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2:19-3:6 모든 만남, 모든 상황이 다 하나님의 축복 - 매일성경, 큐티 / 순종의 축복, 믿음의 선택
에 2:19-3:6
모든 만남 모든 상황이 다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
우리는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도 있고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삶은 흘러갑니다. 하지만 저는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결정과 만남이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제 어머니의 삶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 어머니는 모든 만남을 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 일화들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채움터라는 곳에서 배식할 때에 있었던 이야기를 말씀드리며 오늘 말씀을 시작하려 합니다.
서울시 중구청에서 서울역 인근에서 노숙인을 위한 사역을 하던 단체들에 새로운 행정 지침이 내려졌습니다. 이제는 거리에서가 아니라 '채움터'라는 지정된 공간에서 배식을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각 단체는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그곳에서 음식을 배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소중한사람들'은 단순히 밥만 배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채움터에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건물 구조가 3층으로 되어 있었고, 예전처럼 거리에서 1,000여 명이 줄을 서서 함께 식사하던 방식이 아니라 배식 시간 사이에 사람들이 흩어져 와서 식사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예배가 어려웠습니다.
또 하나의 다른 문제는 노숙인들이 자신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서울시에서 주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몸이 두꺼비처럼 다부진 한 노숙인이 담배를 피우며 어머니에게 다가왔습니다. 그 노숙인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피우던 담배를 어머니 얼굴에 집어 던졌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손으로 담배를 막았고, 그 노숙인은 문 앞에 서 있던 우리 모자를 향해 주먹을 들었습니다.
노숙인은 왜 화가 났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명박이가 모든 버스에 CCTV를 달아서 우리 노숙인이 몇 명인지 다 아는데, 너희들 얼마를 받아먹고도 밥을 그렇게 맛없는 것만 줄 거야!”
이렇게 다짜고짜 주먹부터 올리는 노숙인에게 “어느 요일에 드셨나요? 그 요일은 저희가 하는 날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날 이후, 이제 배식 사역을 계속하고 싶지 않다는 강한 매너리즘을 느끼셨습니다. 모두가 해주는 이 배식 사역에 예배조차 드릴 수 없는데 계속할 이유를 찾기 어려우셨습니다.
기도하시던 중,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너와 같이 사랑으로 나를 대하는 이가 없다.”
그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일주일이 지나고, 우리가 배식을 맡은 날이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노숙인들에게 어머니와 저는 문 앞에서 인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그 노숙인이 성난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이것들이 그렇게 말해도 변한 것이 없어!”
저는 그의 몸을 막아 서서 폭력을 제지하려 했습니다. 그 순간, 옆에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는 90도로 정중히 인사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불편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노숙인은 또다시 이명박 대통령과 버스 CCTV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황당한 말을 어머니는 끝까지 정중하게 들어주셨습니다.
말을 다 쏟아낸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기 좀 줘...”
그러자 어머니는 천사 같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꼭 고기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월요일 점심에만 합니다. 저희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날 꼭 오세요. 고기를 준비해놓겠습니다.”
어머니가 삶속에서 얼마나 담대하게, 모든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는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작고 연약한 자들과의 만남조차 얼마나 귀히 여기셨는지 다 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제 삶에도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두꺼비 같은 노숙인 아저씨와의 만남의 일화를 통해 만남의 중요성과, 작아 보이는 것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어떤 결정에 대해 말씀에 순종하거나 안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어떤 사람을 말씀대로 선대하거나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순간들이 마침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권 문에 앉은 사람, 모르드개
모르드개는 왕의 대궐 앞에 앉아 있던 사람으로, 실질적인 공무를 맡은 관료였습니다.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에 2:19).
이 구절에서 ‘대궐 문에 앉았다’는 표현은 모르드개가 어떻게 하다 보니 대궐 앞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페르시아, 페르세폴리스의 입구 모습(그 거대함과 웅장함)
고대 페르시아에서 왕궁 문 앞에 앉은 자는 조정의 문서 행정, 재판 또는 청원을 듣는 일, 신하들과 함께 내부 정치에 관여하는 일 중에 하나를 맡은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는 모르드개가 나름 페르시아의 관료였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에 6:10).
여기서도 볼 수 있듯 모르드개의 직무는 ‘대궐 문에 앉은’이라는 표현으로 다시 언급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와스디 대신 에스더를 왕후로 세웠지만, 더 많은 여인들을 들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처럼 다른 처녀들을 모으는 큰 일을 벌인 것입니다.
19절은 이 큰 일이 진행되는 시점에, 모르드개가 이 일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행정 업무를 맡아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연히 모르드개가 내시 빅단과 데레스가 아하수에로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이 일을 에스더에게 알리게 됩니다. 그러나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조사를 통해 실증까지 내야 하는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즉 모르드개가 말을 전해 줘서 해결될 것이 아니라 이 일을 입증할 수 있도록 모르드개가 모든 증거까지도 다 준비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르드개의 큰 공로로 아하수에로는 암살의 위협에서 살아나게 되지만 이 사건은 왕의 일기에 기록만 될 뿐, 그냥 잊혀지듯 지나가 버립니다.
