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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1:1-54 나는 근원을 어디 두고 있는가 - 매일성경, 큐티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환난 중의 소망

사랑합니다예수님 2025. 6. 2. 09:17

대상 1:1-54

나는 근원을 어디 두고 있는가

 

역사를 보는 이유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단순히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민족주의로 향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 공부는 민족이 지닌 고유한 특성과 함께, 그 안에 내재된 한계와 약점을 직시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성찰은 우리가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보여주는 길잡이가 됩니다.

이제까지 역사에 대한 서론적인 내용을 나누었습니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우리가 역대기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역대기를 기록한 저자의 의도도 바로 이런 지점에 있습니다. 학자들은 역대기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쓰였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써야 했을까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깊은 절망과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대기의 저자를 통해 그들에게 과거의 실패를 직시하되, 동시에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이 단순히 바벨론보다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었음을, 그리고 이제는 과거를 반성하고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새롭게 시작해야 함을 보여주는 미래지향적인 성경이 바로 역대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대인이 아닌 한국 사람입니다. 유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말씀이 과연 우리와도 연결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연결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연결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요 1:12). 그 믿음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혈통이나 민족을 넘어서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역대기는 단지 한 민족의 과거를 기록한 역사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실패했을 때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신앙의 교과서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과 사명을 다시 세워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신앙의 뿌리가 어디에 있었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뿌리를 어디에 두는가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근본을 아담에게서 시작합니다.

 

"아담, 셋, 에노스,"(대상 1:1)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우리의 기원을 유인원에서부터 두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익히 배워온 대로 자연의 철저한 법칙인 약육강식에 따라 결국 인간종이 이 지구를 정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철저히 반기독교적이고 반종교적이기 때문에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지금까지 잘 이겨온 방식을 따라 앞으로도 인간종은 불안을 이기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어찌 보면 새로운 무신론적 종교관을 제안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 역사의 뿌리를 유인원에서부터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라 상황을 극복해낸 사피엔스 종이 앞으로의 모든 문제를 극복해낼 미래를 바라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근본 뿌리는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흔히 단군신화와 홍익인간 정신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신화로 간주됩니다. 여러분은 곰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창세기의 기록을 통해 모든 민족이 노아의 후손임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의 자손들이 온 땅에 흩어져 각각의 민족을 이루었다고 말합니다(창 10장).

이들 가운데 셈의 후손을 통해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계보가 이어지며, 하나님의 구속사의 중심 흐름이 그 줄기 속에서 전개됩니다. 우리 한민족이 정확히 어느 계보에 속하는지는 성경이 명시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도 노아의 후손으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민족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주신 언약은 모든 인류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알고 있었지만, 바벨탑 사건 이후 언어가 혼잡해지고 민족들이 흩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잊고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선조들 그룹도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진 채 살아왔을 것입니다.

 

계보 속에 담긴 하나님의 약속

믿음의 사람들은 민족적 사가들이 전하는 출발점이 아니라, 역대기가 제시하는 계보를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와 조선을 건국했다는 단군 신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에는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신들의 이야기가, 로마에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로마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일본에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이 일본을 다스리게 되었다는 신화가 전해집니다. 이집트에는 파라오가 태양신 라의 아들이라는 믿음이, 바벨론에는 마르둑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민족 신화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을 신의 특별한 후손이나 선택받은 민족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자연스럽게 자민족 우월주의로 이어지고,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제국주의적 사고를 정당화합니다. 실제로 바벨론 왕은 자신을 마르둑 신의 아들로 여기며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복속시키는 것을 신의 뜻을 행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가 보여주는 계보에 따르면, 아담으로부터 모든 민족과 나라가 나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엄청난 제국이 되었든,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패망시켰든, 에돔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든, 이 나라들의 백성 모두가 아주 특별한 능력과 힘을 가진 민족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는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으로부터 기인하였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가진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는 약속의 백성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최초의 약속에서부터 시작하여,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언약의 중심 흐름이 있습니다. 많은 민족들이 이 약속에서 멀어져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중심에 두신 약속의 백성을 통해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뜻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언약의 계보가 단순한 혈통의 계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의 후손, 야곱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혈통 중심의 계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믿음의 계보입니다.

