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14-31 왜 인생에서 우리를 낮추시나? - 매일성경, 큐티/ 고난, 탐욕
눅 16:14-31
왜 인생에서 우리를 낮추셨나?
초대 교회 공동체의 참된 모습
초대교회는 지난 본문 말씀—"하나님과 제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을 따라 탐욕을 버리고 공동체를 우선으로 세워 나감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는 가난한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 4:34-35).
마침내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진정한 공동체, 초대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인들이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각각 자기 짐을 질 것이라"(갈 6:5)고 하면서 공동체를 위하여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갈 6:2)고 하였습니다.
탐욕을 버려 개인 보다 공동체를 바라봄으로 개인으로 보면 삶이 다소 어려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자발적인 헌신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함께 공동체를 이뤄갔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와 탐욕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미덕은 '소비'이고, 소비가 곧 우상이 되었습니다. 돈이 있으니 사고 싶어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고 싶은 것'은 생필품이 아니라 탐심에 의해 충동되는 소비입니다.
솔로몬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도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5:10)라고 말했습니다. 즉 자본주의 시대뿐만 아니라, 인간은 본성적으로 탐욕을 꺾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 탐욕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탐욕은 반드시 회개해야 할 큰 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더러운 탐욕을 숨기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 의로운 사람이라 드러내려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탐욕을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하나님의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일까요?
외식적 경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십일조는 잘 드리지만, 율법이 진정으로 요구하는 바는 행하지 않는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십일조는 철저히 지켰지만, 정작 탐욕을 버리지 않아 율법이 요구하는 공의와 사랑을 저버렸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눅 11:42).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눅 16:15)

사랑하는 자를 낮추심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존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 수도 있고, 심지어는 많은 재물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곤 하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것 아니겠는가?”
저는 어머니의 삶을 보며 한 가지가 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그렇게 순종하며 살아오신 분이라면, 이제는 인생이 편안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어머니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믿음으로 이겨 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어머니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버지로 인한 고통도 컸고, 시집살이도 힘겨웠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나이 사십에 예수님을 믿고 목회도 시작되었지만 교회 사역은 더 힘들었습니다. 목회도 어려웠고, 가난도 버거웠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로 인한 어려움, 그리고 교회 분양 사기를 당했기에 10년간 어머니는 재판을 했었습니다. 하나로교회의 사역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은혜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담아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책을 내셨는데, 그 책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고, 어머니를 간증자로 초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삶과 우리 가족의 삶은 점점 회복되어 갔습니다. 책의 인세로 어머니는 노숙자 사역에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강연 수입을 통해 하나로 교회 빚을 갚아 가셨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갑자기 울면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 모든 빚을 다 갚게 해주셨어.”
그 말에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수십 년을 지고 계셨던 그 짐이었으니, 그것을 내려놓은 어머니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날개 단 사람처럼 미국은 물론, 아이티 등 세계 곳곳으로 다니며 사역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삶의 절정에 있었습니다.

각종 매체에서도 인터뷰하고 싶어하다
미국 교회들이 초청한 집회를 하기 위해 출국해야 하는 어느 날, 소중한사람들 자활센터의 사무장에 의하여 고발을 당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불의한 일이 탈로가 나 센터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협박하며 자신에게 많은 퇴직금을 달라고 했었습니다. 어머니는 잘못한 일이 전혀 없기에 협박에 눈하나 깜빡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미국에 가는 날을 중구청 직원들에게 알리고 갑자기 사무실에 들이 닥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날 새벽, “일어나라. 빨리 내려가라”고 꿈 속에서 말씀해 주셔서, 어머니는 서둘러 내려가셨고, 그 덕분에 그들을 현장에서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무흠함을 법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10년이나 재판해 오셨습니다. 어머니를 협박한 자와 직원들은 거짓 증언을 해왔지만 어머니는 착실히 준비한 자료들을 계속 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10년간 재판에 시달리셨습니다.
10년 동안 함께 해주신 변호사님이 계셨지만 사실상 무료 변호사님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실질적인 변론 준비는 어머니 혼자 감당하신 셈이었습니다.
그 모든 재판 준비와 싸움 속에서 과로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결국 뇌경색이 찾아왔고, 언어도 잃게 되셨습니다.
