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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창세기 1:1-13 큐티 혼돈을 덮으시는 하나님의 손길 - 창조와 진화, 전도

사랑합니다예수님 2026. 1. 1. 16:50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청년부를 맡아 섬기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새가족으로 등록했습니다.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청년이었습니다. 누가 전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고모가 이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스스로 교회 문을 두드린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고모가 오라고 해도, 교회 문을 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오게 되었나요?”

 

그 청년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행복해 보입니다.”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 삶도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요. 그럼 예수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솔직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가치관과 교회의 가르침 사이에 너무 다른 부분이 많아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진화론적 사고를 가진 과학도답게, 세상을 철저히 보이는 것과 설명 가능한 것 안에서만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와 대화하면서 분명히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창 1:2) 세상은 누구보다 잘 보고 있었지만, 그 위를 덮고 계신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한 것처럼 “이상하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도 힘들고, 우리도 불안하지만, 어딘가 결정적인 한 가지가 다릅니다.

 

혼돈 위에 먼저 계신 하나님

창세기 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1-2)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1절이 빠진 세상을 삽니다. 그들에게 현실은 2절뿐입니다. 혼돈, 공허, 흑암. 그래서 더 많이 붙들어야 하고, 더 빨리 달려야 하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달리면 달릴수록, 마음 한편의 불안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혼돈을 두려워 합니다. 인생의 공허를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역시 두렵고 낙심되는 일을 자주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2절 앞의 1절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 받은 세계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 위에 지금도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땅이 완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평안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상이 여전히 혼돈스럽고, 인생이 여전히 공허하며, 미래가 여전히 어두워 보일지라도, 그 위에 성령께서 운행하시기에 우리는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현실의 혼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혼돈 위에 먼저 계신 하나님을 보는 눈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우리를 위한 선물

창세기 1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참 치밀하신 분입니다. 첫째 날에 빛의 원리를 만드시고,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이라는 광명체를 두십니다. 둘째 날에 하늘과 바다의 터를 놓으시고, 다섯째 날에 그 공간을 가득 채울 새와 물고기를 만드십니다. 셋째 날에 땅과 식물을 내게 하시고, 여섯째 날에 그 위를 걸을 짐승과 사람을 만드십니다.

 

빛도, 별도, 계절도, 해와 달도 모두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경이로운 세상을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셨다”(신 4:19)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피조물을 두려워합니다. 해와 달과 별을 보며 운명을 점치고, 하늘의 징조에 이상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사 날짜를 두려워하고, 묘 자리를 걱정하고, 별자리와 띠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렘 10:2)

 

창조주를 믿지 않는 사람은, 결국 피조물에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며 거기에 매입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제가 만났던 그 과학도처럼, 세상에 아무 의미도 인정하지 않고 혼돈과 공허만 관찰하다가, 방향 없이 뛰기만 하다가 지쳐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피조세계는 우리를 얽어매기 위한 사슬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보며 두려워 떨지 않습니다. 세상의 공허함에 떨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여는 아침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하루는 어떻게 달라야 할까요?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이유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공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 역시 공허하고 험난한 세상 속을 지나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성도들은 그날 생길 일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억눌려서는 안 된다. 새로운 날의 출발점은 그날을 창조하신 주님께 있기 때문이다… 밤의 어두움과 산만함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일깨우는 말씀의 밝은 빛 앞에서 물러간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뜰 때, 우리의 생각이 곧장 문제와 염려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날을 만드신 주님께로 향할 때, 우리는 완전히 다른 하루를 살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세상은 공허하고, 여전히 일터는 혼란스럽고, 여전히 마음은 연약하지만, 그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바라보며 하루를 여는 것입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종교적 습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두려움이 감당하지 못하는 삶의 방향 전환입니다.

“오늘은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이 만드신 날”이라 고백하며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혼돈과 공허를 느낍니다. 때로는 흑암이 더 짙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위에, 우리의 삶 위에, 하나님의 영이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운행하고 계십니다.

 

◎ 묵상을 돕는 질문

1. 최근 뉴스나 개인적인 상황을 볼 때 막막함과 허전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그때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은 무엇을 붙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2. 하루를 시작할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한 막연한 염려로 시작하나요, 아니면 나의 하루를 창조하신 주님을 기억함으로 시작하나요?


창 1:1-13

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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