이를 명확히 보여주는 예들이 성경 곳곳에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과 이삭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지만, 약속은 믿음으로 태어난 이삭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선택은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이는 혈통이나 장자권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붙드는 믿음이 더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아브라함의 후손은 육신을 따라 난 자가 아니요 약속을 따라 난 자니라"(갈 4:28)고 명확히 선언합니다. 즉,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이 믿음의 계보에 접붙여진 것입니다. 혈통을 초월하여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백성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적 세계관에서 보면, 어떤 민족도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입니다.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것도 그들이 더 나아서가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설명과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을 목도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 이방인들에게도 임하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건설하여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행 15:14-17).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놀랍게도 이방인들이 오히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우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이방인들이 단순히 구원받는 대상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나라 회복의 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바로 여기서 역대기의 이스라엘의 계보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에서가 오히려 장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으니 이삭의 자손은 에서와 이스라엘이더라”(대상 1:34).

 

에서도 또한 이삭의 육적 자녀였지만, 왜 역대기 저자는 야곱(이스라엘)이어야 했을까요? 바로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 기준이 혈통이나 출생 순서가 아니라 약속을 믿는 믿음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자녀가 되고, 오히려 혈통적 이스라엘이 무너뜨린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는 놀라운 역할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신비이며, 믿음이 혈통보다 우선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인 것입니다.

 

민족을 넘은 믿음의 계보와 우리의 소망

이러한 성경적 이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기독교 역사가 욕을 먹는 시대 중 하나가 제국주의와 기독교 선교 역사입니다. 기독교 선교가 제국주의와 오버랩되어 설명되면서 굉장히 잔인한 종교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의 기독교 선교는 제국주의적 지배의 문화적 도구로 작용했으며, 동양을 '문명화'한다는 명목 하에 서구의 우월성을 강요하는 수단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역대기를 통해서라도 이해하게 되는 타민족에 대한 관점은 전혀 다릅니다. 다른 민족들은 열등한 민족들이 아니라 믿음 안에 들어와야 할 우리의 형제와 자매라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을 중요시 여깁니다. 자기의 민족주의적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브라함이 중요한 이유를 전혀 다르게 설명합니다. 그가 아무런 잘한 것도 없으면서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은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표상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도 전에 의롭다 여김을 받았으므로 할례와 같은 율법의 준수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표징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혈통이나 민족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어떤 민족 출신이든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민족을 정복하거나 지배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야 할 형제자매로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제시하는 참된 선교의 정신이며, 제국주의적 왜곡에서 벗어난 복음의 본질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약속을 붙들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우리의 삶에 대하여 새로운 눈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1-4).

 

이 말씀이 보여주는 소망이 허황된 것이 아닌 이유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단순히 죄 사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줍니다.

아담이 우리 인류의 시작점이라고 믿는 자는 모든 사건과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역대기 1독자인 유대인들이 조상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지라도,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일어난 일임을 믿고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모든 현실의 고난들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암과 같은 질병을 만났을 때, 세상적 관점에서는 이를 단지 의학이 언젠가 정복해야 할 과제로만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치료법이 없다면 절망하거나, 혹은 막연히 미래의 의학 발전에만 희망을 걸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에게는 다른 소망이 있습니다. 질병의 치유 여부를 떠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룬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대기의 아담으로부터 말미암는 족보가 우리의 근원임을 믿는 자들의 세계관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 거한다는 확신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환난 가운데 이길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의 존재와 정체성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아왔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의 후손이자,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녀라는 것을 믿습니까?

