 원래 가나안 족속이 신들을 섬기던 높은 곳의 제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 후, 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산당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이후, 하나님은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하셨습니다(신 12:13-14).
문제는 산당이 이미 백성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는 것입니다. 산당은 단순한 예배 장소를 넘어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고, 사람들의 일상과 분리할 수 없는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거기서는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가나안의 풍습이 섞여 들어오기도 하니 애매한 곳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길 때에는 산당이 큰 문제가 없지만 우상숭배가 들어오면 우상숭배의 본산지가 되어 버립니다.
아버지 아사는 자신의 어머니가 우상을 숭배하자 폐위시킬 정도로 강력한 왕이었지만 산당은 제거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여호사밧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왜일까요?
산당은 백성들의 '편리함'과 '익숙함'을 대변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조상 대대로 해오던 익숙함, 이웃과 함께 모이던 공동체의 장소. 이것들을 제거하는 것은 백성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정치적 부담이었던 것입니다.
산당은 오늘날로 말하면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들어온 수없이 많은 죄의 잔뿌리를 말합니다.
이 잔뿌리가 작동하는 것이 탐심입니다. 내 아이를 더 잘 교육시키고 싶기에, 내 자동차가 이왕이면 승차감이 좋은 것이길 바라기에, 내 옷이 조금 더 사람들이 보고 놀랄 수 있는 옷이길 바라기에…
"좋은 차 탔다고 지옥 가는 것 아니잖아요? 산당 곁을 지나갔다고 우상숭배는 아니잖아요?"
그렇습니다. 산당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산당이 상징하는 '하나님께 100% 드리지 않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 아닌 '내 방식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 하나님보다 '내 편리함'을 우선시하는 것, 세상과 타협하며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것이 바로 산당입니다.
100% 하나님 앞에 드리지 않음으로 유다에 끊임없이 우상의 문제가 자라나고 맙니다. 지금은 약을 쳐서 올라오지 않았지만, 이제 여호사밧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람 때가 되자 우상숭배의 나라로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그들의 욕망에 불을 지르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은 완전해야 합니다. 99%의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남겨둔 1%의 산당이 결국 다음 세대를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이제 진정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암이라는 질병 앞에서 하나님께 나아왔지만, 우리 삶 속에 남아 있는 '산당'은 없습니까? 하나님보다 여전히 더 중요한 것, 포기하지 못하는 것,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타협하는 것들 말입니다.
진정한 치유는 이 산당까지 철거할 때 옵니다.
꾀보다 순종이 먼저입니다.
여호사밧의 머리가 돌아갑니다. 솔로몬 때에 쓰던 에시온게벨 항구를 통해 무역을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입니다. 지난번 모압, 암몬, 마온, 에돔의 연합 부대와의 전쟁에서 에돔이 힘이 약해졌으므로 이제 이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그런데 혼자는 어렵습니다. 혼자는 어려우니 북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함께 일을 꾸밉니다.
그런데 아하시야가 어떤 왕인가요?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대하 20:35).
이전에 선견자 예후가 여호사밧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아합과의 친밀 정책을 기뻐하지 않으시기에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전투에 나갔다가 죽을 뻔했던 그 일을 통해 정말 초심을 다시 회복한 듯했는데, 다시 탐심 앞에서 무너집니다.
"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니"(대하 20:36).
그런데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대하 20:37)이 예언합니다.

여호사밧과 아하시야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대하 20:37).
결국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 즉 먼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100% 순종하자
인생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납작 엎드리는 것,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완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언제나 순종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항상 순종할 때에는 100%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사밧을 보십시오. 탐심이 올라오니 또 변해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꾀를 따르다가 일을 이루지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뜻에서 벗어나 자기 욕심을 따르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 주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100% 순종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지금 어떤 불가능한 상황 앞에서, 하나님께서 찬송하며 나아가라고 하신다면 순종할 수 있습니까?
2. 당신의 삶에서 산당처럼 제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는 타협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고백하시겠습니까?
대하 20:20-21:1
20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24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들뿐이요 한 사람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25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26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27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28그들이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
29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30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31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32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33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34이 외에 여호사밧의 시종 행적은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글에 다 기록되었고 그 글은 이스라엘 열왕기에 올랐더라
35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였더라
36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니
37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
1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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