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7:1-10 믿음을 따라 사는 종의 삶 - 매일성경, 큐티 / 작은 믿음, 도전
눅 17:1-10
믿음을 따라 사는 종의 삶
봉사의 일도 하기 싫어 한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드디어 주님의 백성이 되었고, 이제는 그 백성답게 살아가며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아가고, 주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하며, 그분을 따라 사랑하는 것—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참된 복임을 믿습니다.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이렇게 복되다는 것을 알지만 정작 교회에서 봉사의 일을 부탁하려 하면 거절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무개 집사님, 이번에 성가대에 사람이 필요해서 그러는데 함께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 주일학교 교사가 필요해서요. 혹시 교사로 섬겨주실 수 있을까요?”
그때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목사님, 제가 믿음이 아직 부족해서요. 제가 잘 못할 것 같아요.”
제가 이번에 노회에서 다들 꺼리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한 해동안 섬겨야 하는데 회의도 많고 여러가지 잡무들이 많아서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찰회에서 선배 목사님들이 이 일을 맡을 목사님을 뽑으려 하는데 아무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너무나 하기 싫어 하는 일이라 제가 하겠다고 선뜻 대답했습니다.
대단한 사명까지는 아니어도 교회를 섬기는 일, 공동체를 섬기는 일과 같이 하기 싫어 하는 일에 선뜻 대답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남에 대한 태도
사역을 하게 되면 돕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면 시험드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실족하는 일이 없을 수 없지만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십니다(눅 17:1).
저도 사역을 하다 보니 성도님을 실족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죄성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부분들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가장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제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사람들이 제가 화가 난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부분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은 ‘이런 것까지 고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남을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살아간다는 것은 전인적 모든 부분 성격과 말투, 표정 등 우리의 모든 면이 주님 안에서 변화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변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크게 죄의식을 갖는 분들이 많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 상당히 심각하게 대하십니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눅 17:2).
작은 자란 공동체 안에서 연약한 사람을 뜻합니다. 작은 일에도 쉽게 실족할 수 있는 사람말입니다. 표정하나 때문에 시험들었다고 교회도 안나옵니다.
그렇게 보자면, 저 역시 연자맷돌을 여러 번 달았어야 할 만큼 누군가를 실족하게 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누군가가 당신을 시험 들게 하는 일이 있었고, 혹은 죄를 지은 일이 있다면 주님은 그 일에 대해서 용서를 당신에게 구한다면 너그럽게 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 17:4).
남을 용서해 준다는 것은 정말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용서해 주는 것은 우리가 막힌 것을 연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 사람이랑은 말도 안 해.”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상담공부할 때에 자신의 이혼 이야기를 들려 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제 공부를 위해서 기꺼이 당신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혼까지 하게 된 이유는 부부간에 다투면 서로 대화를 안하곤 했는데, 마지막에는 무려 6개월동안 서로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6개월 동안 말을 안 하고 어떻게 사셨어요?”
그러자 이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냥 살았어요. 밥도 같이 먹고, 생활은 함께 했어요. 다만 대화만 없었을 뿐이죠.”
말을 전혀 나누지 않으면서도 밥은 같이 먹고,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그렇게 살아갔다고 합니다. 서로 마음에 커다란 벽을 세운 채, 침묵으로만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그 분은 대화하지 않는 그 시간은 더 이상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소망도 사랑도 없어진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강령은 다 잊더라도 무한으로 용서하라는 이 말씀 만이라도 붙들어도 스스로를 위해서 큰 도움이 됩니다.
내가 마음을 닫아버리면, 결국 내 삶 전체가 지옥 같아집니다. 상대방을 바꾸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이 내게 상처를 주고, 나를 시험 들게 하고, 괴롭게 했다고 해서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어졌으니, 연자맷돌을 메고 바다에 빠지시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태도, 말투, 성격, 하는 일들… 우리가 바꿀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상처를 주고,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주안에서 용서하여 받아들이게 되고 그들에게 마음을 다시 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열면 우리 삶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 명령하신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주님께 간청합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 17:5).
용서하고 사랑하며 상처 주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세워나간다는 것,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인격과 믿음의 수준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의 요청에 대해 "더 많은 믿음을 주겠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곧, 아주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믿음이 충분히 채워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비록 작고 연약한 믿음이라도 그 믿음을 붙들고 순종하며 한 걸음 나아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를 묻기보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차마 저 사람은 못 만나겠다, 용서하기 어렵다”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을 넘어서게 하고, 믿음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합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그 믿음이 순종을 이끌고,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란, 결국 ‘작은 방향 하나라도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조그만 방향 하나면 충분하다는 겁니다.