 

2. 당신은 나와 다른 민족, 다른 배경,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우월감이나 열등감, 편견이나 차별의식은 없습니까? 아니면 모두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인 형제자매로 바라봅니까?


대상 1:1-54

1 아담, 셋, 에노스,

2 게난, 마할랄렐, 야렛,

3 에녹, 므두셀라, 라멕,

4 노아, 셈, 함과 야벳은 조상들이라.

5 야벳의 자손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6 고멜의 자손은 아스그나스와 디밧과 도갈마요.

7 야완의 자손은 엘리사와 다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더라.

8 함의 자손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9 구스의 자손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자손은 스바와 드단이요.

10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세상에서 첫 영걸이며.

11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2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으니 블레셋 종족은 가슬루힘에게서 나왔으며.

13 가나안은 맏아들 시돈과 헷을 낳고

14 또 여부스 종족과 아모리 종족과 기르가스 종족과

15 히위 종족과 알가 종족과 신 종족과

16 아르왓 종족과 스말 종족과 하맛 종족을 낳았더라.

17 셈의 자손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과 우스와 훌과 게델과 메섹이라.

18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고

19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아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때에 땅이 나뉘었음이요 그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0 욕단이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1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2 에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3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욕단의 자손은 이상과 같으니라.

24 셈, 아르박삿, 셀라,

25 에벨, 벨렉, 르우,

26 스룩, 나홀, 데라,

27 아브람 곧 아브라함은 조상들이요.

28 아브라함의 자손은 이삭과 이스마엘이라.

29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니 그의 맏아들은 느바욧이요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30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31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라. 이들은 이스마엘의 자손들이라.

32 아브라함의 소실 그두라가 낳은 자손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요. 욕산의 자손은 스바와 드단이요.

33 미디안의 자손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이들은 모두 그두라의 자손들이다.

34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으니 이삭의 자손은 에서와 이스라엘이더라.

35 에서의 자손은 엘리바스와 르우엘과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요.

36 엘리바스의 자손은 데만과 오말과 스비와 가담과 그나스와 딤나와 아말렉이요.

37 르우엘의 자손은 나핫과 세라와 삼마와 맛사요.

38 세일의 자손은 로단과 소발과 시브온과 아나와 디손과 에셀과 디산이요.

39 로단의 자손은 호리와 호맘이요. 로단의 누이는 딤나요.

40 소발의 자손은 알랸과 마나핫과 에발과 스비와 오남이요. 시브온의 자손은 아야와 아나요.

41 아나의 자손은 디손이요. 디손의 자손은 하므란과 에스반과 이드란과 그란이요.

42 에셀의 자손은 빌한과 사아완과 야아간이요. 디산의 자손은 우스와 아란이더라.

43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린 왕은 이러하니라. 브올의 아들 벨라니 그의 도성 이름은 딘하바이며

44 벨라가 죽으매 보스라 사람 세라의 아들 요밥이 대신하여 왕이 되고

45 요밥이 죽으매 데만 종족의 땅의 사람 후삼이 대신하여 왕이 되고

46 후삼이 죽으매 브닷의 아들 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하닷은 모압 들에서 미디안을 친 자요. 그 도성 이름은 아윗이며

47 하닷이 죽으매 마스레가 사람 사믈라가 대신하여 왕이 되고

48 사믈라가 죽으매 강 가의 르호봇 사람 사울이 대신하여 왕이 되고

49 사울이 죽으매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대신하여 왕이 되고

50 바알하난이 죽으매 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그의 도성 이름은 바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므헤다벨이라. 메사합의 손녀요 마드렛의 딸이더라.

51 하닷이 죽으니라. 그리고 에돔의 족장은 이러하니 딤나 족장과 알랴 족장과 여뎃 족장과

52 오홀리바마 족장과 엘라 족장과 비논 족장과

53 그나스 족장과 데만 족장과 밉살 족장과

54 막디엘 족장과 이람 족장이라. 에돔의 족장이 이러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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