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2:5-18
종으로 사는 기쁨
내려놓음의 진정한 의미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겠다며 오신 어떤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입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여기 죽으러 왔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그분이 처음 저와 나눈 대화에서, 모 사역지에서 물을 사 마시라는 말이 크게 시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이분은 매우 조심스러운 분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사실 이 땅에 없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그분이 말한 것처럼 자기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어디든 쉽지 않습니다. 어떤 공동체든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전략적으로 아주 간단한 방법 하나만 사용하면 됩니다. 바로 서로를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면, 그때 알아서 조리해 버리면 결국 하나님과도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원망과 시비 없이 살 수 있을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4).
이 말씀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삶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헌신적으로 섬기려 해도 종종 원망하게 되고, 최선을 다하려 해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시비를 걸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를 도와주는 말씀이 그 앞절에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느냐고 불평하기보다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나는 그 뜻을 따라 기꺼이 돕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 것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렇게 전해줍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여기서 '종'으로 번역된 헬라어 '둘로스(δοῦλος)'는 단순한 고용인이 아닌, 주인에게 완전히 소속된 종을 의미합니다. 이는 자신의 권리나 의지를 포기하고 주인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지만, 자발적으로 이 '둘로스'의 위치를 취하셨습니다.
종됨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
노회에 참석하며 복음의 본질을 다시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노회는 여러 회무를 처리하는 행정적 자리이지만 그 한가운데, 목사 안수식이 있습니다.
그날, 이제 막 목사가 되려는 분들을 향한 설교자의 말씀이 저에게도 깊이 새겨졌습니다.
"종들이 되십시오. 종놈들이 되십시오."
저는 2007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처음 안수를 받을 때 이상하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버지가 목사이셨기에 목회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저는 목사직의 본질을 얼마나 쉽게 잊고 살아왔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더 낮은 자리, 곧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둘로스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위로 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려가라 말씀합니다. 섬기고 감당하라 말씀합니다.
종의 기쁨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에 자기 생각이 없는 종이 어떻게 기쁨을 가질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자유의 기쁨을 갖게 합니다.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으니 너희 육신의 연약함으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자신의 욕망, 권리 주장, 자기 의지의 관철에서 오는 끝없는 갈등과 불만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처한 모든 삶의 자리를 감사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의 종이었습니다. 주인이 감옥에 가라 하면 가는 것이 종입니다. 그러나 그 주인은 가장 선하신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이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전제'로 비유합니다. 전제는 제사를 드릴 때 포도주를 붓는 마지막 의식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돋보이길 바라고 자신의 뜻만 관철되길 바라지만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는 전제로 드려져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에 더하여 끝까지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통해 만일 성도들의 믿음이 더 커지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뤄질 수 있다면… 이것이 바울의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너희를 그리스도께 중매한 자"(고후 11:2)로 말하였고, 영적 자녀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빌 4:1)라는 말에서도 바울의 기쁨이 성도의 성장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론: 기쁨의 충만함
기독교인으로써 교회에서 여러가지 갈등과 시험듬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갈등들은 초대교회에서도 있었던 일입니다(빌 4:2). 갈등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누가 옳은지를 따져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자신이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얼마든지 종처럼 낮아질 수 있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인생의 기쁨이고 복이라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의 뜻이 이해되지 않을 지라도 여전히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2. 종의 마음으로 당신이 섬겨야 하는 사람이나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은 무엇입니까?
빌 2:5-18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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