삶의 절정에서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것입니다. 처음 검찰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정말 유정옥 사모가 무슨 죄라도 진 것 아니냐고 비판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 하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순결하게 사역해온 지난 시간이 완전히 발가벗겨져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어머니에게서 먼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이 10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던 때에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청평센터를 지으라는 신호로 받으셨습니다. 무조건 순종하고 이 센터를 짓고 10년이 지나왔습니다. 수없이 많은 암환우들이 이곳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지난 3월, 어머니의 선고 날짜가 다가올 때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종을 왜 이렇게 괴롭게 하십니까?”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유정옥 사모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책이 나와 많은 교회들에서 간증하게 하셨지만 그 영광은 홀로 하나님만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청평 암환우 센터도 하나님이 지으시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낮추신 것은 하나님이 어머니에게 이땅에서는 상급이 없어도 천국에서 많은 상급을 주시려는 것이라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한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7).
하나님은 빛처럼 빛나도록 높이시지만 또한 낮추십니다. 그러나 낮추신 것은 그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영광 다 누리다가 멸망의 자녀가 되길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외식하는 자들
율법의 정신은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냈으니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공의를 시행했다 말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게 사치를 떨며 사는 탐욕의 사람들,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 이후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됨으로 진정한 회개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눅 16:16).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십니다.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눅 16:18).
저들은 율법의 규칙을 따라 이혼증서를 써서 아내를 버린 것을 정당하다 말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편에서 보자면 인간이 쓴 이혼증서는 아무 효력이 없고 저들의 행위가 간음이라 말씀하십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
율법을 안다며 율법을 악용하여 자기 탐욕, 음욕, 욕심을 제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던 자의 한 예를 이야기하십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눅 16:19).
이렇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자가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반면, 거지 나사로는 헌데투성이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려 했습니다. 율법을 가장 잘 따른다는 자들은 자기 식탁 밑에서 개와 같이 부스러기를 먹는 것을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이 이질감이 바로 저들이 지옥에 들어감이 마땅함을 드러냅니다.
죽은 뒤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 가운데 있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 16:25).
이 땅에서 부자는 자기 좋은 것을 모두 누렸고 거지는 이제 천국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지옥에 있는 것은 그가 탐욕을 회개하지 않고 이땅의 것을 모두 누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눅 6:24)
왜 부를 주셨을까요? 왜 건강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가난한 자들에게도 천국을 누리게 하라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그래서 주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살 수 있는 것도 많고, 그렇게 되면 탐심을 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어 탐심도 갖기 어려운 것이 복입니다.
예화 속에서 부자는 고통 가운데 후회하며,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기 집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비유를 이렇게 마무리하십니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31).
이미 율법의 정신안에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실상 율법을 전혀 따르지 않았음을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예수님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회복해야할 공동체 정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가장 잘 지켰다고 생각했지만, 그 정신을 따르지 않았기에 그들의 최후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영원한 멸망뿐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합니다:
"현재의 체제 하에서(자본주의)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예외적인 인물들이다… 생산중심적이며 소비지향적인 정신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신념을 따르지 않게 된다면 인간은 먹고 입는 데 급급한 기계에 불과하다"(『사랑한다는 것』).
저는 제 삶, 제 일평생을 암환우를 섬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자기 욕심만을 따라 사는 삶은 종의 삶입니다. 자기 욕심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가는 인생, 그건 얼마나 부끄러운 인생입니까?
심지어 복음 아래 살아가면서도,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교리 하나에만 매여 회개하지 않는 삶을 사는 자, 그래서 먹고 입는 데 급급한 기계처럼 사는 신앙인들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삶에 어려움에 찾아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것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바닥까지 낮춰주셔서 내면의 욕심과 음욕과 악함을 보게 하시고 이제 예수님만 바라며 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를 낮추심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초대 교회의 공동체 정신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소비와 소유에 대한 당신의 마음을 다시 점검해보십시오.
2.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물질, 건강, 영향력 등)을 이웃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눅 6:14-31
14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7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18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20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25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26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매일성경 #큐티 #누가복음 #초대교회공동체 #기독교탐욕 #자본주의비판 #예수님의가르침 #십일조의의미 #바리새인경고 #복음적삶 #성경묵상 #청평센터 #기독교고난 #영적회복 #크리스천재정 #성도의삶 #복음공동체 #에릭프롬 #탐욕과믿음 #부자와나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