던져놓는다
저희 어머니는 “던져놓는다”는 걸 참 잘하십니다. 이건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알려준 지혜입니다.
‘던져놓는다’는 건 마치 바다에 제방을 쌓을 때처럼, 물 밑에 돌을 하나씩 하나씩 던지는 겁니다. 돌을 던져도 처음엔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계속 물속으로 가라앉을 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계속해서 던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돌무더기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고, 마침내 물의 흐름을 막아내는 순간이 옵니다.

우리 사역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불가능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불가능 속에서 어머니는 늘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다. 직접 발로 뛰며, 주변에 찾아가 편지를 쓰고, 만나자고 하고, 기도하고, 좌절하고, 또 나아가고… 또 다시 일어나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돌을 계속 던지는 것, 믿음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산은 결코 옮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 “한번 해보자”며 삽이라도 들고 나가면, 그 산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혼자 산을 옮길 수 있을까 두렵지만, 막상 삽을 들고 있으면 누군가 와서 묻습니다.
“무엇을 하세요?”
“산을 옮기려 합니다.”
그럼 함께 삽을 들 사람이 붙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산을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 암센터를 세우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암 환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습니다.”
그 선언 하나, 그 첫 돌 하나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옆에서 또 하나씩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 이 귀한 사역이 이뤄진 것입니다.
눈에 안 보여도 괜찮습니다. 지금 당신은 돌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오늘 하루 또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죠.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는 암을 고치려면 큰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당신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계시잖아요. 그러니 겨자씨만한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예수 믿는 믿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걸 ‘51%의 사역’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치료를 포기하려는 마음과 계속 해보자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해봅시다. 50 대 50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 포기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에 전해지면서 단 1%라도 소망 쪽으로 기울게 된다면, 오늘 하루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고비를 넘긴 것입니다.
제가 이 사역을 하며 1%의 사역에 대해 더 마음을 둔 것은 췌장암 4기 환자가 고침 받은 기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점차 몸이 악화되어 이제는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고비를 넘기고 나자 조금씩 다시 좋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나의 암이 지금 얼마나 줄었나”가 아닙니다. “오늘 내가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가”입니다.
“내 문제가 해결 되었나?”가 아니라 “나는 지금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나!” 입니다.
직장도, 사업도,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잘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안 되는 순간들을 지나야 비로소 되는 일이 펼쳐지는 법입니다. 그 안 되는 순간을 지나는 과정들이 바로‘물밑에 던져지는 일입니다. 아직은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계속 돌을 던지다 보면 결국 그 물줄기가 멈추는 날이 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종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순종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그냥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쉬운 방법, 더 획기적인 길을 알려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에스더가 동족을 구하기 위해서 더 쉬운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자신이 생각할 때 옳은 일을 하겠다는 것을 돌을 던지듯 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이를 대학에 보내려면 공부해야 하고, 결혼을 원한다면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형제를 보내주세요!”라고 기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발로 움직이고, 만남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종으로써 오늘이라는 해야할 일을 받은 것입니다. 난관이 많고 불가능한 것을 하는 듯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은 하루를 잘 말씀을 따라 경작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치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낫지 않습니다. 치료하고, 운동하고, 꾸준히 돌을 던져야 합니다.
믿음의 길
그런데 주님은 여기서 참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감당하고 살아가면 “수고 많았다, 잘했다”라는 따뜻한 위로를 해주셔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주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종이 맡은 일을 다 마친 후에, 주인이 “수고했으니 이리 와서 내가 차려놓은 밥을 먹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이제 와서 밥상을 차리고 나에게 식사 대접을 하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종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눅 17:10)
이 말씀은 이렇게 들립니다. 주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그 믿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닥쳐온 수많은 장애물들, 크고 작은 고난들…
이 모든 것이 결국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주인의 뜻을 다 알 수 없지만 삶에 주신 무엇이든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때로는 함께하기 힘든 사람을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영혼이라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죄송합니다만, 암조차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이 병을 치료해가는 시간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힘든 과정이지만, 우리가 감당하고 나아갈 때 여러분이 치료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신 그 자리에서 수많은 이들이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통해 교회를 다시 온전히 세워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치료 받은 것으로 인해 스스로를 높이고 자랑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무익한 종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오늘도 1%의 믿음이 올라갔습니까? 혹시 또 다시 떨어졌습니까? 그래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그 1%의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것입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의 믿음이 작고 부족해 보여도 겨자씨만큼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순종히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당신은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했던 태도나 말이 있었습니까? 실족하게 하는 것이 중한 죄악임을 알고 고치려 하시겠습니까?
눅 17:1-10
1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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