아각 사람 하만, 그리고 숨겨졌던 역사적 사실
그리고 이야기는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에 3:1).
유대 사람들이 이 1절을 보게 되면 두려움과 공포 속에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만의 출신 때문입니다.
여기 나오는 ‘아각’이라는 이름은 사무엘상 15장에서 등장하는 아말렉 왕의 이름입니다. 사울 왕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각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잡아들였습니다. 이때 사무엘이 직접 아각을 죽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때에 아말렉에 대하여 대대로 싸우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 17:16).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할 때, 아말렉이 뒤처진 자들을 쳤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네가 피곤할 때에 뒤에서 낙오된 자들을 쳤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네가 안식을 얻고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할 때에 너는 아말렉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라. 너는 그것을 잊지 말지니라”(신 25:17-19).

아말렉 전투에서의 모세의 기도, 그리고 아론과 훌
아말렉은 피곤에 지친 이스라엘의 낙오된 자들을 악랄하게 죽임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대대로 싸우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 아각 왕의 후손이 하만이며 그는 지금 아하수에로 왕에게 최고의 총애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순종하지 않은 사울, 순종했던 모르드개
그리고 모르드개의 출신을 우리가 에 2:5절에서 보았지만,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입니다.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에 2:5).
놀랍게도 모르드개의 조상 이름인 ‘기스’는 사울 왕의 아버지 이름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자신의 가문, 곧 선조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가문을 잇는 정체성과 경건한 계승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이름 짓는 전통의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났을 때,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짓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들이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그를 사가리아라 하고자 하더니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눅 1:59-61).
이런 배경 속에서, 모르드개의 족보에 ‘기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모르드개가 사울 왕의 혈통임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아각을 비롯하여 아말렉인들을 살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은 그 결정이 약 600년 뒤 자신의 후손 모르드개의 때에 모든 유대 민족이 진멸당할 위기를 맞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울의 불순종
당신이 어느 날 결정한 불순종이 가족 전체, 교회 전체, 나아가 민족에게까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불순종은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그 죄의 씨앗은 눈에 보이지 않게 자라나 어느 순간 나를, 그리고 우리 공동체를 삼키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위기를 목도하고 있습니까?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이 판을 치고, 정치적으로도 나라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선대, 그리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외면하고 무시해 온 선택의 결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금 우리를 향해 굴러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순종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불순종은 결국 나와 내 자녀, 우리 민족을 멸망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순종은 반드시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모르드개를 보십시오. 하만이 왕의 총애를 받아 모든 사람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했을 때, 모든 이들이 엎드렸지만 모르드개는 꿇지 않았습니다.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에 3:3-4).
“대권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은 모르드개와 같은 관료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모르드개를 나무랍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대답합니다.
“나는 절할 수 없다네. 유다인이기 때문일세.”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할 수 없는 것에는 두가지의 명맥한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인으로써 사람이나 우상에게 절할 수 없었던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애굽기 20:4–5)
두번째는 아각의 출신때문입니다.
“하만은 아각 사람” (에 3:1)
“너는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그들을 진멸하라” (신 25:17–19)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세상에서 큰 충돌이 없을 때도 있지만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뜻이 정면으로 충돌하면, 그 순종함은 강한 스파크가 일어날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스파크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모르드개의 순종은 600년간 해결되지 못한 하나님의 숙원인 원수 아말렉의 씨를 제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순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 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던 때를 돌아보십시오. 모두가 자기만을 위해 살려고 했던 그 어두운 시대에, 어떤 이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들이 했던 것은 위대한 전략도 대단한 힘도 발휘하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힘없는 나라의 필부필녀(匹夫匹婦)가 그저 “나라를 살려야 한다”는 신념 아래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순종이었습니다. 그 숭고함이 모여 이 민족을 광복으로 이끈 것입니다. 바로 그런 순종이 민족을 살렸습니다.

유관순 열사
오늘날 이 시대의 혼란스러움, 악함이 만연하고 죄가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해진 이 나라를 생각하면 눈물만 납니다. 우리 선배들이 피흘려 살려 놓은 이 땅이 죄악이 가득해지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한 것입니까?
그저 자기 살 길만 위하여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온 결과 아닙니까? 우리의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불순종은 멸망으로 순종은 축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암환우들을 섬기는 이 만남 하나하나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이 만남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조국의 통일과 회복의 길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그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운영도 최선을 다합니다. 작은 준비 하나까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순종의 실천이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드리는 순종, 내가 선택하는 이 순간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어 나와 내 자녀, 우리 공동체, 그리고 이 민족에게 축복이 되리라 믿습니다.
당신도 이 믿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순종 위에 반드시 복을 내리십니다. 이 민족을 살려 주실 것입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은 하나님의 섭리가 때로는 오랜 시간 뒤에야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2. 당신의 오늘의 선택과 순종이 다음 세대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에 2:19-3:6
19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
20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21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22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
23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1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2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3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4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5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6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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